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구산면 내포리 성산이씨 원모재 遠慕齋

천부인권 2020. 2. 11. 08:38



2020.2.2. 내포리 성산이씨 원모재 전경


성산·광평(星山·廣平)이씨의 재실인 원모재(遠慕齋)는 구산면 내포리 592번지(내포2길 155)에 위치하며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25M로 표하고 「위도 35°05′56″N 경도 128°34′32″E」라 알려 준다.
내포마을의 서쪽 끝에 위치하는 성산(광평)이씨의 원모재(遠慕齋)는 마을의 집이 끝나는 곳에 있으며 대문에는 편액이 없고 본당에만 원모재(遠慕齋)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내부에는 성주 이병효(李炳孝)가 쓴 원모재기(遠慕齋記)가 한문과 국한문 혼용체로 쓴 것이 걸려 있다.
마당에는 종려나무와 주목과 단풍나무 등이 있지만 가장 눈에 들어오는 것은 제법 크게 자란 치자나무였다. 치자꽃이 필 때면 수백개의 향불보다 향기로운 향기가 날 것으로 생각한다. 이 원모재(遠慕齋)는 종문공(宗文公) 이동채(李東彩)와 이하 성주이씨의 선조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2020.2.2 내포리 성산(광평)이씨 원모재 전경



원모재(遠慕齋) 편액




遠慕齋記
舊漆原縣治南 龜山面一舍之地 有里名內浦者 卽星山(一云廣平)李氏之世庄也 北有錦石山 南有玉女峯 淸溪流其間 平衍饒田園之樂位 於其中有新構 傑然而立者 諸李氏其派祖 宗文公東彩以下列先祖而作也 名之曰遠慕齋 其堂室軒庭 足以需聚族肄業之用 山川雲物 足以發登 嘯詠之趣 後孫石志 碩載兩君書 其事訪余于谷安之寓 以記文請曰 吾先世簪纓 不絶境內 閥族中世 自星州卜居咸安 不過數代 又遷內浦後至 今世逾六七戶至 百餘諸族咸言列 先祖遺地 不可無寓慕之所 乃於乙丑仲春 始役不幾 月而工訖 故請子之惠 一言余聞 人之恒言曰 誠力誠言物謂 有誠心有其物力 則事無不成 此固善矣 然有物力者 或欽誠心有誠心者 或之物力二者 不可兼與其有物力 而缺誠心 寧之物力 而有誠心盖物有時 而盡則誠亦遠矣 誠無處而息 則物自隨之 此其理固不誣 而今於李氏庇驗其然矣 余尙未聞李氏 有富厚稱者 而惟集其誠卒就 此事可不敬歟記曰 有其誠則有其神無 其誠則無其神 著存不忘乎心 又曰齊明盛服 以承祭祀洋洋乎 如在其上 如在其左右繼之曰 誠之不可掩 如此然則將見李氏 烈先祖之靈 陟降于斯而曰 吾其有後乎 其云神之格 思不可度思矧可射思者 不在是也 歟聞是役也 相福石志碩載 東才諸君爲經 始而成終 故玆特附書 以著其賢勞也
歲乙丑四月 日
星州後人 李炳孝 記
全州 李完燮 書刻


