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동읍 석산리 상산김씨 동산정 東山亭

천부인권 2018. 4. 12. 15:30



2016.10.26. 동읍 석산리 동산정 뒤 종택 모습


창원시 의창구 동읍 석산길16번길 5-8에는 상산김씨(商山金氏) 김명윤(金命胤 1565~1609)이 지은 동산정(東山亭)이 위치한다. 동산정의 뒤 에는 담을 경계로 도봉서당(道峰書堂)이 있다. 상산김씨(商山金氏)의 창원 입향조는 판윤(判尹) 김한(金漢)으로, 김해에서 창원 석산(石山)으로 이거하였다. 그의 아들이 김명윤(金命胤)인데, 문장과 무인으로서의 위업이 뛰어나 명나라 황제로부터 쌍검을 하사받았다. 그는 1583년(선조 16)에 계미과(癸未科)에 등제하였으며, 7년 후 학봉 김성일선생(鶴峯 金誠一先生)이 부사(副使)로 일본에 사신사로 갈 때 종사관(從事官)을 삼았다. 그때 임금에게 보고한 일본의 풍토속(風土俗) 및 실정(實情)과 위장(僞裝)한 기록으로 파주목사(坡州牧使)가 되었다. 이 기록은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지 않을 것이란 보고서였으나 결론은 임진왜란이 발발했다. 충주목사로 재임 중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왜군을 물리친 공을 인정받아 원종일등훈(原從一等勳)에 제수 하였다.




2016.10.26. 동읍 석산리 동산정 앞 풍경



대문인 유정문(幽靜門)



유정문(幽靜門) 편액



유거문(幽居門) 편액



동산정 모습



동산정기



東山亭記
我金 自鼻祖甫尹公 始貫商山 今爲二十世而年代茫然 世居鄕里 亦不可攷矣 逮我 朝八代祖提學公 退居于丹城法勿里 而有幽居詩一絶曰 幽篁園裏數株花 潤色山村寂寞家 入室更看樽有酒 宦情從此薄於紗 不但愛山水之幽靜 竹樹之淸閒 其超然有高遯之志 盖可知也 七代祖正言公 六代祖司諫公 與弟持平公 博士公因家焉 世稱丹城三王堂者是矣 五代祖進士公 因娶鄕移居于昌寧昌樂里 高祖考參奉公 曾祖考進士公 祖考判尹公四世居焉 先考參判公 又移於金海府北門外 畓谷里者 將近三十餘年矣 丁亥七月十一日 丁先考罔極之憂 自是之後 益切孤露 纔經三霜己丑冬 又決意移居于昌寧府東道山里 道山卽我外祖考監察 全義李公所居之地也 與內舅前府使諱明河 共相爲隣焉 經始一亭於道山之東 扁之曰東山 盖亭在檜山之東 道山之東故也 余雖不材 早登雲路屢典治牧之任矣 夫何邦運中否 不幸當壬辰島夷 之亂身爲討賊幾乎濱死 而亂旣平定戡勳賞之日 猥荷一等鐵券之賜 又忝三品銀臺之選 吾人之分 自可極矣 彼天之賦 亦可全矣 抛脫世債 歸臥新亭 黙思其前日仕宦履歷 及亂中事蹟 如長夜中一夢而己 是地之卜 雖無奇形絶勝 山勢周遭 藏掩野色 地理平鋪 奠安人居 石田茅屋 蕭然淡泊 竹塢松徑 寂爾幽闃 居然我泉石矣 採於山釣於湖 得湖山之趣 飮斯酒賦斯詩 兼詩酒之娛 優遊自得 消遺世慮 倘所謂歸來平地作神仙 其在是歟 且歲時伏臘 醑酒炮羔 兄弟叔姪 團會一亭 序行坐齒 叙天倫之樂事 及其暇日 讀書誦詩 詠歌於太 平烟月之鄕 涵泳於聖世 菁莪之化 終吾生而倘徉 則斯世至樂 此外何求 各題八景詩一聯於壁右 繼以先世所居鄕里次第略記 以爲日後子姪輩觀鑒之資耳
金明胤 撰
昌原市 東邑 石山里 商山金氏 東山亭


