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성주사 곰절의 금석문-홍종영마애불망비

천부인권 2020. 8. 12. 07:16

2020.8.11. 성주사 가는 길 옆의 마애불망비


창원시 성산구 천선동 산 213-2번지의 성주사聖住寺 가는 길옆에는 자연 거석의 일부를 비석의 형태로 다듬어 글을 새긴 마애석이 있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132m이고 위치기반 고도계는 「위도35°10'35"N 경도128°42'58"E」이다.
『성주사 나무아미타불마애비』에서 절 방향으로 약 20m쯤 위쪽 길 좌측에는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모르는 야생차나무가 조금 서식한다. 그 차나무 바로 뒤쪽은 큰 암석이 절벽을 이루고 있다. 이 암석은 시누대가 앞을 가려 암석에 새긴 글씨가 숨겨져 있었다. 옛 기억을 더듬어 이 암석을 찾고 자세히 살피니 『홍종영마애불망비洪鍾永磨崖不忘碑』라 불리는 마애비가 보였다. 차량에서 낫을 가져와 시누대를 베어내고 글씨가 잘 보이도록 했다. 이 암석에는 3기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중앙의 『홍종영마애불망비』는 비신이 지나치게 커서 비개는 형식만 갖추었다. 마애비는 전체 높이 164cm, 너비 42cm이다. 비신의 중앙에는 『총무어사홍공종영영세불망비總務御史洪公鍾永永世不忘碑』라 새겼고 좌우에는 찬양하는 시가 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2020.8.9. 홍종영마애불망비 전경
2020.8.9. 총무어사홍공종영영세불망비總務御史洪公鍾永永世不忘碑


總務御史洪公鍾永永世不忘碑 총무어사 홍공종영 영세불망비 - 文山
按節南撫 如傷視民 총무어사로 남쪽에 오셔서 백성을 아픈 사람 돌보듯 하시었고
山門鎭帶 法宇重新 산문에 많은 물품을 하사하시어 절집을 더욱더 새롭게 하셨네.
光緖丁亥 十月 日  고종 24년(1887) 10월 어느날 새기다.

 

2016.10.30. 용지공원 비림에서 만난 전운어사홍공종영영세불망비轉運御史洪公鍾永永世不忘碑


『홍종영불망비洪鍾永不忘碑』는 용지공원 비석군에도 『전운어사¹⁾홍공종영영세불망비轉運御史洪公鍾永永世不忘碑』라는 제명題名으로 서있다. 이 홍종영불망비는 이수螭首와 비신碑身을 하나의 돌에 새겼고 재질은 화강암으로 이수의 크기는 높이 49cm, 너비 73cm, 두께 28cm, 비신 크기는 높이 146.5cm, 너비 60cm, 두께 21cm이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다.

轉運御史洪公鍾永永世不忘碑 전운어사홍공종영영세불망비
南來公德 尤被昌民 남쪽으로 오신 공이 덕을 베푸시어 창원의 백성들이 은혜를 입었네.
賑百八里 損四千緍 108개 마을의 굶는 백성 구제하려 돈 4천냥을 기부하셨네.
新舊漕逋 公平政理 포구의 밀린 조세를 처리함에 공평하게 정리하셨으니
片石不泐 芳流百禩 한 조각 돌 갈라져 없어지지 않을 것이니 꽃다운 행적은 백년을 가리라. 
丁亥八月日        고종 24년(1887) 8월 어느날 세우다.

【주석】
전운어사¹⁾ :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의 세곡과 대동미, 잡세 등을 수송하는 임무와 농민에게 선가(船價)를 징수하는 관직

 

현학약玄學礿

『홍종영불망비洪鍾永不忘碑』의 오른쪽에는 『현학약玄學礿』이라 새긴 이름이 있는데 현재로서는 현학약玄學礿의 업적을 알 수 없다.

 

윤영재공덕비尹英宰功德碑


『홍종영불망비洪鍾永不忘碑』의 왼쪽에는 『윤영재공덕비尹英宰功德碑』라 새기고 ‘임오사월일壬午四月日’이라 적어 1942년 4월에 마애각磨崖刻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공덕비의 주인공인 윤영재尹英宰는 어떤 인물인지 지금 알 수 없다.

출처 및 참고
창원시 문화유적분포지도-창원대학교박물관(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