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봉수대

남해 창선 대방산봉수를 찾아

천부인권 2019. 1. 3. 08:23



2019.01.01. 남해 창선 대방산봉수로 가는 임도입구


2019년 첫날 봉림동 새해맞이 행사장에 갔다가 집에 와서 밥을 먹고 올해는 봉수탐방을 마무리하기로 마음먹었다. 11시가 훌쩍 지난 시간에 인터넷 상의 조사를 마친 남해 창선도 대방산봉수를 찾기 위해 국도2호 도로를 이용하여 목적지로 정한 ‘남해군 창선면 광천리 산 75번지’를 네비에 입력하고 출발했다. 이 번지는 차량으로 대방산(臺方山, 해발 468m) 정상부로 가는 임도(林道) 입구이다. 약간의 착오는 있었지만 13시 13분에 도착을 했다.




임도의 첫 번째 갈림길에서 좌측 진입



2019.01.01 대방산 가는 임도에서 본 금음산과 하동 금오산


임도를 가다보면 첫 번째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가면 잘 조성된 가묘(家墓)에서 바다 건너 설천면의 금음산이 조망된다. 그 뒤에는 우뚝 솟은 하동군 금오산이 위용을 자랑한다. 조금 더 오르니 임도는 비포장도로이다.





그렇게 구불구불 비포장 임도를 오르니 국사당과 대방산을 오가는 등산로가 임도와 만나는 지점이 있어 주위에 차량을 주차하고 대방산을 오르기 위해 등산 준비를 했다. 이곳에서 위치 기반 고도계는 279m 「위도 34°51′51″N 경도 127°58′47″E」를 기록했고 GPS고도계는 높이 292m를 기록했다.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강도가 상당하다. 이곳에서 대방산 정상까지 약 900m이다. 대체로 급경사는 아니지만 150m정도는 계단으로 길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그 옆으로 조그만 길을 다시 만들어 등산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대방산봉수의 서쪽으로 약 400m 떨어진 7부 능선에 대나무 밭이 있다.





대방산 정상 모습


대방산 정상에도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산불감시원이 배치되어 있다. 산불감시원과 잠시 인사를 나누고 대방산봉수(臺方山烽燧)에 갔다가 오겠다며 봉수로 길을 재촉했다. 대방산 정상에서 위치 기반 고도계는 452m, 「위도 34°51′25″N 경도 127°58′56″E」를 기록했고, GPS고도계는 높이 471m를 기록했으며 이곳 대방산표지석에는 468m라 기록했다.




2019.1.1 창선 대방산 정상



안내표지판과 안내표식이 있는 풍경


대방산 정상보다 대방산봉수는 북으로 거리 약 0.4km 떨어졌고, 고도계로 알아 본 높이는 약 20m 낮은 곳이다. 대방산봉수에서 위치 기반 고도계는 429m 「위도 34°51′34″N 경도 127°59′05″E」를 기록했고, GPS고도계는 높이 446m를 기록했다. 대방산봉수에서 대응하는 남해 금산봉수는 나무사이로 조금 보이고 북으로 응하는 각산봉수는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대응 봉수가 보일 수 있도록 관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창선 대방산봉수


원래 창선도와 사천 각산은 진주목(晉州牧)의 월경지(越境地)로 운영 되던 지역으로 광무 9년인 1905년에 남해현으로 편입되었다. 창선 대방산봉수는 남해 금산봉수에서 기초하는 노선이다. 제2거선(경부선) 제9간봉에 속한 남해안 연변봉수는 남해 금산, 창선 대방산, 사천 각산 등 3기이다. 사천 각산봉수에서는 진주 망진산, 광제산으로 연결한 봉수로이다. 창선 대방산봉수는 남해 소흘산봉수로 가서 순천 돌산도와 만나는 등 전라도 제5거선 직봉 초기 노선의 봉수와도 연결된다.




북쪽에서 본 대방산봉


대방산봉수에서 사천 각산봉수까지 북동으로 직선거리는 11.45km이고, 남으로 금산봉수와는 11.73km이며, 남서쪽 방향으로 15.84km에 남해 설흘산(소흘산)봉수가 위치한다. 또한 남해 호구산(원산봉수)와는 서남쪽으로 9.3km에 위치하고 서쪽으로 망운산봉수와 11.88km에 위치한다. 동쪽으로 22.52km에는 사량도의 칠현산에 있는 주봉봉수가 있고, 동북방향으로 19.18km에는 고성 좌이산봉수가 목격된다.





