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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령 정암루

천부인권 2021. 3. 12. 18:47

2021.1.10. 의령 정암루

함안 월촌리 정암에서 남강을 넘어 의령으로 진입하는 남강변의 우뚝 솟은 봉우리 정상에 위치한 정암루鼎巖樓1978년 중수했다. 정암루  내부에는 당시 군수 정계수鄭桂守가 중건기문을 짓고 남상구南相九가 글씨를 쓴 중수기가 걸려있다.

정암루 아래의 남강에는 우리나라 3대 부자가 탄생한다는 솥바위鼎巖가 있어 유명해 졌는데 이곳이 옛 정암진 나루이다. 이 정암진은 임진왜란 때 나라를 구한 홍의장군 곽재우가 의병을 이끌고 갈대 사이에서 강을 오르던 왜구들과 전투를 벌여 혁혁한 전과를 올린 곳이다. 

 

의령 정암루 편액
의령 정암루 중건기

정암루중건기 鼎巖樓重建記

산과 물이 어울리는 곳에 絶勝이 많으나 鼎岩같이 생김이 奧妙하고 秀麗한 곳은 찾기 어렵다. 이 고을 眞山인 闍崛山 뫼줄기 東으로 내려와 龜龍山에 봉우리 짓고, 숨이 차서 智異山 흘러온 南江물을 마시는, 여기 自然의 造化에 感歎을 禁할 수 없는 곳이다. 멀리 防禦山 구름 속에 묻히고 奇巖斷崖가 江물에 모습 그리울 때, 江中 우뚝 솟은 솥바위에 낚시 드리운 이는 바로 神仙이요, 世上 시름도 江물과 함께 흘러 갈 것이다. 東西에 훤히 트인 넓은 들 기름진 땅 五穀이 푸르지만, 그 옛날 우리 祖上들이 밀려오는 倭兵을 늪으로 꾀여 무찌른 義兵의 싸움터요, 紅衣 白馬를 탄 郭再祐將軍의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나라가 危殆로울 때 이 고을 百姓들이 여기서 陳을 치고 敵을 무찌른 그 氣槪 이 形勝과 無關하다 할 수 있겠는가.
正義로운 싸움과 忠節을 길이 빛나게 하고 景槪 좋은 이 곳에 調和를 이루어 樓를 짓자는 郡民의 뜻에 따라 西紀 一九三五年에 儒林과 有志들이 이 樓를 雄壯하게 지었다. 西紀 一九五○年 六·二五의 兵火로 灰燼되었다가 西紀 一九六三年 郡民의 精誠으로 새로 지었으나 歲月이 감에 허물어진 곳이 있어 一九七三年 義兵記念事業會가 重修를 하고 一九七八年 郭再祐 將軍 遺跡淨化事業이 朴正熙大統領 閣下의 吩咐로 施行됨에 이 樓도 다시 重修하여 그 모습을 새롭게 하였다. 
이 樓에 오르는 이여, 그 옛날 이 고을 義兵들이 나라 지키기에 義롭게 흘린 피가 오늘도 江물에 흐르고, 저 들판엔 그 때의 喊聲이 지금도 메아리 치니 마음속 고요히 옷깃을 여미자.
一九七八年 十一月 日
郡守 鄭桂守 짓고
     南相九 쓰다

 

2021.1.10. 의령 정암루

題宜寧鼎巖亭 - 의령 정암정에서[해문 고영화] 
巖下淸流鏡拭塵 바위 아래 흐르는 물은 티끌을 씻은 거울처럼 맑고
條風不動柳生春 북동풍이 잠잠하니 버들이 봄을 알리네.
江山無恙渾依舊 산천은 무심해도 온통 예전과 똑같건만
十載重來眼更新 십년 만에 다시 오니 눈이 다시 새롭네

문경동(文敬仝 1457∼1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