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3.23. 내서읍 신감리 수원백씨 경모재敬慕齋 전경
내서읍 신감리 17(감천로 16)에는 수원백씨水原白氏 모정처사慕亭處士 백홍생白弘生을 추모하는 경모재敬慕齋가 위치해 있다. 이곳은 위치기반고도계가 해발 133m를 표시하고 구글지도에는 「위도 35°12'17.7"N 경도 128°30'46.5"E」를 가리킨다.
내서읍內西邑 신감리新甘里 입구의 좌측 산 가장자리에 위치한 경모재敬慕齋는 대문인 백원문百源門 앞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측면에서 경모재敬慕齋의 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4개의 경모재敬慕齋 기둥에는 주련이 달려 있고 마루 위에는 경모재상량문敬慕齋上樑文 경모재기敬慕齋記 경모재성지감敬慕齋成志感의 편액이 걸려 있다.
2020.3.23. 내서읍 신감리 수원백씨 경모재敬慕齋 정면 모습
대문에 걸려 있는 백원문百源門 편액
백원문百源門 편액을 쓴 사람은 수암 김희연으로 창령 계팔출신이며 아석 김종대의 제자이다.
2020.3.23. 내서읍 신감리 수원백씨 경모재敬慕齋
2020.3.23. 내서읍 신감리 수원백씨 경모재敬慕齋 편액
경모재敬慕齋 주련
敬慕齋記
匡廬山雄鎭于咸昌之界 洞府窈廓水石明媚可 隱者之所棲 爰有枕山府澗 而成籬落者 曰甘泉村 白氏居之 白氏之先 有慕亭處士諱弘生 自幾西坡州 跋涉千里來 隱干此山之中 播藷種栗魚樵生涯 暇則閉戶讀書敎子 第以忠孝相傳之業 息交絶遊不作山外之步 是以鄕隣無知名者 嘗就所居玉梳洞裏 構一亭扁以慕亭 有詩曰吾先問戶郞坡州 流落嶠南問畿秋至 老尤深孺慕意 掃雲千里夢悠悠蓋以親塋之在遠 而不禁慟慕之情也 雖隻句之間 眞召忱流出 讀之尙能令人起感 且放其世錄 則粤在仁明之際 有左參贊忠肅公休庵先生諱仁傑 早從文正公靜庵趙先生 遊得聞程朱之學 如當時李栗谷成牛溪諸賢 皆推以師表及趙先生 遭己卯慘禍 公不畏父誠雷霆之滅 冒死伸救屢上文廟從祀之琉 而爲羣小沮止 竄遂窮危關歷百怯 將明先師之精忠大義 而齎志以沒 是於慕亭公爲曾大父也 至乙巳黨爭 復熾士類多被禍 公懼後編之離保遂決意南遷 甘作海隅之逋珉 而無所閒梅 是豈非古所謂色 斯擧之而明哲保身者耶 今距公之世己四百星霜亭圮 而草鞠雲仍之指點 嗟嘆者久矣 乙巳春後孫庠基等詢謨于 闔族就舊址 而刱建四梁三架 顔曰敬慕齋蓋 取公詩中至老孺慕之意 而寓敬尊之義也 旣落遺鎬基君示事狀屬 余以記之余於君 曾有司丕槧之契 不可固辭因 告之曰詩云 永言孝思孝思惟則又云靡不有初鮮克有終維諸白氏之居于 是薺者瓦相念則各慕其新始 公之至 老尤深追 而及於忠肅公而講明 其淵源之正紹述 其業蹟之美父 而詔子子而詔孫始終無替 則斯爲敬之大者 而不貧命楣之義矣 名賢之裔豈無振衰 而隆傳晦而顯之之日乎 書此以勉祉是役也 胄孫潤基實幹終始云
歲丙午春分節 廣陵 安鍾禧 記
경모재기 敬慕齋記
광려산匡廬山은 함안咸安과 창원昌原의 경계에 있는 웅장한 진산鎭山이다. 고을은 그윽하고 넓고 수석水石이 아름다워 가히 은자隱者가 살만한 곳이로다. 이에 마을 골짜기 물은 산을 베개 삼아 울타리를 이룬 곳을 감천촌甘泉村이라 이르고 백씨白氏들이 살고 있다. 백씨白氏의 선조에 모정처사慕亭處士 이름은 홍생弘生이 계셨는데 경기도 서쪽 파주坡州로부터 걸어서 천리를 와서 이 산중에 숨었다. 수수씨앗 뿌리고 밤 줍고, 고기 잡고, 땔나무하며 물가에 살면서 여가가 있으면 곧 문 닫고 독서하고 자식들 가르쳤고 다음으로 충효를 상전相傳함이 업業이었다. 