이곳 낡은 안내판에는 남해 대방산봉수대(南海 臺方山烽燧臺)를 이처럼 기록했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248호
남해군 창선면 옥천리 산 75번지


『봉수는 높은 산에 올라가서 밤에는 횃불[烽]로, 낮에는 연기[燧]로 급한 소식을 전하던 전통시대의 통신제도 이다. 이 제도는 외적의 침입을 알리는 군사적 목적에서 실시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기록상 고려 중기(12, 3세기)에 이 제도가 나타나지만, 실제로는 삼국시대 이전부터 실시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봉수제가 체계적으로 정비된 때는 왜구의 침입이 극심했던 고려 말기와 조선 초기 이후였다.
대방산 정상부에 위치한 대방산봉수대는 고려 명종(明宗, 1171~1197) 때 설치되어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봉수는 조선시대 5곳의 봉수로(烽燧路) 가운데 동래(東萊)에서 서울로 연결 되는 제2봉수로에 속한 것으로 남해 금산봉수대로부터 연결 받은 봉수를 북쪽의 사천 각산봉수대로 연결하고 있다. 현재 봉수대의 원형을 찾을 수 없지만 이곳이 봉수대 자리였음을 알려주는 지름 13m, 높이 3m의 석축과 연대로 추정되는 유지(遺址), 그리고 건물 터가 남아있다.』




연통 내부모습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에서 발행한 ‘경남지역의 봉수Ⅱ’에는 유구의 기록을 이렇게 했다.
『대방산봉수대는 1999~2000년 남해군 창선면에서 지표조사를 하였고, 연대 및 연통은 복원되었다. 평면 형태는 원형이며, 단면은 ‘凸’형태이다. 북쪽 연대 하부에 맞붙어서 방호벽(답장시설)이 있는데, 평면 형태는 타원형으로 남쪽은 높이 0.6~1.1m, 너비 0.6~1.0m, 지름은 남북 21m, 동서 17.5m이다. 서쪽은 높이 1.2m, 너비 0.8m이다. 크기 0.1~0.3m의 석재를 시용하였다. 담장의 남쪽 중앙부에는 민묘 1기가 들어서 있다. 연대는 지형에 따라서 높이 2.6~3m 둘레 44m로 말각장방형이다. 연대는 크기 120×40~0×20cm의 장방형 석재를 시용하이 막돌허튼층쌓기를 하였다. 지면부에는 지대석을 설치하고 최하단석은 큰장방형 석재를 약간 안으로 들여 축조하고 있는데, 이러한 축조방법은 거제 강망산봉수나 기장 아이봉수에서도 확인된다.
현재 복원된 연대 하단부에는 석재들이 산재해있는데, 연대 주변으로 돌아가는 양상이다. 이 양상은 연대로부터 0.5m 내외로 나타나고 있다. 석재들은 봉수대와 관련 있는 것으로 생각되나 자세한 것은 추후 조사가 필요하다. 연대의 남서쪽에는 13단의 나선형 계단시설이 있는데, 각 단은 높이 0.2m 너비 1.2m이다. 연통은 높이 2m 둘레 18m, 두께 0.9m로 원형이다. 남서쪽에 화구가 있는데, 크기는 0.8×0.9m이며 두께는 0.9m이다. 화구 아래에는 한 변의 높이 0.2m, 너비 0.9m, 전체 높이 1.1m의 5단으로 된 계단이 있다. 연소실은 동쪽에 치우쳐 있는데 원형으로 높이 0.4m, 지름 2m, 둘레 30m이다.
한편 대방산봉수대의 연대 하단부 주위 북·동쪽 공지에서 확인되는 5개소의 원형 구조물은 연대와 근접하여 배치되어 있고 그 간격이 일정함을 고려 할 때 봉수대 운영 당시 사용되었던 보조 연조시설로 추정되며, 구조는 토석 혼축이었을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현재는 북동쪽에 2기만 확인되는데 흔적만 남아있어 정확한 구조를 알 수 없다.』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 1425) 진주도 남해(晉州道 南海)에는
[煙臺烽火 縣東錦山烽火 北與晋州興善島臺方山烽火相准 西與縣南所屹山烽火相准 所屹山烽火西越大海全羅道順天東突山烽火相准]
연대봉화 : 현의 동쪽에 금산봉화가 있다. 북쪽 진주 흥선도 대방산봉화와 서로 통하고, 서쪽의 현 남쪽 소흘산봉화와 서로 통한다. 소흘산봉화는 서쪽 큰 바다를 넘어 전라도 순천 동쪽의 돌산봉화와 서로 통한다.




