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8.22비음산 불곡사 일주문
경상남도 시도유형문화재 제133호인 불곡사일주문(佛谷寺一株門)은 성산구 대방동 1036-1번지에 위치한다. 불곡사일주문은 창원도호부 객사의 3문 중 하나로 건설되었으나 조선의 멸망과 비운을 함께 하며 1882년 객사가 폐지되면서 웅천향교(熊川鄕校) 외삼문으로 이건 되었다. 이후 1914년 일제의 민족문화말살 정책으로 1읍 1향교를 주장하며 창원시에 있었던 창원향교, 진해향교, 웅천향교를 창원향교로 통합하여 웅천향교는 헐리고 문만 남아있던 것을 1943년 우담화상(雨潭和尙)이 이곳 불곡사 입구에 옮겼다고 한다.
1977년 일주문은 해체·복원되었으며 이 과정에서 창원도호부 객사 상량문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며, 이는 현상남불곡사일주문상량문(現上南佛谷寺一株門上樑文)으로 제목을 바꾼 것으로 보이나 내용은 창원도호부의 내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불곡사일주문을 지을 당시 도목수는 통영 사람인데 이들이 창원까지 와서 건물을 지은 것은 통영통제부의 건물을 지었던 이름 난 목수들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불곡사 일주문 주련
世尊座道場 세존께서 도량에 앉으시어
淸淨大光明 청정한 큰 밝은 빛을 내시네
比如千日出 천개의 해가 뜬 듯
照耀大千界 대천세계 두루 비쳐주네
2019.8.22 불곡사 일주문 좌측 호랑이와 청룡
일주문의 처음 건물 높이는 2.2m이었으나 현재는 1.95m정도 이다. 건물은 겹처마로 맞배지붕을 한 다포계(多包系)건물로 정면 3칸 규모로 일반적 절 일주문에 비해 대단히 큰 편에 속한다. 기둥간격은 중앙이 2.4m이고, 좌우 양쪽은 2.2m이고, 어간(御間)과 양 협간(夾間)에는 각각 공간포(空間包) 1구씩 배치되어 있으며, 출목은 전후 모두 4출목이며, 출목 간격은 넓어서 첨차 수장폭의 3배가량이나 된다.
기둥 위의 공포(栱包)는 4출목(四出目)의 복잡한 포작(包作)으로 짜여 있고 조각도 매우 화려한 다포계양식(多包系樣式)의 맞배집이다. 용두(龍頭) 쇠서(牛舌)와 쇠서 아래 위의 연꽃 등의 조각솜씨로 보아 조선 말기의 건축물 형식을 보인다.
일주문의 보에는 황·청룡를 비롯한 현무, 호랑이 등을 새겼는데 4신수(四神獸)¹⁾는 아닌가 하고 생각했으나, 『불곡사일주문 기록화 조사보고서』의 내용 중에는 불곡사 주지 호산화상²⁾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일주문은 천지음양전기를 집중시켜 세운 문으로 조각은 음양서에서 보기를 들어 음기는 북방에 있다 하여 북방 16수(水)를 나타내어 6용이 서려 있고, 양기는 남방에 서려 있다 하여 남방 27화(火)의 봉(鳳) 14마리가 4출목 위에 새겨져 있다고 한다. 또 하도낙서(河圖洛書)³⁾ 9궁8쾌를 보면 8쾌는 거북이가 바다에서 육지로 나와 운수를 전하는 것이라 하여 거북이 동쪽 기둥의 두공으로 받쳐 있으며 호랑이는 산중의 맹수로 산을 나타내어 서쪽 기둥 위에서 으르릉 대고 있다고 했다. 일주문은 동서남북의 사방을 나타낸 4기둥을 일렬로 한 것으로 천지음양 오행이 포함된 것으로 하도낙서(河圖洛書) 9궁8쾌의 진리를 문의 보에 새겨 계룡의 뜻이 내포되어 있다.」했다.
일설에 따르면 6용(六龍)은 조선의 건국과 관련이 있는 목조(穆祖)·익조(翼祖)·도조(度祖)·환조(桓祖)·태조(太祖)·태종(太宗)을 표현하여 창원도호부 객사의 출입문을 장식하여 조선왕조의 위엄을 나타냈다고도 한다.