사람과 교유하기를 끊고 산 밖에는 나아가지 않았다. 이로써 향촌의 이웃들도 이름을 알지 못했다. 일찍 살고 있었던 옥소동玉梳洞 안에 한 채의 정자를 짓고 편액扁額을 모정慕亭이라 하고 시詩에 말하기를 우리 선대의 집안은 파주坡州요 교남嶠南으로 흘러들어 왔음이 얼마인고. 늙어 감에 더욱 사모의 마음 깊어지고 구름을 쓸고 천리를 가려는 마음 한이 없네. 라고 하였으니 대개 부모의 산소가 멀리 있어 슬퍼하고 사모의 마음 금할 수 없는 정이더라 비록 두 글귀라도 참된 정성의 흐름이 나타나 있고 읽을수록 사람으로 하여금 감정이 일어나도다. 또 그들이 내어 놓은 세록世錄에는 멀리 인조명조 쯤에 좌참찬左參贊 충숙공忠肅公 휴암선생休庵先生 이름이 인걸仁傑이라는 분이 계셨는데 일찍 문정공文正公 정암靜庵 조선생趙先生과 상종하였고 정주학程朱學을 들어 배우며 교유하였다. 당시에 이율곡李栗谷 성우계成牛溪 제현諸賢들이 모두 사표師表로 추앙되었다. 조선생이 기묘사화己卯士禍를 만남에 따라 공은 천둥벼락 같은 도끼로 찍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죽음을 무릅쓰고 문묘에 올려 종사되기를 소장疏章을 올려 구救함을 폈다. 소인小人 무리들이 저지하였고 먼 곳에 귀양 보내져 고생하며 백번이나 죽을 고비를 겪었다. 장애 선사先師의 정충대의精忠大義를 밝히려는 뜻을 가진 채 세상을 떠났다. 이분이 모정공慕亭公의 증조부이시다. 을사당쟁乙巳黨爭에 이르러 사류士類에 불이 붙어 화禍를 입게 될 처지였다. 공은 뒷일이 두려워 드디어 남쪽으로 옮기기를 결의하여 보전하였다. 바다 모퉁이에서 도망
이는 어찌 옛날 당색을 일컫는 바가 아니며 이를 들어 명철하게 몸을 보전한 자로다. 지금 공의 세대는 이미 400년이 지났고 황폐된 곳을 후손들은 손질하여 슬퍼함이 오래 되었도다. 을사년乙巳年 봄 후손 상기庠基 등이 의존하여 집안 일족들이 예부터 나아가 3칸의 재실을 창건하고 편안扁顔을 경모재敬慕齋라 하였다. 대개 공의 시詩 중에서 늙음에 이르러 깊이 사모함의 의意에 취取하였고 옆에 붙어살면서 경존敬尊 하는 의義이다. 이미 낙성을 하고 유손遺孫 호기군鎬基君이 사실 행장을 보이며 나에게 기문을 부탁 하더라 나와 군은 참지계槧之契에 들어 있어 굳이 사양 못하겠더라 알려 말하노라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길이길이 조상에 효도하셔서 온 세상 법도 되었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처음에는 모든 일 잘 하시더니 어찌하여 마무리 아니 좋을거라 하였느니 오직 여러 백씨들이 살고 있는 이 재실에 서로서로가 생각함을 곧 각자가 사모함이요 그곳에 사신 공께서 늙음에 이르러 더욱 추모하는 마음 깊음을 비롯하여 충숙공忠肅公께서 강명講明하신 그 연원淵源을 바르게 펴내에 업적을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르치고 아들은 손자에게 가르쳐 처음부터 끝까지 어김없으면 곧 이 경자敬字는 큰 것이요 천명에 부담 없는 재실의 의義이니라 명현名賢의 후예로 어찌 떨침과 쇠함이 없을 것이며 융성함이 전하다가 어두어지고 나타남이 날日인지라 이 재실 역사에 힘썼음을 기록하고 종손 유기가 실로 시종始終 주간했다 하네.
