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봉수대

고성 좌이산봉수를 찾아

천부인권 2018. 11. 24. 16:10

 

 

 

2018.11.22. 고성 좌이산봉수대

 

고성군 하일면 송천리 산 52-4번지에 위치하는 고성 좌이산봉수대(固城 佐耳山烽燧臺)는 1994년 7월 4일에 경상남도 기념물 제138호로 지정했다.
이곳 좌이산봉수(해발 415.8m)는 남해안 봉수대의 요충지로서 역할을 했을 것이다. 좌이산봉수를 관리하는 소을비포성지(所乙非浦城址)까지 남쪽으로 직선거리 2.43km이다. 소을비포성은 임진왜란 당시 이충무공 전투작전의 요충지였으며 전초기지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했던 곳이다.
좌이산봉수에서 날씨만 좋으면 멀리 거제 가라산봉수가 바라보이는 곳이다. 또한 통영 미륵산봉수와 24.54km의 거리로 봉화불이나 연기는 충분히 직접 봉수군(烽燧軍)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곳이다. 직접 연락을 받는 동남방향의 통영 우산봉수까지 12.6km이고, 동북방향의 천왕점봉수까지 14.06km이며, 보고를 하는 서쪽방향의 각산봉수까지 11.95km이다. 남쪽의 사량도 칠현산 사량봉수까지 10.92km로 우산봉수보다 가깝게 있고 남서방향의 남해 대방산봉수까지 19.79km로 서로 마주한다. 이처럼 좌이산봉수의 영향권에 많은 봉수가 마주하고 있다.

 

 

 

 

 

좌이산봉수를 찾기위해 지도상으로 가장 가까운 지점의 출발지가 산의 서쪽 고성군 하일면 오방1길 33-85에 있는 청룡사 주차장이다. 이곳 청룡사 주차장에서 좌이산 정상까지 거리는 1.4km로 7부 능선까지 직선에 가까운 길이 만들어져 있다. 경사는 있지만 등에 땀나고 이마에 땀이 날 정도면 벌써 1.2km의 구릉위에 올라있을 것이다. 천천히 이런저런 볼일 다보고도 1시간이 걸리지 않았으니 체력이 있는 분들은 40분 이내로 정상에 오를 것으로 생각한다. 첫 번째 국가지점번호을 만나는 곳은 해발 150m이고 두 번째 국가지점번호을 만나는 곳은 해발 300m이다. 세 번째 국가지점번호는 산능성이에 있는데 이곳의 해발 높이는 360m이다. 여기에서 정상까지 0.2km는 암반지대이지만 경관이 확 뚫려 힘든줄 모르고 오를 수 있다.

 

 

 

 

좌이산봉수의 서쪽 원거리에서 본 모습

 

거제 강망산봉수 거제 옥녀봉봉수거제 가라산봉한산도 한배곶봉수 통영 미륵산봉수 통영 우산봉수 고성 천왕점봉수고성 곡산봉수 ⇔  창원 가을포봉수 ⇔ 함안 파산봉수 ⇔ 의령 가막산봉수 ⇔ 초계 미타산봉수 합천군 미숭산봉수[봉수노선은 제2거 간봉(2)]

 

거제 강망산봉수 거제 옥녀봉봉수거제 가라산봉한산도 한배곶봉수 통영 미륵산봉수 통영 우산봉수 고성 좌이산봉수 사천 각산봉수 사천 안점산봉수 진주 망진산봉수 진주 광제산봉수 ⇔ 단성 입암산봉수 ⇔ 삼가 금성산봉수 ⇔ 합천 소현봉수 ⇔ 거창 금귀산봉수 ⇔ 거창 거말흘산봉수 ⇔ 상주 지례현 구산봉수

 

 

 

 

좌이산봉수의 동쪽 원거리에서 본 모습

 

 

 

좌이산봉수 남쪽에서 본 모습

 

 

 

2016.9.25 소을비포성지에서 바라 본 좌이산 모습(봉수대가 직접 보이지는 않는다)


初四日癸酉 晴 質明發船 直到彌助項前洋 更爲約束 由介伊島 過平山浦,尙州浦,彌助項 自初五日至二十八日缺
1592년 5월 초4일 [양력 6월 13일]<계유> 맑다.
먼동이 틀 때에 출항했다. 곧바로 미조항(남해군 미조면 미조리) 앞바다에 이르러 다시 약속했다. 우척후·우부장·중부장·후 부장 등은 오른편에서 개이도(여천군 화정면 개도)로 들어가서 찾아 치게 하고 나머지 대장선들은 아울러 평산포·곡포·상주포·미조항을 지나갔다.(이 뒤로 28까지 빠짐)

 

[5월 4일-장계] 우수사 이억기에게 “수군을 거느리고 신의 뒤를 따라오라.”고 공문을 보낸 사연을 장계했다. 이 날 그 시각에 여러 장수들과 판옥선 24척, 협선 15척, 포작선 46척을 거느리고 떠나 경상우도의 소비포(고성군 하일면 동화리) 앞바다에 이르자 날이 저물기로 진을 치고 밤을 보냈다.