동산정기(東山亭記)
우리 김(金)가는 첫 조상이신 보윤공(甫尹公)에서 비로소 상산(商山)을 본관으로 하여 지금까지 20세를 내려오니 그 연대가 아득한데 대대로 시골에 살아 다 고찰할 수 없다.
조선에 이르러 8대조 제학공(提學公)께서 단성(丹城) 법물리(法勿里)로 물러나 사셨는데 『한적하게 살면서(幽居)』라는 시가 한수 있다. “고요한 대숲 속 몇 송이 꽃들, 고운 빛 산골 적막한 오두막, 집에 들면 언제나 술잔에 가득하니, 벼슬살이 이에 비해 비단보다 얇지.” 단지 산수의 그윽하고 고요함과 대숲의 맑고 한적함을 아낄 뿐만 아니라 초연히 높고 아득한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7대조는 정언공(正言公)이며, 6대조는 사간공(司諫公)과 아우 지평공(持平公), 박사공(博士公)이다. 이로 인하여 세상 사람들이 단성의 삼옥당(三王堂)이라고 칭한다. 5대조는 진사공(進士公)으로 처가로 인하여 창녕 창락리(昌寧昌樂里)로 이주하여 살았다. 고조부는 참봉공(參判公)이며 증조부는 진사공(進士公)이며, 조부는 판윤공(判尹公)이며, 선친은 참판공(參判公)인데 김해부(金海府) 북문 바깥의 답곡리(畓谷里)로 이사하여 거의 30여년이 되었다. 정해(丁亥) 7월 11일 선친의 상을 당하였고 이 이후로 더욱 적막하고 외로운 가운데 3년을 지냈다.
기축(己丑) 겨울 창령부(昌寧府) 동쪽 도산리(道山里)로 이주하기로 결정하였다. 도산은 나의 외조부 감찰(監察) 전의(全義)이공(李公)께서 사시던 곳이다. 부사(府使)를 지내신 외삼촌 명하(明河)와 이웃하였다. 도산의 동쪽에 비로소 정자 하나 지었는데 그 편액을 동산(東山)이라고 하였다. 정자의 위치가 회산(檜山)의 동쪽이고 도산의 동쪽에 있어 붙인 이름이다. 나는 재목이 되지 않으나 일찍이 목민관의 임무를 여러 번 맡았는데 나라 운세가 좋지 않은 때에 맞닥뜨려 불행이도 임진왜란을 당하여 몇 번이고 몸소 적을 토벌하다 죽을 뻔하였는데 전란이 평정되고 공훈을 상 줄 때에 외람되어 일등공신으로 책봉되어 정3품의 작위를 하사받았으니 내 직분으로는 매우 망극한 일이다. 저 하늘이 주신 것을 가히 보전할 뿐이다. 세상의 책임을 모두 벗어 던지고 새로 지은 정자에 돌아와 누워 가만히 지난 날 벼슬길에서의 여로와 난리 중의 행적을 생각하니 하룻밤 긴 꿈같을 뿐이다.
이 땅에 자리 잡은 것은 비록 기이한 형상이나 절경은 없더라도 산이 두루 둘러치고 들이 펼쳐져 있고 지형이 평평하여 사람이 살기에 편안하고 돌밭에 초가집들이 고요하고도 단박하며 대나무 언덕과 소나무 오솔길은 적막하고 그윽하여 온통 나의 강산이다. 산에서 나물 캐고 호수에서 낚시하며 강과 산의 아름다움은 정취를 얻고 술을 마시고 시를 지으니 시(詩)와 술의 즐거움을 겸하고 도도하게 놀며 자득하여 세상의 근심을 버렸으니 어찌 이른바 평지로 돌아가 신선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으리오. 또한 세상에 삼복 때이라 술을 담그고 안주를 마련하여 형제와 아저씨와 조카들이 정자에 가득히 모여 앉은 자리는 나이순으로 정하여 하늘이 주신 천륜의 즐거운 일을 베풀었다. 한가한 날이 되면 책을 읽고 시를 외며 태평한 강구연월(康衢煙月)을 노래하며 성왕의 무성한 덕화에 흠뻑 빠져 노닐며 나의 생이 끝날 때까지 노닐 것이니 이 세상의 지극한 즐거움을 이곳이 아니면 어디서 구하리오. 각기 벽 위에 팔경시(八景詩) 한 연을 지어 붙이고 선대 조상들께서 향리에 기거하신 대략의 순서를 이어서 쓰고 이것으로 자손들과 조카들이 볼 자료로 삼았다.
김명윤(金明胤) 짓다.