【주석】
4신수(四神獸)¹⁾ : 사신(四神)은 ‘사령(四靈)’ 또는 ‘사수(四獸)’라고도 하는데 동쪽의 청룡(靑龍), 서쪽의 백호(白虎), 남쪽의 주작(朱雀), 북쪽의 현무(玄武)를 일컫는다.
호산화상²⁾ : 불곡사 4대 주지로 1965년부터 1972년까지 서임했다.
하도낙서(河圖洛書)³⁾ : ‘하도(河圖)’는 복희씨 때 황허 강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그려져 있었다는 그림이고, '낙서(洛書)'는 우 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낙수에서 나온 신귀의 등에 쓰여 있었다는 글이다. 복희는 하도에 의해 팔괘를 그렸고, 우는 낙서에 의해 홍범구주(洪範九疇)를 지었다고 한다. 조선 초기의 성리학자인 권근은 <입학도설>에서 소옹이 그린 하도와 낙서가 오행의 상생과 오행의 상극을 도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주문 보의 6용 중 하나
2019.8.22 일주문 우측 거북과 청룡
우측 측면에서 본 모습(현무도 황·청현무가 있다)
좌측의 호랑이는 숫컷 한마리로 아래를 보고 있다.
[原文]
現上南佛谷寺一株門上樑文
伏以 蓋久經構 方歎三楹之頹圮 爰謀重建 聿覩兩甍之玆新 雀賀堂成 鰲抃喜溢 竊惟僚幕之重任 實在官府之下風 掌耳目視聽之司 通政令之得失 居喉舌出納之所 贊風化之承宣 顧玆檜山之爲府 迺是湖海之翰屛 控三色之界 爲都護之官 膺百里之寄 係生靈之命 任大責重 必選偏裨之人 設廳置堂 近任鈴閣之下 年久月積 方見屋樑之頹 僉謀衆詢 乃協重修之議 將撤舊舍 爰鳩新材 衆夫樂趍 役鬼傭而猶丕 工匠效力 知不日而乃成 雙甍翼如 城郭之顔色頓改 一堂高出 溪山之光景增新 密邇聽政之堂 克便卯酉之來往 觀察匽草之化 采采甲乙之衆論 允矣百和之是廳 展也一邑之關係 恭疏短律 助擧雙虹
兒郞偉抛樑東 向陽樓影壓新豊 地靈山擁金星聚 天勢朝開海日紅
抛樑南 蟠龍回首海中涵 山容轉轉遙當戶 竹色猗猗翠似藍
抛樑西 緲緲之懷望美兮 懶鶩朝飛亭樹密 烽烟夕照斗山低
抛樑北 溟海茫洋萬仗色 斗轉蒼杓回七星 高山天柱遠宸極
抛樑上 列宿遙應應武帳 日晩華簷飛賀鷰 書間畵戟語名將
抛樑下 衣冠釖佩滿高廈 雙霓蟠礎畵方花 曉露疑寒照碧瓦
伏願 上樑之後 府中泰安 廳才彬蔚 政堂承化 可見於變民風 幕府率仁 庶騰太平歌曲 神其持鬼鬼其護 俾乃鞏藩障之重基 遊於斯樂於斯 永萬春兌紀之移刱
嘉慶元年丙辰七月初九日辰時開基 同月十七日申時立柱 二十一日申時上樑
府使通政趙公諱蒙錫 居南陽
行首閑良趙碩良
兵房嘉善崔致興
賑恤監官閑良李震成
軍器監官閑良全再權
迎送監官閑良劉再漢
搗砧監官閑良金銀得
掌務軍官閑良李日成
成造監官前行首朱德奎
別任閑良李震成
掌務閑良金銀得
五面建立
府內面前行首朴來新
南面前別將金鼎德
前兵房姜致璜
西面前軍器監官朴泰根
前兵房黃大彬
北面前軍器監官金重器
閑良辛慶德
東面前別將張昌福
都木手統營裵鳳三 鄭東牙 徐龍福
咸安趙禹植
固城李永世 崔時老末
[해문]
현 상남 불곡사 일주문 상량문¹⁾
엎드려 생각건대 건립한지가 오래되어 세 기둥의 무너진 모습을 탄식했네. 중건을 추진하여 새워진 두 용마루를 보게 됐네. 낙성한 새 건물²⁾에 모두들 기뻐하네³⁾. 삼가 생각하건대 막료의 중요한 임무는 정녕 관부를 보좌하는 아랫자리이네. 귀로 듣고 눈으로 보는 일을 맡아 정령(政令)의 잘 잘못을 막힘없이 알게 하네. 목구멍과 혀처럼 들어오고 나가는 곳에 거하여 교화를 받들어 선양하는 일을 돕네. 회산부(檜山府)⁴⁾의 역할을 생각해보니 호수와 바다의 기둥과 병풍이라네. 새 고을 통제하는 이는 도호부사이니 백리의 땅을 받았으며 백성의 목숨과 관련이 있네. 책임이 중대하여 반드시 편비(偏裨)⁵⁾의 사람을 선발하여 관청이 설치되자 가까이 영각(鈴閣)⁶⁾의 아래에서 호위를 맡네.
