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산면 구복리 100(구복길 34)에는 귀래정敀来亭 임붕林鵬¹⁾의 후손들이 지은 모연재慕蓮齋라는 이름의 재실이 있다. 이곳을 구글지도는 위도 35°04'13.4"N 경도 128°34'03.5"E를 가리킨다.
대문에는 무두문無斁門이라 편액 했고 본당은 모연재慕蓮齋라 했으며, 재실 안에는 근파槿坡 안종희安鍾禧가 찬한 모연재기慕蓮齋記가 걸려 있고 후손 임종수林鍾秀가 지은 모연재상량문慕蓮齋上樑文이 걸려 있다. 또한 후손 임영택林永澤이 지은 모연재원운慕蓮齋原韻이 있고 기둥에는 주련이 있다. 아래에는 모연재기慕蓮齋記를 옮겨 둔다.
【주석】
귀래정敀来亭 임붕林鵬¹⁾ : 임붕林鵬(1486~1553)은 조선전기 예조참의, 호조참의 등을 역임한 문신으로 1552년(명종 7)에는 광주목사를 역임했다. 기묘사화에 조광조(趙光祖)가 화를 입자 그를 구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 인물이다. 아들은 임복林復이다.
慕蓮齋記
麗社屋羅州林公 諱卓棄官隱于 錦城罔僕自靖呈 爲杜門洞七十二賢之一也 侍至諱鵬 號敀来亭中生員 有三子中 曰復 號楓巖 中宗庚子進仕 明宗丙午 增廣文科官承文院正 字有二子李 曰悏 號柳湖至 曾孫泳 號滄溪 顯宗丙午中 司馬試壯元 辛亥庭識文科選人湖堂詮郞至 副提學大司馬憲三傳至 明遠 號蓮菴 始居舊漆原龜山面龜伏里 愛其海山之窮僻 而可隱者考盤也 以漁樵耕讀 爲安分裕後之謨 而衣履之藏 實在於斯子孫世虔香火至 今爲七八世 而貧而力 絀尙未遑 歲時齊宿之所 近年闔族相謀出力 築四楹三架於所居側扁 曰慕蓮齋 實爲蓮菴公寓 景慕之意也 役卽竣後孫永澤諸君 具事狀謁余 以紀楣之文余方 垂死荒耄何堪是款也 窃惟林氏之先名 節簮纓聯世 蟬爀菀乎 爲鄕省望族 而世代寢遠子孫轉 徙縱不無聲沉光熄之漸 當然此倫斁之日 能不忘其祖先 有此美擧殆天所 以誘其衷 而發其端化其衰替 而返于隆盛之兆也 誠使林氏之居于 是齋者相勉於孝悌 敦睦之誼無怠乎 詩書耕稼之業一 以祖先心爲心 則前所謂聲沉光熄者 將復振復明庶睹往日之蟬爀矣 窃爲諸林氏更勉焉
歲在癸丑天中節 漢山 安鍾禧 撰
모연재기 慕蓮齋記
고려 말에 나주임공羅州林公의 이름은 탁卓인데 벼슬을 버리고 금성錦城에 은거하여 조선을 섬기지 않고 자신의 본분을 다하니 두문동杜門洞 72현중 한 사람이다. 뒤에 이름이 붕鵬이고 호는 귀래정敀來亭에 이르러 생원에 급제하였는데 아들이 셋이었다. 둘째는 복復인데 호는 楓巖으로 중종 경자庚子년에 진사進仕가 되었다. 명종明宗 병오丙午년에 증광문과增廣文科에 올라 벼슬이 승문원정자承文院正字였다. 아들이 둘인데 둘째인 협悏은 이름이 유호柳湖이다. 증손자인 영泳은 호가 창계滄溪에 이르러 현종 때 병오丙午 사마시司馬試에 장원급제 하였다. 신해辛亥 정시문과庭試文科 호당전랑湖堂銓郞으로 뽑혀서 부제학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다. 3대를 전하여 명원明遠은 호가 연암蓮菴인데 처음 옛 칠원漆原 구산면龜山面 구복리龜伏里에 살게 되었는데, 산과 바다의 한적하고 외진 풍광이 은둔한 선비가 소요할만 한 곳임을 좋아하여서다. 