동산정(東山亭) 편액




동산정중건상량문



東山亭重建上樑文
桑梓必恭敬止況先世藏修之道所乎 堂構雖繼述云則後裔嗣葺之當然也 肆殫誠力 卒成經營伏惟東山亭 我判書祖粧點古文昌名區 望石橋長浦蒼葭秋水一方 接渭陽芳隣綠楊春夜三逕 當壬辰大訌功記 鐵券一等 荷宣廟宸管歷敭銀臺淸班 及不俟終日而遯 遂優遊卒歲爰居 敦詩禮課孝忠 生爲縉紳矜式 潔牲幣薦蘋藻沒享俎豆尊崇 嗟乎時移物遷上宇下棟惟 風雨之所泐久矣 烟浸霧鎖荒垣廢礎曾日月之幾回 雖行路者猶咨嗟 矧子姓而敢忘怠 幸賴一省章甫修契集金 耐過十餘星霜載基伐木 曰吾宗宅畔可以表矣奚必某水某邱 若夫是祖祠前得無校乎庶幾在彼在此 於是位置整齊從 以境界淸越 何有何無或新村而添用 孰先孰后爭趨役而敦工 大者杗小者榱 規矩準繩不踰所欲 凉爲敞煥爲奧堂室軒窓各得其宜 感右懷新年代雖遠 以今視昔風景不殊 川雲曳陣嶺月 如暈撫遺劍肅然聞乎容聲 爐薰繞案亭午方中讀舊篇僾然見其笑語 歌行葦詠常棣合宗族而相歡 投哨壺鼓素琴與賓朋而共榮 敢述偉頌 以助衆呼 兒郞偉抛樑東 兩曜常從古度中 如日之升如日恒 願言鞏固永無窮 兒郞偉抛樑南 海上風潮 日吐含入眼簾山長似古 湛然佳氣滴晴嵐 兒郞偉抛樑西 十里枌楡亘一堤 敦睦遺風猶不墜 歲時佳節共提携 兒郞偉抛樑北 縱橫原野連溝洫 朝而稼穡暮絃歌 有侐先齋斯翼翼 兒郞偉抛樑上 箕尾列宿垂炳朗 前古英豪幾降衷 悠悠千載長瞻仰 兒郞偉抛樑下 洛水泱泱千里瀉 緬仰當年眺 望時衿懷付與如斯者 伏願上樑之後 完矣美矣衛荊善居 輪焉奐焉長老 己禱仍舊名揭新板豈止 一時看瞻 錫餘慶蔭來苗 以俟百世益遠
龍集 辛巳 孟夏 上浣 後孫 相壽 謹撰


