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구산면 내포리 남양홍씨 봉양재 鳳陽齋

천부인권 2020. 2. 6. 07:27



2020.2.2. 내포리 남양홍씨 봉양재(鳳陽齋)


구산면 내포리 305번지(내포1길 120-22)는 남양홍씨의 재실 봉양재(鳳陽齋)가 있다. 내포리를 가기 전 봉양재(鳳陽齋)의 기문은 읽어봤다. 마을을 한 바퀴 돌다가 만난 이 재실은 문이 잠겨있어 기문들을 기록할 수는 없었고 『마산문화지』의 봉양재기(鳳陽齋記) 기록을 옮겼다.
대문에는 남덕문(攬德門)이라는 편액을 달았고 재(齋)에는 봉양재(鳳陽齋)로 편액 했으며 주련을 걸었다.




2020.2.2 내포리 남양홍씨 봉양재 대문 남덕문(攬德門) 편액



2020.2.2 남양홍씨 봉양재 전경


鳳陽齋記
昌原治之南三十許 有洞曰內浦錦山聳 其北東有白靈 西有女嶼洞府通闊 山水明麗 有閣翼然出煙雲際扁曰 錦陽者南陽洪氏 爲其先祖 巴南公諱秉黙 而建築者也 齋凡三間 燠室凉軒風欞月窓 各得其宜 可以會諸孫 可以薦邊豆 可以讌賓客矣 日其後裔義茁性魯同吾友 洪象武象元訪 余而請齋記 余曰有是哉 肖孫之肯構也 凡有其誠者 力患不贍 有其力者誠 或不及而諸公 今殫力盡誠克 敦大擧輪奐之美 聳人睹聽 追遠報本天理之常 人道之宜也 詩曰 惟桑與梓 必恭敬止 況祖先平 日棲息之地 豈可無一間之舍哉 惟願僉公勿謂齋舍之已成 爲幸居家 而孝友勤儉處世 而謹愼謙恭 上以承祖先之遺德 下以垂後孫之模範 永世不替 則斯齋之名 與彼鳳山無窮矣 勉之勉之
辛酉 小滿節 咸安 趙鏞述 記
           月城秋江 崔鴻烈 謹書


봉양재기(鳳陽齋記)
창원 치소의 남쪽 30리쯤에 내포리라 하는 마을이 있는데 금산(錦山)이 솟았고 그 북동쪽에 백령고개가 있고 서쪽에는 여섬(女嶼:처녀섬)이 있어 마을과 널리 통해졌더라. 산수가 맑고 아름다운 곳으로 안개구름 피는 끝에 집이 날아갈 듯 솟아있으니 현판을 금양(錦陽)이라 하였고 남양홍씨들이 그 선조 파남공(巴南公) 병묵(秉黙)을 위하여 지은 것이다. 재실은 3칸이요 따듯한 방과 서늘한 마루, 바람이 이는 난간, 달빛 비치는 창은 각기 제대로 갖추어졌으니 가히 후손들이 모일 수 있고, 가히 제사를 받들 수 있고, 가히 빈객들이 모일만 하도다. 하루는 그 후예 의줄(義茁) 성노(性魯)가 나의 벗 홍상무(洪象武) 상원(象元)과 같이 나를 찾아와 재실 기문을 청하기에 내가 말하기를 옳구나 초손(肖孫)들이 즐거이 재실을 지었네 하였도다. 무릇 그 정성이 있어도 힘이 넉넉지 못하면 근심이고 그 힘이 있어도 정성이 혹 미치지 아니하면 도리가 아니라 제공들은 지금 힘 다하고 정성 다하여 큰 거사를 돈독히 하여 장대하고 아름다움을 사람들이 보고 듣기에 우뚝하다 한다. 먼 조상을 추모하고 은혜를 갚음은 하늘의 이치에 떳떳함이요 사람의 조리에 옳음이라. 시경에 말하기를 뽕나무와 더불어 가래나무는 반드시 공경함이 이르다 하였으니 하물며 선조께서 평생 사신 땅에 어찌 가히 한칸의 집이 없을 손가 오직 원하는 것은 여러분 들이 재실을 이루었다고 이르지 말고 집에서는 부모에게 효도를 다하고 형제끼리 우애가 있으며 근검하고 처세에는 근신하고 겸손하며 공경함이 행복이 되고 위로는 선조의 유덕을 이어받고 아래로는 후손된 자의 모범을 행하여 영세토록 바꾸지 아니하며 재실 이름은 저 봉산(鳳山)과 더불어 무궁하니 힘스고 힘쓸지어다.
신유 소만절 함안 조용술 기록함.
       월성인 추강 최홍열 삼가 씀.




봉양재 편액



館亭遺址月傳神

會族睦生春日新

銀樹流波風送響

薦羞誠盡秋霜感


출처
마산문화지-마산문화원/삼덕정판인쇄사(2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