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성주사의 금석문-어수각 주변의 마애비군

천부인권 2020. 5. 25. 06:00

 

어린시절 성주사 곰절은 내가 노는 놀이터처럼 다녔던 곳이다. 초등학교 때 봄·가을 모든 소풍은 오로지 성주사 곰절로 12번을 갔고 중학교 때에도 5번 소풍을 간 장소이다. 당시의 모습과 지금의 절 모습은 천지개벽天地開闢을 했다고 할 정도로 달라졌지만 이곳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인기 있는 관광 명소이다.
당시에도 절 입구의 커다란 돌들에는 금석문들이 새겨져 있었지만 한자漢字인 관계로 읽으려고도 하지 않았고 누가 가르쳐 주지도 않아 세월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읽어 보는 수준이다.
‘어수각御水閣’이라는 글귀가 새겨진 금석문은 지금의 위치에 있지 않았지만 출입구의 변경으로 지금의 위치에 옮겨 두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바위에 새긴 글자들은 예전 그대로이다. 성주사 곰절 주위에는 이러한 금석문이 조금 더 남아 있는데 이번을 계기로 하나씩 원문을 옮겨서 기록으로 남겨 보고자 한다.

 

御水閣어수각
이 어수각御水閣이라는 금석문金石文은 장유화상과 가락국의 황후 허황옥의 자식들과 관련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금석문이다. 이야기는 가락국에 시집 온 허황후와 김수로왕 사이에는 1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첫째는 왕위를 계승한 거등왕居登王이고 2째와 3째는 허황후의 요청으로 성씨를 허씨許氏로 가지게 되었으며 나머지 7명의 아들은 장유화상을 따라 불교에 입적하여 중이 되었다고 전한다. 이곳 성주사에서 수도할 때 김수로왕과 허황후가 방문하여 절 입구에 있는 이 어수각御水閣에서 목을 축였다고 하여 이름이 붙었다고 전하고 있다.
글씨의 남은 모양을 볼 때 그렇게 오래된 것은 아닐 것으로 보이며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후대에 금석문을 새긴 것으로 생각한다.

 

세계가 기독교의 기록 연표인 서기西紀를 중심으로 기록을 남기고 있어 단기檀紀는 2333년을 더하고 孔紀는 551년을 더하며 불기佛紀는 544년을 더하여 서기西紀로 환산하는데 불교에서는 북방불기北坊佛紀라는 연표가 있어 그 북방불기로는 1027년을 더하여 연표로 환산한다. 아래 성주사 입구의 금석문에는 북방불기로 표기 되어 있어 그에 따른다.

 

 

남무아미타불 남무아미타불
三法堂佛事 삼법당불사
化主 金氏 定慧月 화주 김씨 정혜월
佛紀 二九五六 己巳臘月日 불기 2956 기사 납월 일(기사년 1929년 12월 일)
子 姜鎬千 자 강호천

 

 

 

미타계원대시주 미타계원 대시주
設辦化主 金氏 定慧月 설판화주 김씨 정혜월
     金氏 靑蓮花 金氏 玉潭花       김씨 청연화 김씨 옥담화
     金氏 妙法花 朴氏 蓮澤花       김씨 묘법화 박씨 연담화
     金氏 大明心 姜氏 般若花       김씨 대명화 강씨 반야화
     裵氏 妙蓮花 梁氏 德順花       배씨 묘연화 양씨 덕순화
     都監 姜雲松 漢中       도감 강운송 한중
佛紀 二九五八年 辛未三月十五日 불기 2958년 신미3월15일(1931년 3월 15일)

 

 

佛事設契引勸 불사설계인권
金玩溟 李映月 김완명 이영월

 

*인권引勸 : 시주를 하라고 권한 사람

*김완명金玩溟 : 당시 성주사 주지(절 운영자)

 

 

念佛堂 염불당
化主 金氏 定慧月 화주 김씨 정혜월
設辦者 설판자
咸安郡 漆原面 龍山里 함안군 칠원면 용산리
金氏 一品花 김씨 일품화
漆原 南丘洞 칠원 남구동
梁氏 上品花 양씨 상품화
壬申三月十五日 임신월십오일(1932년 3월 15일)

 

*설판設辦 : 설(說)은 설법회, 불사(佛事)의 모임을 말한다. 판(辦)은 '힘쓰다, 주관하다'라는 의미로 중요한 부분을 감당한다는 뜻이다. 법회나 불사의 중요하고도 큰 부분을 맡아 감당한다는 의미이고, 설판자設辦者란 불사나 법회를 베풀기 위해 노력과 비용을 담당하여 애쓰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