동산정중건상량문(東山亭重建上樑文)
고향(桑梓)¹은 반드시 공경해야 하는 법이거늘 하물며 선대가 학문에 전념하시던 곳이야 어떠하겠는가? 세업(世業)을 이어 받아 발전시키는 것(堂構)²을 계술(繼述)이라 하였으니, 후손들이 지붕을 잇는 것이 마땅하기에 마침내 정성과 힘을 다하여 경영을 마치게 되었네.
삼가 생각건대 동산정(東山亭)은 옛 문창군(文昌郡)의 아름다운 곳으로 우리 판서 선조께서 좋은 터를 가려 집을 지으셨네. 돌다리의 긴 포구를 바라보면 푸른 갈대가 가을 물결에 출렁이고 인접한 위양(渭陽)의 아름다운 고을은 푸른 버들이 너울대는 세 오솔길이 아름답네.
선조(宣廟) 임근의 은혜를 입어 은대(銀臺-승정원의 별칭)에 발탁되고 청관(淸官)의 반열을 두루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을 당해서는 공로가 철권(鐵券)에 일등으로 기록 되었네 마침내 늙기를 기다리지 않고³ 은거하면서 편안하고 한가롭게 세상을 마쳤으며 여러 곳을 옮겨 사시면서 시예(詩禮)를 돈독히 하고 충효를 권장하셨네.
살아서는 벼슬아치들이 공경하여 본받았고 폐백과 희생을 청결히 하여 조상에게 제사 올리며, 세상을 떠난 뒤에는 제사를 받들며 존숭하네.
아! 세월이 흐르면 물정도 바뀌는 법이라 상우(上宇)와 하동(下棟)이 비바람에 깎였도다. 오래되어 연기가 침침하고 안개가 잠겨 담장이 허물어지고 주춧돌이 무너지는 세월이 몇 번이나 거듭되었던가? 비록 길가는 나그네조차도 오히려 탄식하거늘 하물며 자손 된 자가 감히 잊고서 태만할 수 있겠는가?
다행히 한 고을 선비들이 계를 만들고 돈을 모아서 마침내 10여년 뒤에 터를 닦고 나무를 베며 말하기를 “우리 종택 주변에도 동산정(東山亭)을 세울 만한데 구태여 아무개 물가 아무개 언덕을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선조의 사당 앞이라면 거의 여기저기에 있는 것보다 만족스럽지 않겠는가?”라고 하여 이에 위치를 가지런하고 바르게 하니 그 경계가 종용하고 한적하네.
어찌 있고 없음을 따지겠는가. 어떤 이는 재목(材木)을 내어서 쓰임에 부족함이 없도록 하였고 누가 먼저이고 누가 나중이라 할 것 없이  일하는 곳으로 앞다투어 달려와 일을 도왔네. 큰 것은 들보로 하고 작은 것은 서까래로 하여 법도(規矩準繩)⁴를 어기지 않고 맑은 곳은 드러나게 하고, 흐린 곳은 깊숙하게 만드니 집과 방 그리고 행랑과 창이 각각 그 마땅함을 얻었네.
지난날을 돌이켜봄에 연대가 비록 다르지만 옛일을 회상하니 마음은 새롭기만 하고 풍경은 다함이 없구나. 시내 위로 구름은 길게 깔려있고 고개에 걸린 달은 무리(暈) 같으며, 남기신 칼을 받으니 숙연(肅然)히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고 향을 피우고 책상에 둘러앉아 한낮에 옛 편액을 읽노라면 어렴풋이 정답게 담소 나누시던 모습 뵈는듯하네 행위(行葦)⁵를 노래하고 상체(常棣)⁶를 읊으니 종족(宗族)이 모여 서로 기뻐하고 항아리에 화살을 던져 넣고 거문고를 타면서 객들과 함께 즐기노라. 감히 상량문을 지어 무리들을 돕노라

어영차, 들보를 동쪽에 던지세
해와 달이 옛길을 따라간다네.
뜨는 해와 같고 차는 달과 같으니
공고하고 영원무궁하기를 바라네.

어영차, 들보를 남쪽에 던지세
바닷가 풍조가 해를 뱉고 머금듯 하네.
눈에 든 염산⁷은 늘 예전과 같아
담연히 좋은 기운으로 아지랑이를 떨구네.
어영차, 들보를 서쪽에 던지세
10대를 이은 고향이 한 언덕에 뻗혀있네.
돈독한 유풍 실추시키지 않고
설 명절에는 손잡고 서로 돕누나.

어영차, 들보를 북쪽에 던지세
들판에 종횡으로 봇도랑이 연해 있네.
아침엔 농사짓고 저녁엔 현가⁸ 부르니
고요하고 엄숙한 선조의 재실 여기에 우뚝하네.

어영차, 들보를 위쪽에 던지세
기미⁹와 뭇별들이 밝게 드리웠네.
예전의 영웅호걸께서 오르내리시니
아득히 천년토록 우러러 사모하누나.

어영차, 들보를 아래쪽에 던지세
낙동강 물 세차게 흘러 천리에 쏟아지네.
지난날 생각하며 멀리 바라볼 제
품은 맘 이와 같이 부쳐 보내노라.

엎드려 바라건대 상량한 뒤 완전하고 아름다우니 자식을 지키며 잘 살 것이며, 높고도 빛나니 늙은이가 기도하리로다. 옛 이름 따라 새 현판을 다니 어찌 한 때 넉넉한 경사를 바라보는데 그치겠는가. 음덕이 자손에 미치어 백세토록 더욱 영원하길 기대하노라.
용집(龍集)ⁱ⁰ 신사년(辛巳年) 맹하(孟夏) 상완(上浣) 후손(後孫) 상수(相壽)ⁱⁱ 삼가 짓다.