[5월 5일-장계] 소비포에서 새벽에 출항하여 두 도의 수군이 모이기로 약속한 곳인 당포(통영시 산양읍 삼덕리) 앞바다로 급히 달려갔으나 그 도의 우수사 원균은 약속한 곳에 있지 않았다. 내가 거느린 경쾌선으로 “당포로 빨리 오라”는 뜻으로 공문을 보냈다.

 

 

 

 

 

 

 

 

이곳 안내판에는 이처럼 기록했다.
『봉수(烽燧)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밤에는 횃불[烽]로, 낮에는 연기[燧]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 시대의 통신 제도이다. 봉수제는 기록상으로 고려 중기(12, 3세기)에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해진 고려 말 이후부터 조선 초기에 들어서였다. 봉수대는 각각 일정한 거리를 두고 시야가 확 트인 산꼭대기에 설치하였다. 그리하여 평시에는 하나의 불꽃이나 연기[一炬또는 一煙], 적이 바다에 나타나면 둘, 적이 해안에 근접해 오면 셋, 바다에서 적과 접전이 이루어지면 넷, 적이 육지에 상륙했을 경우에는 다섯 개의 불꽃이나 연기를 피워 올렸다.
조선 초기에 설치된 이곳 봉수대는 전체 면적이 240.5㎡이고 둘레가 73m정도였지만, 현재는 36m의 석축만 남아 있다. 이곳은 통영의 우산 봉수대로 부터 연락을 받아 사천의 각산 봉수대와 사량진 봉수대 및 소을비포 진영에 전달하는 통로였다.』

 

 

 

 

 

세종 7(1425)에 편찬한 경상도지리지(慶尙道地理志) 고성현 봉수조에는 고성현의 봉수를 이렇게 기록 했다.

[自牛山烽火西望 佐耳山烽火相去陸路六十里六十步 北望天王岾烽火相去四十里三百八十步]

우산봉화로부터 서쪽으로 보면 좌이산 봉화가 있는데 거리가 육로로 6060보이고 북쪽으로 보면 천왕점 봉화가 있는데 거리가 40380보이다.

[自佐耳山烽火西望晉州任內 角山鄕主山烽火相去五十三里二十二步]

좌이산봉화로부터 서쪽으로 보면 진주관내 각산향 주산봉화가 있는데 거리가 5322보이다.

 

세종실록 150, 지리지 경상도 진주목 고성현

烽火五處, 彌勒山在縣南,東準巨濟 加羅山, 北準牛山牛山,西準佐耳山, 北準天王岾天王岾,東準曲山曲山,東準鎭海 加乙浦佐耳山,西準晋州 角山鄕主山

봉화(烽火)5곳이니, 미륵산(彌勒山)은 현() 남쪽에 있다.동쪽으로 거제(巨濟) 가라산(加羅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우산(牛山)에 응한다.우산(牛山)서쪽으로 좌이산(佐耳山)에 응하고, 북쪽으로 천왕점(天王岾)에 응한다.천왕점(天王岾) 동쪽으로 곡산(曲山)에 응한다.곡산(曲山)동쪽으로 진해(鎭海) 가을포(加乙浦)에 응한다.좌이산(佐耳山)서쪽으로 진주 각산향의 주산(主山)에 응한다.이다.

 

 

 

 

 

예종 원년(1469)에 편찬한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 고성현 연대봉화(煙臺烽火)에 따르면
[縣東彌勒山烽火 南與巨濟加羅山烽火相准 西與縣東牛山烽火相准]
현의 동쪽에 있는 미륵산 봉화는 남쪽으로 거제 가라산 봉화와 서로 마주 보고, 서쪽으로는 현 동쪽의 우산봉화와 마주본다.
[牛山烽火 西與佐耳山烽火相准]
우산봉화는 서쪽으로 좌이산 봉화와 서로 마주본다.
[佐耳山烽火 西與晉州角山烽火相准 北與天王岾烽火相准 東與曲山烽火相准 又與鎭海加乙浦烽火相准]
좌이산 봉화는 서쪽으로 진주 각산봉화와 마주 보고, 북쪽으로는 천왕점 봉화와 마주 보고, 동쪽으로는 곡산 봉화와 마주 보고, 또 진해 가을포 봉화와 마주 본다.

