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비판.정려각.마애비

성주사 곰절의 금석문-성주사부도군

천부인권 2020. 8. 14. 11:53

2020.8.9.성주사 곰절의 부도군 모습

성주사부도군聖住寺浮屠群
창원시 성산구 천선동 산 213-2번지의 성주사聖住寺 가는 초입의 길옆에는 돌을 다듬어 축대 놓고 계단을 만든 후 다시 축대를 쌓고 산지를 평면으로 만들고 전면이 트인 ㄷ자 형태의 담장을 하여 그 안에 부도 4기와 비 1기를 옮겨 두었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130m이고 위치기반 고도계는 「위도35°10'43"N 경도128°42'54"E」이다. 
『성주사부도군聖住寺浮屠群』이라 불리는 부도들 중 2기는 부도군의 아래쪽에 있었던 용화사龍華寺라는 옛 절터에서 옮겨 온 것인데 정확히는 어느 것인지는 모르겠다. 근래에 만든 종모양의 부도에는 『정복덕행鄭福德行』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정복행덕 부도
화봉당 경오대사 부도


『정복덕행鄭福德行』 부도의 뒤쪽에는 종모양 부도가 받침대가 없는 상태인데 이 부도는 『화봉당·경오대사화덕성花峯堂·慶悟大師化德成』의 명문과 『상지십년신해삼월上之十年辛亥三月』의 기록이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읽을 수 없다. 이 기록이 맞다면 1791년 3월에 만든 것으로 보인다. 화강암 재질의 이 부도는 높이 94cm, 최대 지름 70cm이다.

 

금파당대선사 부도와 비석


전면에 비가 있는 부도는 대석臺石, 부도浮屠, 개석蓋石을 두루 갖춘 배부른 단지형이다. 개석은 탑의 옥개형으로 꼭대기의 장식물은 훼손된듯하다. 부도의 전체 높이는 168cm, 대석 높이 39cm, 몸통지름 74cm, 개석너비 98cm, 높이 74cm, 너비 35cm, 두께 9cm이다. 부도탑浮屠塔 앞에 세운 비碑 전면에는 『금파당대선사원혜지묘金坡堂大禪師圓慧之墓』라 새겼고 뒷면에는 설명이 기록되어있다. 그 비석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금파당대선사 비석



金坡堂大禪師圓慧之墓         금파당 대선사 원혜圓慧의 무덤
僧統都監通政智閑             승통¹⁾도감²⁾통정³⁾ 지한智閑
別坐 贊寬                    별좌⁴⁾ 찬관贊寬
施主 任學                    시주⁵⁾ 임학任學
伏爲化主 樞峰萬機            복위⁶⁾화주⁷⁾ 추봉만기樞峰萬機 
亡母 朴氏灵駕功德            망모박씨 영가⁸⁾공덕
刻 大澄                      글자를 새긴 사람 대징大澄
乾隆三十八年 癸巳八月日立    건륭38년 계사(1773)년 8월 어느날 세움

【주석】 
승통僧統¹⁾ : 교단과 승려를 통솔하는 승직
도감都監²⁾ : 나라에 큰 일이 있을 때에 그 일을 맡아보게 하기 위하여 설치하는 임시 관사. 절에서 돈이나 곡식을 관리하는 일.
통정通政³⁾ : 조선 시대, 문관의 정삼품 당상관의 품계  
별좌別坐⁴⁾ : 조선 시대, 각 관아에 딸린 정오품, 또는 종오품의 벼슬
시주施主⁵⁾ : 승려에게 혹은 절에 돈이나 음식 따위를 보시하는 일
복위伏爲⁶⁾ : 혼령을 천도할 적에 그의 유가족들이 부르는 소리  
화주化主⁷⁾ : 중생을 교화하는 교주라는 뜻으로 ‘부처’를 이르는 말. 인가(人家)에 나다니면서 염불이나 설법을 하고 시주하는 물건을 얻어 절의 양식을 대는 승려.
영가灵駕⁸⁾ : 죽은 사람의 넋

직지사 박물관에 소장한 금파당대선사 진영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 불영산佛靈山에 있는 청암사靑巖寺는 직지사直指寺의 말사인데 이곳에 『금파당대선사지진상金坡堂大禪師之眞相』이 있다 하여 찾아보니 직지사성보박물관에 옮겨 보관을 하고 있으며 진상眞相의 크기는 118cm×74cm로 비단에 채색한 불화였다.
직지사성보박물관의 기록은 아래와 같다.
『청암사 금파당대선사지진상 靑巖寺 金坡堂大禪師之眞相』은 좌안칠분의 가부좌형에 왼손에 주장자, 오른손에 장염주를 쥐고 있는 모습이다. 배경은 평면으로 처리한 화문석과 방석 그리고 녹색 벽면으로 되어 있다. 화면 오른쪽에는 『금파당대선사지진상金坡堂大禪師之眞相』이라는 영제가 있고 왼쪽에는 이인설李寅卨의 제찬題贊이 적혀있다.
이 불화가 성주사 금파당대선사 부도의 주인인지는 아직 조사를 더해 볼 생각이다. 

 

지월당 광세의 부도탑


『지월당광세智月堂廣世』라는 글자가 새겨진 부도는 『건륭신축십월일乾隆辛丑十月日』이라는 글자가 있어 1781년 10월에 세운 것을 알 수 있으며, 또한 부도 주인의 존호尊號도 알 수 있다. 하대석下臺石은 거의 매몰 됐고 상대석上臺石은 복련伏蓮을 새겼으며 위쪽이 넓고 아래쪽이 좁은 모양의 단지형이다. 상부에는 괴임 위에 보주를 모각 하였으나 탈락된 것을 제자리에 얹어 놓은 형태이다. 전체 높이 134cm, 몸통 높이 102cm, 몸통 너비 67.5cm, 대석 높이 32cm이다. 

 

8인명마애비

 

8명의 이름만 새긴 마애석

8명의 이름만 새긴 마애석
성주사 부도탑군을 지나 성주사로 조금 오르다 왼쪽을 보면 커다란 암괴에 사람들의 이름만 새겨 둔 마애석을 만난다. 이곳의 위치기반 고도계는 해발 131m를 표시하고 「위도35°10'39"N 경도128°42'55"E」를 표시한다. 사람들 8명의 이름은 

유군계柔涒契, 손정택孫禎宅, 김몽탁金夢濯, 송문호宋文鎬, 이기영李起榮, 황진모黃震模, 고봉규高奉珪, 박봉갑朴鳳甲 
丙申三月日 生日順 병신년 3월 일 생일순으로 이름을 새김.

 

마애석 3곳의 위치
이주갑마애비
이주갑마애비


또 이름만 남긴 마애석은 송설당마애석과 나무아미타불마애비 사이에 위치하며 단 한명의 이름만 명기 했는데 이주갑李冑鉀으로 읽었다.

 

3명의 이름을 새긴 마애석


그리고 나무아미타불마애비와 홍종영마애불망비 사이에 위치한 3명의 이름을 새긴 마애석에는 허금담許金潭, 구계담具桂潭, 김완명金玩溟의 이름을 남겼다. 이들 중 구계담은 성주사동종의 금석문에 등장하고 김완명은 성주사동종의 주조 때 회계를 맡아 본 당시의 주지로 어수각 주변의 금석문에도 이름이 나온다.


출처
창원시 문화유적분포지도-창원대학교박물관(2005)
직지성보박물관-불화(비단채색/118cm×74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