연통 내부에서 본 하늘풍결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1445) 경상도 진주목 곤남군(昆南郡)에는 이처럼 기록했다.
烽火三處, 錦山在南海島東, 【西準本道所屹山】 所屹山、【西準望雲山。】 望雲山在南海島南。 【北準晋州 金陽部曲陽芚】
곤남군(昆南郡) 봉화가 3곳이니 금산(錦山)은 남해도 동쪽에 있다. 【서쪽으로 본도(本道) 소흘산(所屹山)에 응한다.】 소흘산(所屹山) 【서쪽으로 망운산(望雲山)에 응한다.】 망운산(望雲山)은 남해도 남쪽에 있다. 【북쪽으로 진주(晉州) 금양 부곡(金陽部曲)의 양둔(陽芚)에 응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530) 진주목(晉州牧)에는 아래처럼 기록했고,
[臺方山烽燧 在州南一百十四里南應南海縣錦山北應角山]
[角山烽燧 在州南七十六里南應臺方山西應昆陽牛山北應泗川鞍岾]
[望晉山烽燧 南應泗川鞍岾北應廣濟山]
[廣濟山烽燧 在州北三十一里南應望晉山北應丹城笠巖山]
대방산봉수 주(州) 남쪽 1백 14리에 있다. 남쪽으로 남해현 금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각산에 응한다.
각산봉수 주(州) 남쪽 76리에 있다. 남으로 대방산에 응하고 서쪽으로 곤양 우산에 응하며, 북쪽으로 사천 안점에 응한다.
망진산봉수 남으로 사천 안점에 응하고 북으로 광제산에 응한다.
광제산봉수 주(州) 북쪽 31리에 있다. 남으로 망진산에 응하고 북으로 단성 입암산에 응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530) 남해현(南海縣)에는 3곳의 봉수를 기록하고 있다.
[錦山烽燧 北應晉州臺方山西應所訖山及猿山]
[所訖山烽燧 東應錦山北應猿山]
[猿山烽燧 東應錦山南應所訖山]
금산봉수 북쪽으로는 진주 대방산에 응하고 서쪽으로 소흘산 및 원산에 응한다.
소흘산봉수 동쪽으로 금산에 응하고 북쪽으로 원산에 응한다.
원산봉수 동쪽으로 금산에 응하고 남쪽으로 소흘산에 응한다.





여지도서(輿地圖書, 1760) 진주도 남해(晉州道 南海)에는
[錦山烽燧 在縣 東三十里 北報 晉州 臺方山烽 相距四十五里 西報 所訖山烽 相距三十五里 北報 猿山烽 相距二十里]
금산봉수는 현의 동쪽에 있으며 30리이고, 북쪽의 진주 대방산봉수에 알리고 거리는 45리이다. 서쪽의 소흘산봉수에 알리고 거리는 35리, 북쪽의 원산봉수에 알리고 거리는 20리이다.





남해 납(원)산봉수

남해 설흘(소흘)산봉수

남해 미조 망운산봉수


남해 금산봉수


창선도 대방산봉수


사천 각산봉수


사천 안점산봉수

사천 우산봉수

 ⇔

 진주 망진산봉수



진주 광제산봉수 ⇔ 단성 입암산봉수 ⇔ 삼가 금성산봉수 ⇔ 합천 소현봉수 ⇔ 거창 금귀산봉수 ⇔ 거창 거말흘산봉수 ⇔ 상주 지례현 구산봉수





출처 및 참조
경남지역의 봉수Ⅱ-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2013.11.30.)/강순형
남해의 관방유적 성곽과 봉수-남해문화원(2011.12.29./김우영, 민부경-문성인쇄출판사.
조선시대의 연변봉수-김주홍(2010.11.5.)/한국학술정보(주)
경상도속찬지리지(慶尙道續撰地理志, 1425)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1445)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1530)
여지도서(輿地圖書, 1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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