병오년 춘분절 광릉 안종희安鍾禧 기록함.
敬慕齋上樑文
述夫 奠基貽模祖先之業 繼志承事子孫之誠 隧鐫碑碣之銘敬是體魄之攸在 齋揭欐樑之頌慕其杖屦之所遺 不須壯麗之爲图 惟其著存而勿忘 伏惟我十代祖慕亭處士府君 隋城華閥 坡州古家 系代綿連遠涉鴨江之渚 圭組奕舃曾仕雞林之邦
-기록 중-
敬慕齋成志感 경모재를 낙성한 감회를 적음 [해문-전문]
匡廬泉石絶塵淸 匡廬山의 산수는 속세와 단절되어 맑은데
吾祖來居樂遯情 우리 조상 와서 거주하며 숨은 뜻을 즐겼네
亭築當年深寓慕 정자 지은 당년에는 사모하는 마음 깊었으며
齋成今日庶伸誠 재실 지은 금일에는 거의 정성을 다하였네
靑氈世業傳忠孝 靑氈의 세업은 충과 효를 전하는 것이요
白屋生涯付讀耕 초가에서의 생애는 독서와 농사에 붙였네
但願諸宗相勉勵 다만 원컨대 여러 宗人들은 서로 면려하여
承承無墜舊家聲 대대로 이어 가문의 명성 추락시키지 마소
十一世孫 永基
*靑氈 : 선대로부터 전해 오는 귀한 유물이나 가업을 가리킨다
吾祖性廉志又淸 우리 조상 성품은 청렴하고 뜻은 맑아서
漢江波急勇回情 한강 물결 거세어도 돌아가기를 결정했네
坡鄕雲邈吟詩句 坡鄕의 구름이 멀어지자 시구를 읊었으며
廬壑亭成寓慕誠 廬壑에 정자 지어 사모하는 정성 부쳤네
盤谷高風輕駟蓋 盤谷의 높은 풍도 수레가 가볍고
安豊美事在樵耕 安豊의 아름다운 일은 나무하고 고기 잡는 데 있네
舊墟草鞠嗟嘆久 옛 터에 풀 우거져 한탄한 지 오래인데
重建纔休亦偉聲 중건하여 비로소 훌륭하니 또한 위대한 명성일세
十一世孫 致基
*坡鄕 : 미상.
*廬壑: 광려산 골짝을 말하는 듯.
*盤谷 : 은거하는 곳을 의미한다.
*安豊 : 당(唐)나라 사람 董邵南이 안풍(安豐)에 은거하여 주경야독(晝耕夜讀)하며 부모를 받들고 처자를 거느리며 살았는데, 그것을 비유한 것.
水轉山迴洞府淸 물 돌고 산 돌아 동네가 맑으니
世間榮辱不關情 세간의 영욕과는 상관 없는 정취일세
當年賢祖藏修地 당년에 어진 조상 학문 닦던 곳이요
此日孱孫肯構誠 오늘 날 잔약한 후손이 기꺼이 지은 정성일세
冬架携燈諸子讀 겨울엔 시렁에 불 켜고 여러 아이들 독서하고
春田帶雨四隣耕 봄날엔 논에서 비 맞으며 이웃사람들 농사짓네
願須相勉敦親意 바라건대 서로 면려하고 친의를 돈독히 하여
復使吾家振厥聲 다시 우리 집안의 명성을 떨치게 하소
十一世孫 漢基
출처 및 참조
마산문화지-마산문화원/삼덕정판인쇄사(2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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