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누각.정자.재실

진전면 금암리 중촌 창원황씨 삼우정 三友亭

천부인권 2020. 4. 13. 06:00

 

2020.4.9. 진전면 금암리 중촌 회산황씨 삼우정三友亭 전경

 

진전면 금암리 528(금암중촌길 47)에는 회산황씨檜山黃氏 즉 지금의 창원황씨昌原黃氏의 재실齋室이 위치하는데 석암공石岩公의 후손 황흥인黃興仁 3형제의 우애友愛와 도리道理를 후세後世에 귀감龜鑑으로 삼고자 건립한 삼우정三友齋이 있다. 이곳을 위치기반고도계는 해발 93m를 표시하고 구글지도에는 「위도 35°08'21.3"N 경도 128°23'02.4"E」를 가리킨다.
금암리金岩里 중촌中村마을의 입구에는 느티나무 노거수 두 그루가 우뚝 솟아 마을의 역사를 대변하는 듯하고 규모가 작은 마을이지만 집안의 우애를 상징하는 재실이 두 개나 있어 아직도 전통마을의 풍모를 갖추고 있다.
대문에는 편액이 없고 본당本堂에 있어야할 삼우정三友齋 편액이 대문채의 안쪽에 걸려 있다. 본당本堂의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고 마루 안쪽에는 삼우정기三友亭記 삼우정포기三友亭宲記 삼우정상량문三友亭上樑文 근제삼우정원운謹題三友亭原韻 삼우정운三友亭韻 등 다수의 편액이 있다.

 

 

2020.4.9. 진전면 금암리 중촌 회산황씨 삼우정三友亭 대문채

 

2020.4.9. 진전면 금암리 중촌 회산황씨 삼우정三友亭 본채 모습

 

2020.4.9. 진전면 금암리 중촌 회산황씨 삼우정三友亭 편액

 

02020.4.9. 진전면 금암리 중촌 회산황씨 삼우정三友亭 주련

 

삼우정 주련
‣ 국역 안동 김가 청음 후손 백촌 창현
✤三友亭의 주련은 후손 漢翼의 시에서 일부 취함

棟宇維新闢洞天 정자 건물 새롭게 별천지가 열렸네
三棣塤歌和樂稚 형과 아우 어린 동생 삼형제가 화락하고
一家薪火久相全 한 집안 땔나무 불 오래도록 온전하네.
承先氊業書惟在 이어온 선조유물 장서만이 남았고,
貽後規模友以傳 후세에 남은 규모 벗들이 전해 줬네.

 

【어휘이해】
棟宇 ① 집의 마룻대와 추녀 끝 ② 집 ③ 가옥(家屋)
維新 낡은 제도 따위를 고쳐 새롭게 함
洞天 신선의 세상 별천지 (別天地)신선이 사는 곳
三棣 상체(常棣) : 형제의 우애를 읊은 시로 《시경(詩經)》 소아(小雅)에 들어 있다. 삼형제를 말함
興仁의 세 아들 1.律熙 자 允則 호 魯山

 