세월이 오래 지나자 지붕과 들보가 무너지게 되자 많은 사람이 함께 의논하여 중수의 뜻을 모았네. 옛 건물을 철거하고 새 재목을 모았네. 많은 사람이 즐거이 달려오니 귀신을 부려도 명을 받들겠네. 목수들이 힘을 다하니 하루도 되지 않아 이루어 질 것을 알겠네. 한 쌍의 용마루가 날아갈 듯하니, 성곽의 모습이 확 바뀌었다. 건물이 높이 솟으니 산수의 풍경이 더욱 새롭다. 정사를 다스리는 건물이 매우 가까워 동서로 왕래하기에 편리하며 백성들의 풍속을 자세히 살펴 다양한 논의들을 채집했다네.
진실로 모든 화합이 이 청사에서 나오니 참으로 한 고을이 관계된 곳이어라. 공손히 짧은 시를 아뢰어 쌍무지개 같은 두 용마루를 올리는 일을 돕노라.
어영차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태양을 향한 누각 그림자가 신풍역(新豐驛)을 누르네. 땅은 신령하고 산은 감싸 안아 금성이 모이고 하늘의 기세가 아침마다 열려 바다의 해가 붉구나.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니, 서린 용이 머리를 돌리며 바다에 잠겨있네. 구불구불한 산 모습은 멀리서 문 앞을 마주하고 우거진 대나무의 채색은 푸른빛이 쪽풀 같다.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한없는 그리움으로 미인을 바라보네. 따오기는 아침에 무성한 정자나무 위를 느릿하게 날아가고 봉홧불이 저녁에 켜질 때 북두성이 산으로 내려 가구나.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니, 망망한 바다는 만 길의 빛깔이네. 북두성 푸른 자루가 돌아가니 일곱 별들이 회전하고 높은 산 천주산은 멀리 신극(宸極)⁷⁾에 닿았구려.
들보를 위로 던지니, 늘어선 별들이 멀리서 무장의 장막을 총총히 비추네. 저물녘엔 화려한 처마 위로 축하하는 제비가 날아가고 낮에는 삼엄한 큰 창이 이름난 장수를 말한다네.
들보를 아래로 던지니, 의관을 차려 입고 칼(釖) 찬 사람들이 웅장한 집에 가득하네. 쌍무지개 서려 있는 주춧돌엔 활짝 핀 꽃을 그려 놓았고 찬 기운에 맺혀진 새벽이슬은 푸른 기와를 비추구나.
엎드려 바라건대 들보를 올린 후에 창원부가 태평하고 청사의 문채가 찬란하기를 정당(政堂)은 교화를 받들어 백성의 풍속이 변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으며 막부는 인정(仁政)을 베풀어 태평의 노래를 드날리기를 신령이 지키고 귀신이 보호해서 변방 방어의 중요한 기지를 공고하게하기를 여기에서 노닐고 이곳에서 즐거워하며 영원토록 봄날처럼 기뻐하면서 이건을 기록하노라.
가정원년 병진년(1796) 7월 초9일 진시(오전 7~9시)에 터를 닦았고 같은 달 17일 신시(오후 3~5시)에 기둥을 세웠으며 21일 신시에 상량했다.
부사 통정대부 조공(趙公) 휘 몽석(蒙錫)⁸⁾의 사는 곳은 남양(南陽)이다.