*상재(桑梓)¹ : 조상 대대로 살아 온 고향을 말한다. 桑梓는 뽕나무와 가래나무를 뜻하는데 「시경(時經) 소아(小雅)」에 “어버이가 심어 놓으신 뽕나무와 가래나무도 반드시 공경해야 하는 법이다. 그런데 하물며 우러러 뵐 분으로는 아버지 말고 다른 사람이 없으면 의지할 분으로는 어머니 말고 다른 사람이 없는 데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維桑與梓 心恭敬止 靡瞻匪父 靡依匪母 不屬于毛 不離于裏 天之生我 我辰安在]
*당구(堂構)² : 긍당긍구(肯堂肯構)의 준말로 가업(家業)을 이어 받아 발전시키는 것을 비유하는 말이다. 「시경(時經) 대고(大誥)」에 “아버지가 집을 지으려 하여 이미 설계까지 끝냈다고 하더라도 그 자손이 집터도 닦으려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집이 완성되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若考作室 旣底法 厥子乃不肯堂 矧肯構]
*마침내....않고³ : 김명윤이 벼슬을 버리고 낙향함을 말한다. 「주역(周易) 계사전하(繫辭傳下)」에 “군자는 기미를 보고 떠나면서 하루가 다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예괘(豫卦) 육이(六二)에 ‘돌처럼 견고해서 하루가 다하기를 기다리지 않으니 정하고 길하다.’라고 하였다. 절개가 돌 같으니 하루가 다하기를 기다리겠는가. 이를 통해서 군자가 결단하는 것을 알 수 있다.[君子見幾而作 不俟終日 易曰, '介于石, 不終日, 貞吉 介如石焉, 寧用終日 斷可識矣]
*규구준승(規矩準繩)⁴ : 목수가 쓰는 그림쇠, 곱자, 수준기, 먹줄을 말한다.이는 또한 표준, 법도, 본보기의 뜻으로 쓰인다.
*행위(行葦)⁵ : 「시경(時經) 대아(大雅)」의 편명이다. 부형과 친족들이 모여서 정답게 연회를 베푸는 것이 그 주된 내용으로 “가깝고 가까운 형제들을 멀리하지 않고 모두 가까이 한다면 혹 앉을 자리를 펴 주며 혹 기댈 안석(案席)을 주리라.”[戚戚兄弟 莫遠具爾 或肆之筵 或授之几]
*상체(常棣)⁶ : 「시경(時經) 소아(小雅)」의 편명이다. 형제끼리 서로 그리워하는 마음을 나타낸 시이다. 그 내용에 “척령이란 새가 언덕에 있으니 형제가 급난을 구한다.”[脊令在原 兄弟急難]
*염산(簾山)⁷ : 창원시 의창구 북면의 구룡산(九龍山)을 가리킨다.
현가(絃歌)⁸ : 거문고 등과 어울러서 부르는 노래
*기미(箕尾)⁹ : 중국에서 북영 28수(宿) 중의 기수(箕宿)와 미수(尾宿)이다. 「연원직지(燕轅直指) 권3 유관록 상(留館綠 上)」 북경풍수(北京風水)에 있다.
*용집(龍集)ⁱ⁰ : 연차(年次)를 의미한다. 하늘에 용(龍)이라는 이름의 별이 있는데 이 별은 1년마다 한 번씩 자리를 옮긴다는 데서 온 말이다. 따라서 옛날에는 용집이라는 말을 간지(干支)나 기년(紀年)의 첫머리 또는 끝에 써서 연차를 표시했다.
*김상수(金相壽 1875~1955)ⁱⁱ : 자는 회숙(晦淑) 호는 초려(草廬)이며 본관은 상산이다. 김상욱(金相頊)의 둘째 동생이다. 공자 정주자의 학문에 매진하였고 주역에 조예가 깊어 “후천괘위변역설(后天卦位變易說)”을 지었다. 평생 제갈공명을 흠모하였다. 전쟁 중의 피난 일기가 있다. 저서로 草廬集이 있다.




상산세거(商山世居) 편액


동산정 팔경(東山亭 八景)

平郊牧笛(평교목적) 들녘에 울리는 목동의 피리소리

春日長提草正菲(춘일장제초정비) 봄이 무르녹은 긴 제방에 풀은 푸르러
村兒處處飯牛肥(촌아처처반우비) 마을 아이 곳곳에서 소 꼴 뜯기네.
數聲蘆管歸程慕(수성노관귀정모) 갈대 피리소리 두어 마디에 돌아갈 길 저무니
不覺前溪細雨霏(불각전계세우비) 앞 시내 보슬비 내림을 깨닫지 못했네.
 
