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진전면 평암리 백암마을 남양홍씨 백암재 柏巖齋

천부인권 2020. 4. 8. 18:34



2019.7.2. 평암리 백암마을 남양홍씨 백암재柏巖齋 입구


진전면 평암리 1613-2(평암로 138)에는 남양홍씨南陽洪氏 백암거사柏巖居士 이름은 홍우규洪禹圭를 추모하는 재실인 백암재柏巖齋가 위치한 곳이다. 이곳은 위치기반고도계가 해발 135m를 표시하고「위도 35°08'52.5"N 경도 128°23'04"E」를 가리킨다.
원래 백암재柏巖齋는 평암저수지 아래쪽에 있었지만 저수지 공사로 현재의 위치에 이건 했다. 대문의 좌측에는 『남양홍씨 세거유적비』가 있고 대문에는 이름이 없고 재호齋號는 홍공洪公의 호號를 따라 백암재柏巖齋라 지었다.




남양홍씨 세거유적비



2019.7.2. 남양홍씨 백암재 측면



2020.4.9 백암재柏巖齋 정면 모습



2020.4.9 백암재柏巖齋



2020.4.9 백암재柏巖齋 주련




柏巖齋重修記
柏巖扁楣託於號也 歲寒後凋守其義也考 其號而義斯可知矣 故柏巖居士洪公諱禹圭 卽知止軒玄孫也 簪纓詩禮聯世蟬奕 而今皆爲杞宋無徵 其家乘所載 只曰 通訓大夫行折衝將軍 英廟壬午棄官隱於柏巖 其辭微其蹟隱 人無得而稱焉 余竊以義推之曰 壬午之事 忍何言哉 群佞煽亂 萋斐成錦 蠱惑上聽竟致 莊獻世子大櫃之變 人倫斁矣天理晦矣 此豈君子可仕之日耶 公之所以毁冠裂冕 遯世長往寓意於歲寒之柏 而築室終老 不肯出山外一步者 歟后孫鍾謹 大懼先徽之漸泯不忍 舊齋之荒廢 與諸宗拮据 而重修之使 象守君徵記於余 竊惟當日巧言如簧 自謂得一時之榮者 今皆如朝華之次第零落 而如公者歲寒之操久 而如新蒼然呈露於 二百年之後 可見天理之終 不得晦者矣 齋在艅航山平巖里鶴醒臺之腰 蒼壁環列 草樹蓊蔚允 爲隱者之盤旋 然公之志 則不在於山水也 余竊取其歲寒之義 以題其楣 爲公后承者 宜講求其義焉
屠維單閼孟春下澣
順興 安鼎呂 記


백암재중수기 柏巖齋重修記
백암柏巖으로서 문간門間 위에 현판을 건 것은 그분의 호號를 기록한 것이며 추운 겨울에 맨 뒤에 시드는 것은 그 의義를 지키는 것이니 그 호號를 상고相考하여 보면 그 뜻을 여기서 가可히 알 수 있으리라 옛날 백암거사柏巖居士이셨던 홍공洪公의 이름은 우규禹圭로 바로 지지헌知止軒의 현손玄孫이시다. 벼슬아치들과 시예詩禮가 대대로 연달아 꿈틀거리며 빛났으나 지금은 모두 문헌文獻이 없어져서 징험徵驗¹⁾할 수 없으나 그분의 가승家乘에 실려 있는 바에는 이르기를 통훈대부通訓大夫²⁾의 품계品階로서 행직行職³⁾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⁴⁾이셨던 분으로 영조英祖 임오壬午(1762)년에 벼슬을 버리고 백암柏巖에서 은거隱居하셨으니 임금의 부름을 사양辭讓하였던 것과 그분의 은거隱居하셨던 행적行蹟에 대하여는 사람들이 그 자세한 것을 알 수 없다. 내가 가만히 의義로서 추측推測하여 말하기를 임오년壬午年의 사태事態를 차마 어찌 말할 수 있으랴. 여러 간신배奸臣輩들이 난亂을 선동煽動하고 잡초雜草들이 비단의 문채를 이루고 좀 같은 자들이 임금님의 성청聖聽을 현혹眩惑케 하여 마침내는 장헌세자莊獻世子께서 큰 두지 속에 갇히는 변란變亂이 일어났으니 인륜人倫은 패敗하여 졌으며 천리天理는 어두워 졌으니 이것이 어찌 군자들이 가히 벼슬할 시대時代였겠느냐 공公께서 관冠을 찢어버리고 관복도 찢어버리고 멀리 달려가 세상을 등지고 은둔隱遯하시며 추운 겨울에 잦나무 같은 뜻을 붙이고 서실書室을 지어 노년을 마치도록 일보一步도 산 밖으로 나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던 것이다. 후손后孫되는 종근鍾謹씨가 선조의 아름다운 업적業績이 점차 사라질까 크게 염려하고 차마 옛날 재실이 황폐荒廢하여 감을 볼 수 없어서 여러 제족諸族들과 힘을 합하여 중수하고서 상수군象守君으로 하여금 징험徵驗할 기문을 나에게 부탁하였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당시에 교언령색巧言令色⁵⁾을 피리 불듯하면서 스스로 일시一時의 영화榮華를 얻었던 자들이 지금은 모두가 아침에 피었던 꽃처럼 차례대로 몰락하여 갔지만 공公과 같이 추운 겨울을 견디어 내는 정조는 오래 될수록 새로운 듯이 푸르게 200년 후에 들어나게 되었으니 가히 천리天理란 종국終局에 묻히지 않는다는 것을 볼 수 있겠더라.
재실齋室이 여항산 평암리 학성대鶴醒臺의 허리에 있는데 푸르른 절벽絶壁이 빙 둘러 쳐있고
초수草樹가 푸르게 울창하여 진실로 은자隱者들이 서성대며 살아갈만한 곳이었다. 그러나 공公의 뜻은 산수山水에 있지 아니하였다. 내가 가만히 그분의 추운 겨울을 견디어 낸다는 뜻을 따서 그 문간門間 위의 현판懸板을 이름 지었으니 공公의 후손 되는 자들은 마땅히 그 뜻을 강구講求하여야 할 것이다.
도유단알屠維單閼(己卯) 맹춘하한孟春下澣(음력 正月 늦은 때)
순흥 안정려安鼎呂 기록함.


【주석】
징험徵驗¹⁾ : 징조를 경험 함. 조짐이 들어맞음.
통훈대부通訓大夫²⁾ : 정삼품관正三品官의 품계品階
행직行職³⁾ : 관직의 품계品階는 높고 직책職責이 낮은 경우
절충장군折衝將軍⁴⁾ : 벼슬이 정삼품관正三品官
교언령색巧言令色⁵⁾ : 남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말로 교묘하게 꾸며 얼굴빛을 좋게 하여 아첨함.










출처 및 참조
진전면지-진전면지 편찬위원회/삼덕정판인쇄사(2001.9.15.)
마산문화지-마산문화원/삼덕정판인쇄사(2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