물고기를 잡고 나무를 하면서 주경야독하며 안빈낙도하니 후세를 넉넉히 할 계책이 되고 의발을 묻을 곳이 이곳이 되게 하였다. 자손들이 대대로 제를 올린지 지금까지 7~8세대가 되었다. 그동안 가난하고 힘이 약하여 해마다 시사時祀 때 재숙齋宿을 할 재실齋室 지을 경황이 없었다. 근년에 모든 종중이 상의하여 힘을 모아 4칸기둥 3칸의 집을 마을 옆에 지었는데 편액을 모연재慕蓮齋라거 하였으니 실로 연암공蓮菴公을 모시고 경모하려는 뜻이다. 공역이 이루어진 후 후손인 영택永澤과 여러 사람들이 그 행장을 갖추고 거의 죽게 되어 다 늙은 나를 찾아와 문설주에 걸 기문을 부탁하니 그 정성이 어찌 그리 장한가. 생각건대 임씨의 선대는 이름난 절의節義와 벼슬을 이어 대대로 빛났으니 그 고을에 이름난 종중이다. 대대를 이어가면서 멀어지니 자손들이 멀리 떠나니 비록 명성이 가려지고 빛을 감추지 않음이 없었는데 이렇게 윤리가 무너지는 때에 능히 그 선조를 잊지 않고 이러한 아름다운 일을 해낸 것은 하늘이 그 정성을 일깨워 그 단서를 발현하고 그 쇠잔하고 침체되는 것을 변화시켜 융성한 조짐으로 반등시키려는 것이리라 진실로 임씨로써 이 재실에 기거하는 자는 서로 효도와 공경과 돈목敦睦¹⁾의 윤리로 권면하는 일을 게을리 말아야 할 것이다. 시를 쓰고 책을 읽으며 농사를 짓는 가업을 한결같이 하며 선조의 마음을 나의 마음으로 삼으면 앞에서 말했던 명성이 가라 앉고 빛이 사그러지는 것이 다시 떨쳐지고 밝게 빛나서 지난날의 영화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임씨 제족들은 다시 힘쓰기를 바라노라.
계축癸丑(1973) 천중절 천중절天中節 한산 안종희安鍾禧²⁾ 찬하다.
【주석】
돈목敦睦¹⁾ : 정이 두텁고 화목하게 지냄
안종희安鍾禧²⁾ : 안종희(1896~1985) 본관은 광주이며 호는 근파槿坡로 정통 퇴계학파의 마지막 거유巨儒로 성리학에 뛰어난 인물이다. 『槿坡文集 上下』가 있다.
慕蓮齋 原韻
屋上靑山屋下瀛 집 위에는 푸른 산 집 아래는 바다라
紅塵隔斷可莊名 홍진 세상 끊고 멀리하니 씩씩한 이름이네
當年吾祖居初奠 당시에 우리선조 처음 살곳 정하니
此日遺孫築始成 이후 남은 자손이 재실 비로소 이루었구나.
月滿占磯遙想釣 달이 차면 바닷가에서 낚시할 생각 멀어지고
春回薄畒尙傳耕 봄이 오면 척박한 밭에서 오히려 농사짓는다 전하네.
願言諸族勤修葺 모든 일가 알았으니 부지런히 연구하고 꿰매어
無使斯齋或至傾 이 재실이 혹 기울어 짐이 없이 없게 하라.
后孫 永澤 謹稿
[해문] 백촌-김창현
先祖遺模惟在此 조상님 남긴 법도 오직 여기 있으니
忠信謙恭處世方 충성 믿음 겸손 공손 세상사는 법이라.
孝慈敦睦齊家法 효성 자애 친족 화목 가정을 다스리어
諸孫相勉願無忘 모든 후손 서로 힘씀 잊지 말기 바라오.
‣측기식 7언절구의 형식 七陽平聲운<方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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