遠浦漁燈(원포어등) 먼 강변 고기 잡는 등불

望裏楓汀斂夕烟(망이풍정렴석연) 단풍 우거진 물가에 저녁 연기 사라졌는데
忽看流火照沙邊(홀간류화조사변) 가물거리는 등불 백사장을 오가는 구나.
分明此夜漁舟子(분명차야어주자) 아마도 오늘 밤 배안에서 어부들이
待月逢窓垂釣眠(대월봉창수조면) 달 기다리며 낚시 드리고 창가에서 잠들 구나.


龍岑朝雲(용잠조운) 용잠의 아침 구름

雨後濃雲擁層巒(우후농운옹층만) 비 개인 후 짙은 구름이 첩첩 봉우리 가리우니
終朝寄景捲簾看(종조기경권렴간) 기이한 경치라 주렴 걷고 구경했네.
 須臾日出颷風起(수유일출표풍기) 늦은 아침 해 뜨니 광풍 일어나
散盡晴空始見山(산진청공시견산) 구름은 말끔히 흩어져 청산만 남았네.
*용잠이란 동읍 용잠리를 말한다.


牛巖夕烽(우암석봉) 우암의 저녁 봉화

塞外傳光倚杖看(새외전광의장간) 지팡이 짚고 변방의 봉화 오는 것을 보니
疑然星出暮雲端(의연성출모운단) 구름인지 별빛인가 의심을 했네.
方今聖代無邊警(방금성대무우경) 오늘날 태평성대에 변방이 조용하니
但願年年報是安(단원년년보시안) 다만 해마다 편안한 소식 전해오기 바라네.


東嶺霽月(동령제월) 동녘 고개에 개인 달
東岑月上雨晴初(동잠월상우청초) 비 개인 동녘 봉우리에 둥근 달 떠오르니
淨掃塵埃玉鏡如(정소진애옥경여) 티끌은 쓸어내어 그림 속 같아라.
倘是山翁淸分有(당시산옹청분유)  늙은 이 몸 오히려 맑은 연분 있어
慇懃半夜照蓬廬(은근반야조봉려) 밤중에 은근히 초가집을 비춰주네
 
西山落照(서산낙조) 서산에 지는 햇발
冉冉微陽返照紅(염염미양반조홍) 서산에 걸친 햇발 유난히도 붉은데
餞迎朝暮忽西東(전영조모홀서동) 쉼 없이 동서로 달려 세월만 가노매라.
短橋何處騎驢過(단교하처기려과) 저 햇님 짧은 다리 어디에서 나귀 타고 건느는고
欲畵龍眠愧未工(욕화용면괴미공) 용면거사 본받아 그릴 길이 없으니 그를 부끄러워하노라.

*용면은 중국 북송 때의 인물 ‘이공린(李公麟)’를 칭하는 ‘龍眠居士’를 뜻한다.


雪嶽靑松(설악청송) 눈 쌓인 산의 푸른 솔
枝宣樓鶴根蟠龍(지선루학근반용) 가지에는 백학이 깃드리고 뿌리에는 용이 서린 듯
特立亭亭雪裏峰(특립정정설이봉) 높은 봉우리 눈 속에 외로이 서 있구나.
赤甲蒼髥看可愛(적갑창염간가애) 붉은 비늘 푸른 잎 새 볼수록 사랑스러웠는데
何須韋偃畵奇容(하수위언화기용) 어찌타 위언(韋偃)은 그 자태 그리기에 수고 하였나.


설원녹죽(雪園綠竹) 눈 동산의 푸른 대

凌霜直幹聳雲霄(능상직간용운소) 씩씩한 곧은 줄기 하늘 높이 솟았는데
知爾貞姿是後凋(지이정자시후조) 맑은 절개 사시(四時)에 푸르렀도다.
月白風淸踈影下(월백풍청소영하) 바람 맑고 달 밝은 밤 댓 그늘 아래서
琴歌罇酒獨逍遙(금가준주독소요) 노래하고 술 마시며 홀로 거닐었어라.


[출처 및 참고]
동산선생 실기(2017.3.30발행)-동산선생 실기 발간위원회
창원향교지 하(2004.11)-창원향교




동운세거 편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