2.純熙 允敬 農隱 3. 性熙 允中 隱圃
“아가위 꽃송이 활짝 피어 울긋불긋, 지금 어떤 사람들도 형제만 한 이는 없지.〔常棣之華 鄂不韡韡 凡今之人 莫如兄弟〕”《시경》〈소아(小雅) 상체(常棣)〉의 “저 할미새 들판에서 호들갑 떨 듯, 급할 때는 형제들이 서로 돕는 법이라오. 항상 좋은 벗이 있다고 해도, 그저 길게 탄식만을 늘어놓을 뿐이라오.〔鶺鴒在原 兄弟急難 每有良朋 況也永歎〕”
塤歌 훈지(壎篪) : 훈지(塤篪 질나팔과 저로, 형제 사이를 말함)형제 혹은 친구 사이의 화목과 조화를 비유할 때 쓰는 표현으로, 《시경(詩經)》 소아(小雅) 하인사(何人斯)의 “맏형은 훈을 불고 둘째형은 지를 분다.[伯氏吹壎 仲氏吹篪]”는 말에서 나온 것이다.
훈과 지(篪)는 서로 잘 어울리는 악기이고 우(竽)와 생(笙)도 늘 붙어 다니는 악기인데, 특히 훈과 지는 형제간의 우애가 돈독함을 나타내는 데 사용된다. 《詩經 何人斯》
和樂稚 和樂 화평하고 즐거움 稚는 어리다의 뜻으로 막내동생을 말함
薪火① 횃불 ② 스승의 학예를 제자에서 제자에게로 계속 전수하다 ③ 관솔불
氊業 청전의 가업(家業)청전은 푸른 빛깔의 털 담(毯)을 말하는데, 사환가(仕宦家)의 세전지물(世傳之物)이나 선대의 가업을 청전고물(靑氈故物)이라고 함.청전(靑氈)은 푸른 빛깔의 털 담요로, 선조의 유업(遺業) 또는 집안에 대대로 전해오는 물건 진(晉)나라 왕헌지(王獻之)의 집에 도둑이 들어 물건을 모조리 훔쳐 가려 하였다. 왕헌지는 꼼짝 않고 누워 있다가 도둑이 탑(榻)에 올라 훔칠 것을 찾자, “그 푸른 모포는 우리 집안의 유물이니, 그것만은 놓아두고 가는 것이 좋겠다.” 하였다. 그러자 도둑이 놀라 달아났다. 《晉書 卷80 王羲之列傳 王獻之》
規模 사물의 구조나 모양의 크기와 범위

 

 


三友亭記
亭以三友名 黃氏之居咸安金巖者 爲其先三晜李始奠其洞 三家后承 合力以起之 友者 兄弟之道也 取其道而名之 又求記之 以示來裔 其善矣夫 蓋門黃氏之先有自京師 避亂南下 居晋陽之魯川里 曰石岩公 汎歷累世而至諱興仁 有三子 伯諱律熙 字允則 號魯山 仲諱純熙 字允敬 號農隱 季諱性熙 字允中 號隱圃 此三公者 並皆敦尙質行 不喜趨時附勢 以求榮達 觀其自號而可知也 其人此洞 亦以自適其志 而遺子孫以安計也 今其後人者 仍率由貽謨 無忝所生 而數爻之衍 足驗積蔭之發也 於是 相與語曰 我祖之兄弟 扶携 栖皇勤苦 各長其子孫于斯 而不忍相離 非其篤友之殊而然乎 我輩 亦宜以祖先之心 爲心 雖從今以徃 世代迭遷 服窮屬竭 本其始而思之 皆當日三晜季之後也 寧或間然之有 則三友者 所以志之不忘也 抑友之本 在於孝 而其推則爲睦 兄弟者 同出於父母 不孝父母 而有友於兄弟者乎 由兄弟而分爲宗族 不知友兄弟而能睦其宗族乎 友而不睦 猶其友之未卒也 彼兄弟相鬩宗族路人者 亦獨何哉 若黃氏之爲 不亦善乎 黃氏之秀 有道益文益 以其宗從兄漢益 所錄事實 來訪余請爲記 因以勉之
歲壬寅誚庚節 義城 金榥 記

 

