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민속·향토문화재

창원시 웅천 사도마을 신당과 신목

천부인권 2020. 12. 27. 08:22

2020.12.25. 사도마을 회화나무 신목을 남쪽에서 본 모습
2020.12.25. 사도마을 신목 남쪽 근접

웅천 남문동 1284번지는 사도沙道마을의 신목神木인 회화나무 노거수가 있는 곳이다. 이곳은 위치기반고도계가 해발 4m를 표시하고 「위도35°06'16"N 경도128°45'36"E」라 표시한다. 웅천 지역의 신당神堂을 조사하면서 사도마을에도 신령神靈을 모시는 집이 있었음을 알고 찾았으나 지금은 신당이 사라지고 없다는 것을 알았다. 
인간이 만든 어떤 종교도 미신 아닌 것이 없는데 유독 우리의 전통 신앙信仰만이 미신이라 배척排斥하는 것은 우리가 가진 위대한 문화를 크게 경험하지도 못했고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매우 부끄러운 일이다. 자신들의 몸을 있게 하고 생명을 준 조상祖上들의 공동문화가 모여 민족民族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되는데 우리 민족만이 자신을 있게 한 조상들의 문화를 지키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누구인지 생각도 없이 남의 것만 유독 쫓아 따라가는 못난 민족은 결국 지구상에서 사라질 것이다. 그게 우리 민족이 아니기를 바라며 우리에게서 사라지는 전통 신앙의 근원을 찾아본다.
1967년 문교부 소속 문화재관리국에서 조사한 『전국부락¹⁾제당조사질문지全國部落祭堂調査質問紙』의 내용을 근거로 『웅천 사도마을 신당』을 찾았으나 사도마을을 포함한 남문동 일대의 개발로 인해 신당은 사라지고 지금은 신목神木만 자리하고 있다. 또한 회화나무 노거수가 있는 이곳은 예전에는 벅수가 있었기에 벅숫골이란 이름으로 전했는데 ‘장승제’도 함께 지냈다고 한다.
당시 웅천국민²⁾학교에 근무했던 32세의 하상락河祥駱씨의 조사에서는 신당의 위치는 「사도마을 중앙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2평 규모의 기와집이라 기록했다. 신당의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고 제주祭主가 모든 그릇을 준비해 온다.」고 했다. 특별한 전설은 없고 제단祭壇도 없으며 신목은 할매라 불렀고 신당은 할매사당이라 했다. 제주祭主는 마을 주민 중 부정不淨이 없는 50대 부부가 선출됐다. 제주祭主는 부정한 것을 보지 않고 강물에 목욕했으며, 임산부나 해산녀解産女는 10일전에 마을 밖으로 보냈다.
제례일은 음력 정월 2일 12시~1시까지이고 진행은 유교식儒敎式이며 상차림은 술酒 흰떡白餠 쌀밥白飯 과실果實 명태明太 등이다. 
사도沙道마을이 언제 생겼는지는 알 수 없고 토속 성씨도 없다. 사도마을의 이름에 대해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전하나 구전이고 기록된 근거는 없다. 사도沙道마을의 특이 사항은 임진왜란 때 조선朝鮮을 침략한 왜병倭兵이 평양을 넘지 못하고 후퇴했는데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남산에 왜성을 쌓아 왜육군제1군기지로 사용하면서 왜군의 군기를 다잡기 위해 스페인 출신 신부 세스빼데스(Gregono de cespetes)를 초청해 1593년 12월 27일 사도마을에 내려 첫 미사를 남산왜성에서 올린 것으로 전한다. 그 사실을 기념하기 위해 남문동에 ‘세스빼데스 공원’을 만들었다. 아무리 만들게 없다 하지만 적의 기세를 올려주기 위해 침략의 의도로 우리 땅에 도착한 적의 군종신부를 찬양하는게 말이 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주석】
부락¹⁾ : 부락部落이란 용어는 일제강점기 때 왜자倭者가 우리 민족을 낮추어 부르는 이름으로 부락部落이라 했다. 부락部落이란 용어는 왜국倭國에는 천민이나 범죄자 및 지적장애인 등이 모여 사는 곳을 의미한다.
국민²⁾ : 국민國民이란 용어는 왜놈倭者이 일제강점기 때 우리 민족을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 부르는 말의 준말이다. 황국의 ‘국’과 신민의 ‘민’을 따서 국민이라 했다. 즉 왜국倭國의 천황天皇의 신하臣下된 자들이라는 뜻으로 우리 민족을 하찮은 민족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이를 매국노들이 계속해서 사용하다가 ‘인민人民’이라는 말을 북한이 사용한다고 다까끼마사오와 그 일당들이 남한은 ‘국민國民’이라는 말만 사용해야 한다고 억압하면서 굳어진 용어이다. 지금부터라도 이 용어는 헌법에서 삭제해야 한다. 매국노들의 주장처럼 북한이 '인민人民'이라는 말을 사용해서 우리는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북한이 한글을 쓰고 있다. 그러면 북한이 쓰는 한글을 왜 우리가 쓰고 있느냐고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2020.12.25. 사도마을 신목을 북쪽에서 본 모습

출처 및 참조
전국부락제당조사질문지全國部洛祭堂調査質問紙-문교부 문화재관리국(1967)
진해의 땅이름 이야기-황정덕/동양문화사(200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