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거창의 서쪽을 수호하는 거창 상림리 석조보살입상

천부인권 2018. 12. 17. 06:00



2018.12.11. 거창 상림리 석조보살입상(居昌 上林里 石造菩薩立像)


거창향교를 둘러보고 거창 문화재 탐방의 마지막을 장식할 「거창 상림리 석조보살입상(居昌 上林里 石造菩薩立像)」을 만나러 가는 길에도 싸락눈은 계속 내리고 있다. 인터넷으로 지도를 봐둔 덕분에 인근의 위치까지는 잘 찾았지만 좁은 길로 연결된 마을로 진입하면서 잠시 방향을 잃어 차를 세워두고 위치를 파악하니 석조보살입상이 있는 곳을 보았다. 좁은 길이라 석조보살입상 10m 앞 어떤 집의 작은 공터에 주차를 했다. 골목길을 걷자 눈을 맞으며 서 있는 1963년 1월 21일에 보물 제378호로 지정이 된 「거창 상림리 석조보살입상(居昌 上林里 石造菩薩立像)」을 만났다.


보물 제377호인 「거창 양평리 석조여래입상(居昌 陽平里 石造如來立像)」이 거창의 동쪽을 지키는 불상(佛像)이라면 이곳 보물 제 378호인 「거창 상림리 석조보살입상(居昌 上林里 石造菩薩立像)」은 거창의 서쪽을 수호(守護)하는 불상이라 할 것이다.
이곳의 안내판은 근래에 만든 것으로 불상을 중심으로 입구의 우측에 세웠지만 뒤쪽의 촛불상자로 인해 눈에 띄지 않는 단점이 있다. 사진을 찍을 때 대부분 안내판을 촬영하는데 이 거창 상림리 석조보살입상(居昌 上林里 石造菩薩立像)은 눈에 띄지 않아 안내판은 기록하지 못했다.
이 불상과 맞붙어 동쪽에는 관음사(觀音寺)라는 작은 절집이 있는데 담장으로 둘러쳐 있어 불상의 음덕을 크게 보지 못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인간사 모든 종교 중에 가장 큰 음덕을 베푼 이가 있다면 부처일 것이다. 중이 아니라 하더라도 먹고 살기 위해 부처가 남긴 가사만 입어도 걸인을 면할 수 있고 어디서나 시주를 받을 수 있는 관습이 세상 어디에 또 있는가?





아래 두 개의 기록을 살펴보니 석조보살입상의 높이가 다르고 삼도(三道)의 개수가 다르다. 또한 불상의 결점은 나름 정리했지만 예술을 보는 시각은 보는 이의 마음에 따라 다른데 지방의 문화재라서 미적 감성이 떨어진다는 투의 시선은 잘된 표현이라 보기 어렵다.





아래는 웹에 올라 있는 타인의 사진을 보고 기록한 안내판 내용이다.
거창 상림리 석조보살입상(居昌 上林里 石造菩薩立像)
보물 제 378호
거창군 거창읍 미륵길 19-61


화강암으로 만든 3.05m 높이의 관음보살입상은 배 앞으로 든 왼손에 연봉우리, 다리 옆으로 내린 오른팔의 손가락으로 정병(淨甁)을 가볍게 쥐고 팔각의 연화좌대 위에 서있다. 인체의 윤곽이 드러나지 않는 석주형(石柱形) 신체는 어깨가 높고 팔이 가늘고 길며, 가슴은 양감이 없어 밋밋하다. 정수리에 큼직한 보계(寶髻)가 높고 머리는 별도의 보관(寶冠)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긴 얼굴에 침울한 인상, 두꺼운 목에 두 줄의 삼도선(三道線) 등 표현이 투박하고 세련미가 결여된 지방화의 모습이 역력하다. 나형(裸形)의 상체에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로 가로지르는 옷자락과 양 어깨에 숄처럼 천의를 걸쳤으며, 허리에는 치마를 입고 굵은 띠로 묶었다. 띠옷주름 등의 특징은 통일신라시대의 보살상을 계승한 고려불상의 조형감을 보여준다. 이 상(像)은 원래 인근 건흥사(建興寺)에서 봉안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경상도지역에 남아 있는 고려불상으로는 규모도 크고, 우리나라 불교조각의 흐름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로 가치가 높다.




머리에는 높은 육계가 특징이고 왼손에 연꽃봉우리를 쥐었으며 가슴에는 목걸이를 했다. 코는 훼손 됐고 가는눈과 묘한 입술이 인상적이다.



오른손 손가락에 정병(淨甁)을 쥐고 허리선에서 접혀져 드리워진 군의(裙衣)자락과 천의는 간결하다.



대좌는 복판복련좌(複瓣覆蓮座)이며 올려진 발에는 신발이 없다.




「거창군사(居昌郡史)」에 의하면 보물 제378호인 거창 상림리 석보보살입상(居昌 上林里 石造菩薩立像)을 이처럼 기록 했다.

거창 상림리 석조관음입상(居昌 上林里 石造觀音立像)
보물 제378호
거창군 거창읍 상림리 696


연화대 위에 서 있는 고려초기의 석주형(石柱形) 석불로 왼손에 연꽃봉우리를, 오른손에 정병(淨甁)을 쥐고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어깨가 각지고 신체조형이 평판적이며 전체 외형은 사각의 돌기둥 같은 느낌을 준다.
머리에는 높은 육계(肉髻)가 솟아있으며 보관은 별도로 만들어 씌웠던 것으로 보인다. 장방형의 얼굴은 침잠(沈潛)된 표정을 지었으며 목에는 한 줄로 삼도를 새겼다. 가슴에는 목걸이가 형식적으로 장식 되어 있고 통견(通肩)한 천의(天衣)는 도식화 되어 있다. 허리선에서 접혀져 드리워진 군의(裙衣)자락과 천의의 옷주름은 얇은 판을 서로 잇댄 듯 평판적이어서 마치 금동불의 옷주름을 연상케 한다. 이 석불은 고려 초기 양식을 표현하고 있으며 이 부근에 건흥사(建興寺)가 있었다고 하는데 그 사찰에 속했던 석불로 추정되며 높이는 353cm이다.




남쪽을 굽어보는 불상의 뒷모습




출처 및 참조
상림리 석조보살입상 안내판
거창군사-군사편찬위원회(1997.6)/금창인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