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남해 가천 암수바위(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3호)와 밥무덤

천부인권 2019. 1. 24. 09:01



△ 2019.1.3. 남해 가천 다랭이마을(명승 제15호)


남해 금산봉수 답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중 가천 암수바위를 보고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가천마을로 향했다. 마을에 도착했을 무렵 해는 노을로 변하는 중이라 다랭이논 풍경이 사진으로는 이상하게 나온다.
 
급 변경된 목적지 가천 암수바위가 있는 곳까지 차량으로 접근할 수는 있으나 워낙 좁은 골목길이고 급경사라 조심해야 한다. 이 가천마을은 거의 모든 집들이 가계를 하는 집으로 바뀌었고 연애인 박원숙이 운영하는 듯이 보이는 커피숍도 있다.





△ 2019.1.3. 신대를 세우고 금줄을 친 모습의 밥무덤


마을 중간쯤의 꺾어진 골목엔 남해 섬만의 독특한 민간신앙이라 할 수 있는 ‘밥무덤’이라는 3층탑 모양의 밥무덤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이곳 안내문에는 이곳 마을 중앙과 동·서쪽 3곳에 있으며, 매년 음력 10월 15일 저녁 8시경 주민들이 동제를 지내고 나서 제사에 올린 밥을 묻는 구덩이라 한다. 동서쪽의 밥무덤은 돌담벽에 감실을 만들어 밥무덤으로 쓰고 있다고 하나 찾아보지 못했다.
가천마을 밥무덤에 밥을 묻을 때에는 밥을 정갈한 한지에 서너 겹으로 싸서 정성껏 묻고 흙으로 덮은 다음 그 위에 반반한 덮개돌을 얻어 둔다. 이는 제물로 넣은 밥을 쥐나 고양이, 개 등의 짐승이 해지면 불길한 일이 생기거나 신에게 받친 밥의 효력이 없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논이 적어 벼농사가 어려운 남해 지역에서는 쌀밥은 생명을 유지해 주는 귀한 주식이기 때문에 예부터 무척 귀한 것으로 여겼다. 이에 따라 귀한 제물인 밥을 땅속에 넣은 것은 마을을 지켜주는 모든 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풍요를 점지해 주는 땅의 신, 지모신(地母神)에게 밥을 드림으로써 그 기운이 땅속에 스며들어 풍요를 되돌려 받고자 하는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다.




△ 2019.1.3. 독특한 남해 섬의 밥무덤 신앙-밥을 묻는 구조물 모습



△ 2019.1.3. 남해 가천 암수바위-동쪽에서 본 방향


남해군 남면 홍현리 849번지에 위치한 ‘남해 가천 암수바위’는 1990년 1월 18일 경상남도 민속자료 제13호로 지정되었다.
섬사람들의 억척이 만들어 낸 다랭이논으로 유명한 남해 가천마을 아래 바닷가 100m 전방에 5m 간격으로 위치한 한 쌍의 암수바위를 두고 이곳 사람들은 암미륵과 숫미륵으로 부르고 있다.
암미륵은 높이 3.9m, 둘레길이 2.3m의 크기로 여인이 아이를 잉태하여 만삭이 된 모습으로 언덕에 비스듬히 누워있고, 숫미륵은 높이 5.8m, 둘레길이 2.5m 크기로 남성의 성기모양으로 서있다. 우리나라 선돌신앙의 일종으로 기복(祈福)과 기자(祈子)를 소원하는 암수바위(미륵불)은 곳곳에 남아 있지만 ‘남해 가천 암수바위’처럼 한 쌍의 신기한 모습을 한 경우는 드물다. 이곳 사람들은 미륵불이라 하며 매년 음력 10월 23일에 풍년 기원제를 올리는 민속신앙의 대상이다. 풍농과 풍어를 바라는 주민들은 지극한 정성으로 제를 올리는데 특히 배를 가지고 어업에 종사하는 어민들은 해상사고를 방지하고 풍어를 기원하는 제를 따로 지내기도 한다. 또한 성기 숭배사상과 더불어 자녀가 없는 사람들이 자식을 생기게 해 달라는 기원을 하는 사람들도 많다. 주민들은 주위에 지저분한 오물을 뿌리거나 손가락질을 하면 손이 썩는다고 믿고 신성시하며 관리를 하고 있다.
1920년 욕지도에서 한 어선이 가천 앞바다까지 표류한 배가 있었는데 미륵노인이 나타나 뱃길을 인도하여 구해 주었기 때문에 살아난 어부들이 늙어 죽을 때까지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 2019.1.3. 남해 가천 암수바위-남쪽에서 본 방향


이 미륵은 영조 27년(1751)에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는데 당시 고을 현령 조광진의 꿈에 노인이 나타나 “내가 가천에 묻혀있는데 우마의 통행이 잦아 일신이 불편해서 견디기 어려우니 나를 일으켜 주면 필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다. 꿈에서 깨어난 현령은 관원을 모아 가천으로 가보니 과연 꿈속에 본 지세와 꼭 같은 곳이 있어 그 자리를 파보니 지금의 암수 바위가 나왔다는 것이다. 현령은 암미륵은 누운 채 그대로 두고 수미륵만 현재의 위치에 일으켜 세웠는데 그날이 음력 10월 23일이라 한다. 그날 현령은 논 다섯마지기를 헌납하고, 미륵불을 봉안하여 제사를 지내던 것이 지금까지 전해 내려 온다한다. 가천 동구 밖 해변에 있는 수바위는 발기를 한 형상이며 암바위는 아기를 밴 형상이다. 남편의 대를 이어 40년간 관리해 오고 있는 한덕아 할머니(72)는 하루도 빠짐없이 불을 켜주고 주변 청소와 부정을 탄다고 출입을 통제하고 관리를 해 왔는데 지금은 마을에서 공동으로 관리하고 있다.




△ 2019.1.3. 남해 가천 수바위


이곳 미륵에 제를 지내는 것은 여러 다른 지역의 의식과 유사하며 생식과 생산을 의미하는 성(性)의 관념이 생산 활동에 전환됨으로서 다산과 풍요를 기원하는 성스러운 행사로 인식되어 차차 신앙화 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런 점 외에 숭배사상은 성 신앙에 유교, 불교 그리고 음양사상 등 다양한 문화요소가 접목되어 성 신앙을 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천 암수미륵’에 전하는 이야기는 단순한 전설이 아니라 사람들의 간절한 소망이 낳은 문화적 요소가 강하다.




△ 2019.1.3. 남해 가천 암수바위-서쪽에서 본 방향


출처 및 참조
남해군지(상)-남해군지편찬위원회/씨티플랜(2010.2.25.)
남해군지-남해군지편찬위원회/남해문성인쇄사(1994.7.31.)
화전 고을 땅 이름 유래를 찾아서-김우영/문성인쇄사(2001.1.20.)
가천마을 밥무덤 안내판




남해 가천 암수바위-암바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