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진동면 다구리 도만마을 전주이씨 영모재 永慕齋

천부인권 2019. 12. 22. 21:07



2019.7.5. 진동면 도만마을 전주이씨 영모재(永慕齋)


합포구 진동면 다구리 39-5번지에는 전주이씨 영모재(永慕齋)가 위치한다. 서북쪽 86m 뒤에는 전주이씨의 큰집인 모담재(慕潭齋)가 있는데 2011년 구산면 반동리에서 로봇랜드사업으로 토지가 수용되어 이곳으로 이건해왔다.
도만(道滿)마을의 영모재(永慕齋)는 대문인 경화문(敬和門)과 본당인 영모재(永慕齋)로 이루어져 있고 집은 콘크리트벽돌로 건축했고 지붕은 전통한옥 형태인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건물은 2000년도에 지었고 후손 학윤(學允)이 지은 국한문 혼용의 기문(記文)이 걸려 있다.




대문인 경화문



경화문(敬和門) 편액



영모재(永慕齋) 전경



2019.7.5 영모재(永慕齋) 편액




永慕齋 柱聯[해문 문산]
齋屹乎古里陽 재당이 우뚝 솟으니 옛 마을의 햇볕처럼
瑞氣繞草木芳 상서로운 기운이 둘러쌓고 초목은 향기롭구나.
山節高水流長 산의 절개는 높고 물은 장구하게 흐르니
慕先德睦宗族 선조를 그리워하는 덕처럼 종족과는 화목하라.





永慕齋記

우리 六代祖處士府君諱尙春公은 英祖辛卯생으로 癸巳十一月四日에 卒하시니 享壽六十三歲였으며 府君은 太宗王子孝寧大君의 十七歲孫이요 考의 諱는 國大公이시다. 我中祖茂山副正公이 燕山靖難을 만나 멀리 영남 咸安으로 隱居하시고 尙春公의 高祖戒弘公께서 全羅道玉果로 移居하셨다가 龜山面 욱곡으로 移居하시니 尙春公은 다시 이곳 道滿으로 世居하셨다. 이제 二百여년이 지났으며 府君의 天性이 仁厚하고 품행이 端正하여 修身齊家에 힘쓰시고 後孫敎養에 至極하였으며 家業에 근면하시고 주경야독으로 文學연마에 專心하였고 一生동안 父慈子孝하고 和氣滿堂하여 향리의 수범이 되었으며 宗族敦睦하고 交友에 誠信하며 先祖유업에 힘을 다하였다. 오호라 歲月이 流久함에 後孫이 四方으로 散居하여 合心一致가 不可한지라 追慕의 齋堂을 이루지못함을 累年傷心트니 요행으로 宗議 끝에 府君墓域下里洞內에 三間齋堂을 建立하고 額號를 永慕齋라 함은 先祖를 永久히 追慕한단 뜻이요. 門互를 敬和門이라 함은 宗族間에 서로 존경하고 화목하단 뜻인지라 萬派의 물이 一原에서 흐르는 理致와 같이 祖上의 百子千孫이 번창하고 一理인지라 報本의 眞理를 後孫인바 어찌 不覺하리요. 府君의 孝友敦宗心과 그 높은 유덕을 기리며 相互間에 親族 心을 培養하여 永久無窮토록 힘써 建立한 재당수호와 더불어 祖先追慕의 정성을 다할 지며 後孫敎訓에 힘쓸지어다.
庚辰秋尙春公六代胄孫學允謹記(2000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