 

 

1530년(중종 25) 간행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의 고성현(固城縣) 봉수에는
[彌勒山烽燧 東應巨濟縣鷄龍山 北應牛山] 미륵산봉수 동쪽으로 거제현 계룡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우산에 응한다.
[牛山烽燧 南應彌勒山 西應佐耳山 北應天王岾] 우산봉수 남쪽으로 미륵산에 응하고 서쪽으로 좌이산에 응하며 북쪽으로 천왕점에 응한다.
[天王岾烽燧 東應曲山 南應牛山] 천왕점봉수 동쪽으로 곡산에 응하고 남쪽으로 우산에 응한다.
[曲山烽燧 東應鎭海縣加乙浦 西應天王岾] 곡산봉수 동쪽으로 진해현 가을포에 응하고 서쪽으로 천왕점에 응한다.
[佐耳山烽燧 東應牛山] 좌이산봉수 동쪽으로 우산에 응한다.

 

 

 

 

순조 32년(1832)에 편찬한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의 고성읍지 봉수조에는 이렇게 기록 한다.
[彌勒山 東應巨濟府加羅山 北應本府牛山] 미륵산 동쪽으로는 거제 가라산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본부의 우산에 응한다.
[牛山 南應彌勒山 北應天王山] 우산 남쪽으로 미륵산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천왕산에 응한다.
[天王山 南應牛山 東應曲山] 천왕산 남으로는 우산에 응하고 동쪽으로는 곡산에 응한다.
[曲山 東應鎭海乫浦峰 西應天王山] 곡산 동으로 진해 갈포봉에 응하고 서쪽으로는 천왕산에 응한다.
[佐耳山 南應蛇梁主峰 西應晉州角山 別將五人] 좌이산 남쪽으로 사량주봉에 응하고 서쪽으로는 진주 각산에 응한다. 별장 5인이 있다.

 

오횡묵 부사가 1893년 1월 29일부터 1894년 11월 29일까지 쓴 고성총쇄록(固城叢瑣錄) 중 부임 후 3월 19일자 기록에 실린 봉수(烽燧)의 내용이다.
[彌勒山烽燧 在縣南東應巨濟加羅山北報牛山相距水路二十五里] 미륵산봉수는 고을남쪽에 있으니 동으로는 거제 가라산에 응하고 북으로는 우산에 보고하니 서로의 거리가 물길로 25리 이다.
[牛山烽燧 在縣南南應彌勒山北報天王山相距陸路三十里] 우산봉수는 고을 남쪽에 있느니 남쪽으로는 미륵산에 응하고 북쪽으로는 천왕산에 보고하니 서로의 거리는 육로로 30리 이다.
[天王山烽燧 在縣北南應牛山東報曲山相距陸路三十里] 천왕산봉수는 고을 북쪽에 있으니 남으로 우산에 응하고 동으로 곡산에 보고하니 서로의 거리는 육로로 30리 이다.
[曲山烽燧 在縣東西應天王東報鎭海加乙浦烽相距陸路三十里] 곡산봉수는 고을 동쪽에 있으니 서쪽의 천왕에 응하고 동으로 진해 가을포봉수에 보고하니 서로의 거리는 육로로 30리 이다.
[佐耳山烽燧 在縣西南應蛇梁主峰別望北報晋州別山烽相距陸路卅里] 좌이산봉수는 고을 서쪽에 있으니 남으로 사량주봉 별망에 응하고 북으로는 진주 별산봉수에 보고하니 서로의 거리는 육로로 30리 이다.

 

 

 

출처 및 참조
경남지역의 봉수Ⅱ-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2013.11.30.)/강순형
국역 신증동국여지승람Ⅳ-고전국역총서43/재단법인 민족문화추진회-32권(1971.2.20.)
완역 난중일기-해군인쇄소/해군사관학교(1994.8.13.)
고성사료집(제1권)-고성문화원(2005.12.31.)
조선시대의 연변봉수-김주홍(2010.11.5.)
경남의 성곽과 봉수-도서출판 선인(2017.2.28.)
고성군지 1권-고성군(2015.12.31.)

고성총쇄록-고성문화원(2007.12.30.)/도서출판아이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