삼우정기 三友亭記
정자亭子를 삼우三友로 이름 하였음은 황씨黃氏들의 함안군 금암金巖에 사는 사람들이 그들의 선조 삼형제三兄弟 분이 처음으로 그 동네에 자리 잡고 살게 된 분들을 위하여 삼가三家의 후손后孫들이 합력合力하여 지은 것이다. 우애友愛란 것은 형제兄弟의 도리이다. 그 도리를 따와서 이름을 짓고 또한 기문記文을 구하여 앞으로 태어날 후손들에게 보여주려고 함은 그야말로 장한 일이로다.
대개 듣고 보니 황씨黃氏들의 선조 분 중에 경사京師¹⁾로부터 남쪽으로 피난避亂을 내려와서 진양군晋陽郡의 노천리魯川里에 살게 된 석암공石岩公이란 분이 겨셨는데 여러 대를 거처 내려오다가 이름이 흥인興仁에 와서는 아들 셋이 있었으니 큰 아들은 이름이 율희律熙요 자字가 윤칙允則이며 호號가 노산魯山²⁾이고 둘째는 이름이 순희純熙요 자字가 윤경允敬이며 호號가 농은農隱이다. 막내는 이름이 성희性熙요 자字가 윤중允中이며 호號가 은포隱圃이다. 이 세분께서는 모두가 다 본질本質의 행실을 돈독敦篤하게 숭상崇尙하시어 시대를 따라 세도가들에게 붙어서 출세의 길을 구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셨으니 그 분들의 호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분이 이 동네에 들어와서도 역시亦是 스스로 그들의 뜻에 맞게 살면서 자손子孫들에게 편안하게 살아갈 계책計策을 물려 주셨으니 지금 그분들의 후손된 사람들이 인因하여 남겨주신 꾀를 따라서 그들이 태어나신 조상들에게 욕辱됨이 없게 하나니 여러 가지가 번성繁盛하여 온 사실로서 족히 쌓으신 음덕蔭德의 피어나심을 징험徵驗³⁾할 수 있겠더라.
그제야 서로 더불어 말하기를 「우리 조상님의 형제兄弟분들께서 서로가 붙잡고 이끌며 이곳에 자리 잡고 살면서 각자가 그 자손들을 이곳에서 키우며 차마 서로 떠나지 못하셨으니 그분들의 우애友愛가 돈독敦篤함이 특수하지 아니하셨던들 그렇게 될 수 있었겠느냐 우리들도 또한 마땅히 선조先祖님들의 마음가짐을 거울삼아서 비록 지금으로부터 앞으로는 세대가 갈리어 내려가서 복服이 끝나게⁴⁾ 되더라도 그 처음의 근본을 다하는 생각을 부쳐보면 모두가 당시의 삼형제三兄弟분의 후손이니 차라리 혹시或是 잠깐 사이라도 그러한 마음을 잊지 않고 간직하고 있다면 이 삼우정三友亭이라는 것은 그러한 뜻을 잊지 않게 될 것이다」 하였다.
아니! 우애友愛의 근본은 효도孝道하는데 있으니 그것을 미루어 나가면 화목和睦이 되는 것이고 형제兄弟라는 것은 부모父母에게서 함께 태어났으니 부모에게 효도하지 않으면서 형제兄弟끼리 우애할 줄을 알지 못하고서 능히 그들 종족끼리 화목和睦하지 아니한다면 오히려 그 우애는 완전한 것이 못되는 것이다. 저 수많은 형제들이 종족을 보기를 남남처럼 보는 것은 또한 홀로 왜 그럴까? 황씨黃氏들의 행위 같은 것은 또한 착하지 아니할 소냐. 황씨들의 문중에 뛰어난 분으로 도익道益과 문익文益이 있는데 그분의 종족의 종형從兄 되시는 한익漢益씨가 기록한 사실을 가지고 나를 찾아와서 기문을 지어줄 것을 청請하므로 그것을 인因하여 그들이 힘쓰도록 하였다.
임인壬寅 초경절 의성義城 김황金榥 기록하다.

 

【주석】
경사京師¹⁾ : 서울

노산魯山²⁾ : 삼우정기三友亭記에는 맏 아들 율희律熙의 호를 '노은魯隱'이라 표기 했지만 삼우정포기三友亭宲記와 삼우정상량문三友亭上樑文 및 중재선생문집권지십사重齋先生文集卷之十四 후집後集 삼우정기三友亭記에는 모두 '노산魯山'이라 표기하고 있어 이에 따라 수정 했다.
징험徵驗³⁾ : 징조를 경험 함. 조짐이 들어맞음.
복服이 끝나게⁴⁾ : 무복無服 즉 상복喪服을 입지 않는 다는 의미意味로 촌수寸數가 8촌을 넘는 것을 말한다.