원모재기(遠慕齋記)
옛 칠원현 치소의 남쪽 구산면에 한 재실이 있는 곳의 마을 이름은 내포리인데 즉 성산(광평)이씨(李氏)들이 대대로 살아온 곳이다. 북쪽은 금석산(錦石山)이 있고 남쪽은 옥녀봉(玉女峯)이 있어 맑은 시내가 흐르고 그 사이에 평평하고 넓은 전원이 풍요롭고 알맞게 위치하였고 그 안에 새로 지은 걸출하게 세워진 집은 모두 이씨들이 그 파조 종문공(宗文公) 동채(東彩) 이하 여러 선조들을 위하여 지은 것이요 이름 하여 원모재((遠慕齋)라 하였다. 당과 방 마루 뜰은 친족이 모여 공부방으로 쓰기에 족하고 산천의 운물(雲物:경치)는 재실에 올라 휫바람 불며 읊조려 정취를 일으키기에 족하도다. 후손 석지(石志), 석재(碩載)¹⁾ 양군이 그 사실을 써서 곡안(谷安)에 사는 나를 찾아와 기문을 청하고 말하기를 우리 선조는 대대로 큰 벼슬이 끊어지지 않았고 경내에서 벌족으로서 중세에 성주로부터 함안에 와 살았는데 불과 수대에 내려와 또 내포로 옮긴 후 지금 수세대가 6,7대를 넘었고 백여명 제족들이 다 말하기를 여러 선조가 남긴 터에 우묘(寓墓)할 장소가 없음은 불가하다고 하였다. 이에 을축년 중춘에 공역을 시작하여 몇 개월만에 공사를 마친 고로 선생에게 은혜로운 말 한마디를 청한다고 하였다. 내 듣건대 사람들이 항상 말하기를 정성스러운 힘, 정성의 말, 마음과 힘, 말과 재물과 성심이 있다. 일컬었고 그 재물과 힘이 있으면 곧 일을 이루지 못함이 없으니 이런 고로 착함이라 그런고로 재물과 힘이 있다는 것은 혹은 성심이 있고 공경하고 성심과 혹은 물력(物力) 두 가지가 겸하기가 불가하고 그 물력이 있어도 성심이 결여 되면 안 되므로 물력은 성심이 있음이라 하였다. 대개 재물은 때가 있어 다해지면 역시 정성도 멀어짐이라 정성이 없는 곳에는 멈추어지고 물력도 스스로 이에 따라감이라 그 이치는 본래 꾸밈이 아니니 지금 이씨들은 그런 것을 잘 다스려 징험하네 내 일찍 이씨들이 큰 부자로 칭하는 사람들을 듣지 못했고 오직 그 정성을 모아 이 일을 이루어 마치니 가히 존경하지 아니하랴 기록하여 이르기를 정성이 있으면 곧 신이 있고 정성이 없으면 신은 없음이니 나타내고 존재하는 그 마음 잊지 않으리 또 말하노니 재계 맑게 하고 성복(盛服)하여 제사 받들어 이음이 양양하니 그 위에 신께서 계시는 듯하고 그 좌우에 신께서 계시는 듯하네 계속 말하노니 정성은 가려지지 않으니 그런고로 장래 이씨의 모든 선조영령께서 이에 척강하시어 말하기를 나에게 이러한 후손들이 있다 할 것이고 그렇게 이르는 것은 신께서 바로 보았음이니 생각이 과도함이 아니요 하물며 우연한 생각은 이에 있지 아니 하도다 이 공역에 상복(相福), 석지(石志), 석재(石載), 동재(東才) 제군들은 처음 터를 닦아 마침내 이루었으니 그런고로 특별히 글을 빌어 그 수고로움을 표하노라.
을축년 4월 일
성주후인 이병효 기록함.
전주 이완섭 글씨 쓰고 편액에 새김.


【주석】

석재(碩載)¹⁾ : 석재(石載)의 오기인 듯하다.





遠慕齋記
萬古에 絶景 우뚝 솟은 靈峯 玉女가 비단 짜는 形狀 玉女峯과 錦石山 사이로 맑게 흐르는 시냇물이 기름진 땅을 이룬 이곳 內浦洞에 星山(廣平)李氏一門이 아담한 재실을 세우고 이름 하여 遠慕齋라 한다. 이 齋는 中國華閥인 李氏 神堂으로서 온門中諸族이 저마다의 誠金을 모아 오늘에 成就하였고 그들의 派先祖宗文公諱東彩를 비롯하여 그 以下列先祖神靈을 모신 곳이다. 近世에 와서 거센 洋風의 勢에 밀려 固有한 우리의 根源이 차츰 흔들리는 즈음에 李氏諸宗은 오직 崇祖 및 敬宗의 一念으로 서로 일깨우고 鉃石같이 뭉처서 이 어려운 일을 期於히 이룩하였으니 참으로 거룩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도다. 元來 뿌리 없는 나무가 어디 있으랴 祖上을 섬기는 일은 나무뿌리에 밑거름 주는 것과 같거널 至今이 李氏諸宗은 열띤 崇祖의 至誠이 엉겨 그들의 뿌리를 한결 굳게 하였으니 반드시 그 줄기와 枝葉이 繁盛할 것이요 後日까지 아름다운 꽃이 피고 열매가 맺을 것이다.
아! 李氏先靈들이시여!
여기 肯構肯堂에 億千萬㥘으로 고히 冥福을 누리시고 갸륵한 後孫들의 承先裕後一念에 同恭하사 永世無窮 깃드소서.
檀紀四三一八年乙丑四月日
星州 李炳孝 지음


출처
마산문화지-마산문화원/삼덕정판인쇄사(2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