행수 한량 조석량(趙碩良)
병방 가선대부 최치흥(崔致興)
진휼감관 한량 이진성(李震成)
군기감관 한량 전재권(全再權)
영송감관 한량 유재한(劉再漢)
도침감관 한량 김은득(金銀得)
장무군관 한량 이일성(李日成)
성조감관 전 행수 주덕규(朱德奎)
별임 한량 이진성(李震成)
장무 한량 김은득(金銀得)
오면건립(五面建立)
부내면 전 행수 박래신(朴來新)
남면 전 별장 김정덕(金鼎德)
전 병방 강치황(姜致璜)
서면 전 군기감관 박태근(朴泰根)
전 병방 황대빈(黃大彬)
북면 전 군기감관 김중기(金重器)
한량 신경덕(辛慶德)
동면 전 별장 장창복(張昌福)
도목수 통영 배봉삼(裵鳳三) 정동아(鄭東牙) 서용복(徐龍福)
함안 조우식( 趙禹植)
고성 이영세(李永世) 최시로말(崔時老末)
【주석】
일주문 상량문¹⁾ : 작성 시에는 창원도호부 객사 상량문이었으나 후대에 불곡사 일주문 상량문으로 재목을 바꾼 것이다. 원본에는 수정한 자국이 있다.
새 건물²⁾ : 원문의 작하(雀賀)는 연작상하(燕雀相賀)의 고사에서 인용한 말로, 큰 집이 새로 지어지면 보금자리가 생겼다고 제비와 참새가 서로 축하한다는 의미이다.
기뻐하네³⁾ : 원문의 오변(鰲抃)은 몹시 기뻐 손뼉을 치고 춤을 추면서 하는 축하를 뜻한다.
회산부(檜山府)⁴⁾ : 창원시의 옛 이름
편비(偏裨)⁵⁾ : 대장을 보좌하며 소속 부대를 지휘하던 편장(偏將)을 말한다.
영각(鈴閣)⁶⁾ : 장수나 지방장관이 집무하는 곳을 말한다. 여기서는 창원도호부사의 관소를 가리킨다.
신극(宸極)⁷⁾ : 천제(天帝:하느님)가 사는 곳을 말한다.
조공(趙公) 휘 몽석(蒙錫)⁸⁾ : 창원부 객사의 일주문을 만들 때 부사는 조몽석(趙蒙錫)이라고 이 상량문에는 기록 되어 있다. 조몽석趙蒙錫은 을묘년乙卯年(1795) 6월에 창원도호부에 부임하였다. 병진년丙辰年(1796) 8월에 김해영장金海營將과 상피하느라 교체되었다. 무신으로 서울 사람이라는 사실과 본문에 나와 있는 내용과 정조 17(1793)년에 순장巡將으로 뽑혔다는 사실 이외에 어떠한 사람인지 알 수 없다.<정조실록>
불곡사 비로전 주련
世尊當入雪山中 세존께서 설산에 한 번 들어가시더니
一坐不知經六年 한 자리에 앉아 6년이 지남을 알지 못하셨네.
因見明星云悟道 샛별을 보고 크게 깨달았으니
言詮消息遍三千 한마디 그 소식 삼천세계에 두루 하도다.
불곡사 관음전 주련
白衣觀音無說說 백의관음 말없이 설법하시고
南巡童子不聞聞 남순동자 듣지 않고 들어주시네.
甁上綠楊三際夏 병속의 버들가지 언제나 여름인데
巖前翠竹十方春 바위 앞 대나무는 시방세계의 봄일세.
溪聲便是廣長舌 시냇물 소리는 부처의 광활한 설법이요
山色豈非淸淨身 아름다운 산의 모습은 청정한 부처의 몸일세.
불곡사 칠성각 주련
古聖與悲作七星 옛 성인이 자비심으로 칠성을 만드시니
人間壽福各司童 인간의 목숨과 복을 각각 관장함이라
隨感赴緣如月印 천강에 달 비추듯이 인연 따라 감응하며
空界循環濟有情 허공계에 돌고 도는 유정들을 제도 하도다
출처 및 참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불곡사일주문
불곡사일주문 기록화 조사보고서-창원시청/경남대학교 산학협력단(2017.8)
한국의 건축문화재-강영환/기문당(1999.9.25.)
역주 창원부읍지-창원문화원/민긍기(2005.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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