 

 

 

三友亭上樑文
厭彼禍亂之踵生 碩人曾卜山林可隱 猗厥友愛之天篤 遺墟聿覩棟宇始成 萬事由实而不淪 百年何言乎其邈 伏惟魯山農隱隱圃三兄弟黃公 檜山古閥 棣華芳園 恭僖公之嵬勳始著於麗代 節度使之武烈丕振乎李朝 厥有來兮耳檽而心染 式相好矣堹唱而箎吹 旣是內無相猶 奚但外禦其侮 月斯征日斯邁踐履的真 先可繼後可貽規模宏密 承襲休川公遺訓克信 追想石岩祖奠基恒憂 忠孝爲傳家之符 夷狄是蠹國之冠 樂極紫荊花下 感湥脊令聲中 共咏宛鳩之詩戒 不趍靑雲之路求 亂世相克禍 寒澗而考槃 檇手同歸惟取金岩之風景 聯槧與讀已貯石庵之詩書 山棌雪釣而忘機 草衣木食而安分 風徽不沬如玉沉而光存 子姓繼昌若泉湥而流遠 助擧脩樑 庸唱偉頌
抛樑東 碧海雲殘出日紅 孝弟誰能成厥德 光輝發越與斯同
抛樑南 積山蒼兀滴晴嵐 鍾垂淑氣於千古 其下英豪几幾男
抛樑西 天皇峯翠草凄凄 何時復見五雲起 白日蒼凉眼界迷
抛樑北 航岳當天夭一色 智異來脉遠重重 奇禽瑞草繁生殖
抛樑上 鴻鴈羣飛天宇曠 呌月秋宵雖序行 其那木落寒波漲
抛樑下 峽朿猶通十里野 斗粟誰云尙可舂 买由彛性所同者
伏願上樑之後 神鬼所護 杗桶永完 一氣而翕和長 百世其嗣葺崩 枕大被奚專美 山渴海而不衰
壬寅三月下浣 巴山 趙鏞極 撰

 

삼우정상량문(三友亭上樑文)
재난이 따라서 생겨나는 것을 싫어하여 덕이 높으신 분들이 일찍이 은거할만한 산림에 자리를 잡으셨도다. 아 그 돈독한 우애는 하늘이 내린 것이로다. 남겨진 그 터를 살펴서 드디어 정자가 세워짐을 보도다. 모든 일이 사실에 기중하니 허황됨에 빠짐이 없도다. 백년을 말해 무엇하겠는가 아득히 먼 옛날이로다. 생각건대 노산(魯山) 농은(農隱) 은포(隱圃) 황공 삼형제는 회산(檜山)의 옛 문벌로 시경 소아의 당체(棠棣)꽃이 정원에 만발하였도다. 공희공(恭僖公)의 높은 공훈은 고려 때 저명했고 절도사(節度使)의 용맹한 열행은 조선에 크게 떨쳤다. 전해온 그 이야기는 귀에 못이되고 마음에 물들었다. 서로 모범을 삼고 좋아함이 함께 노래하고 피리를 부는 듯하도다. 이미 안에서 서로 도움이 없다면 어찌 단지 밖에서 그 모멸을 막을까. 어느 달 어느 날에 그 참된 우애를 실천할까. 선대의 것을 계승하여 후대에 남기는 계책이 크고도 정밀하다. 휴천공(休川公)의 교훈을 받들어 계승하면 진실로 믿음이 있으니 석암(石岩)할아버지를 추모하여 생각하면 그 터에 제사드림에 항상 걱정이 앞서도다. 충효(忠孝)는 집안의 부절을 전하는 것이 되고 오랑캐의 풍속은 나라의 해독으로 가장 크도다. 시경(詩經)의 내용에 나오는 것으로, 삼형제가 박태기를 삼등분한 우애를 지극히 즐기고 척령(鶺鴒)의 노래에 감동하도다. 함께 시경 완구장(宛鳩章)을 읅으며 경계하고 입신양명하는 청운의 길은 나아가지 않도다. 난세(亂世)에 재앙이 닥치니 다 버리고 개울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살도다. 손을 맞잡고 같이 나아가 금암(金岩)의 풍경을 선택하였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석암(石庵)의 시와 편지를 모았도다. 시의 내용은 산에 나무하고 눈에 낚시하며 세월을 잊는 것이며 풀옷을 입고 거친 음식을 먹으면서도 안빈낙도하는 것이었다. 그 풍도의 아름다움이 감추어지지 않음은 옥이 진흙에 묻혀도 빛이 남음과 같고 자손이 대대로 번창함은 샘이 깊으면 물이 멀리 흐르는 것과 같다. 이에 들보를 올리는 것을 도우려 아랑위(阿郞偉) 노래를 불러 보노라.
들보 동으로 던져라. 푸른바다 조각구름 붉은 해 솟듯이 효성과 공경 누가 능히 그 덕을 이룰까. 그 빛이 뚫고 오름이 이와 같도다.
들보 남으로 던져라. 적석산 우뚝 푸른데 맑은 이내 적셨으니 천고에 그 맑은 기운 오롯이 내려오니 그 아래 영웅호걸 몇 명이나 되는가.
들보 서편으로 던져라. 파르란 청황봉 풀은 무성한데 어느때 다시 상스러운 기운 회복할까. 밝은해도 처량하니 눈앞에 눈물이라.
들보 북으로 던져라. 여항산 하늘에 닿아 한 가지 색이고 지리산 맥을 첩첩이 이어왔네 온갖 짐승 상스런 풀 번성하게 불어나리.
들보 위로 던져라. 큰기러기 나르는 저 하늘 넓은데 달 밝은 가을하늘 울며 줄지어가네 아마도 낙엽지고 찬 물결 가득 차겠네.
들보 아래로 던져라. 골짜기는 이리저리 십리들로 향하는데 몇 말의 곡식을 누가 다 찧을까. 실로 천륜을 이은 형제가 그들이리.
엎드려 바라건대 이 들보 올린 후에 신령이 보호하고 들보와 석가래가 영원히 보존되소서. 한 핏줄 형제들 길이 화합하여 영원토록 그 후손들 무너지면 수리하고, 큰 그 아름다움 그대로 지켜 산과 바다같이 마르고 닳지 않도록 하소서.
임인(壬寅) 3월 하순 파산(巴山) 조용극(趙鏞極) 짓다.

 

 

 

謹題三友亭原韻

經營實是已多年 정자 경영 실제는 이미 여러 해인데,
棟宇維新闢洞天 정자 건물 새롭게 별천지가 열렸네.
三棣塤歌和樂稚 형과 아우 어린 동생 삼형제가 화락하고
一家薪火久相全 한 집안 땔나무 불 오래도록 온전하네.
承先氊業書惟在 이어온 선조유물 장서만이 남았고,
貽後規模友以傳 후세에 남은 규모 벗들이 전해 줬네.
水畔軒頭千古月 물가의 정자 머리 오랜 세월 달인데,
聊知來世永圃圓 후세에는 오래도록 둥근 밭을 알겠노라.
後孫漢翼 후손 한익

‣ 평기식 7언 율시의 형태.八庚 平聲운<年天全傳圓>

 

經始營之幾度年
功成休運在於天
滿箱紹述規謨重
一枕湛和友愛全
蘭庭明月通香照
棣院淸風永世傳
吾祖雲仍承繼地
門楣爲保別區圓
後孫寅天

 

 

曾孫 文益
先齋新建幾營年 杗桷門軒次苐連
百世同暖兄弟友 千秋不忘子孫虔
‣九佳平聲一先平聲年連虔


曾孫 東益
三友齋成計百年 先人遺蹟此中連
憐爾前庭常棣樹 千秋莫萼永相傳


曾孫 武益
吾祖遺風自昔年 年年相戒不忘傳
相應三友斯齋下 宜兄宜弟一氣連


曾孫 義益
經營❏之到今年 三友齋成永世傳
子姓千秋誠不墜 弟兄一代氣相連

 

曾孫 甲益
經營之志到今年 三友亭成永世傳
子姓千秋誠不墜 兄弟一代氣相連


孫 寅聲
晜季遺風自昔年 名傳三友築亭傳
金岡淑氣當窓轉 靈水淸流抱㩜連


孫 寅吉
種德吾先計百年 傳家孝友好名傳
扶兄呼弟情何極 大被長枕氣愈連


族孫 祐萬
慕三公之尊基自晉陽又咸主立亭舍
於不日傳子姓之千秋金岡固於後勢靈水
淸則前流悅親戚之情話迎賓友而遨遊

 

출처 및 참조
진전면지-진전면지 편찬위원회/삼덕정판인쇄사(2001.9.15.)
마산문화지-마산문화원/삼덕정판인쇄사(200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