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과 지리산 길상봉(1,507m)의 정상인 노고단(老姑壇)을 탐방하기 위해 아침 7시경부터 차량을 기다리며 만남의 광장에 도착했으나 차량이 예정 시간보다 30분 정도 늦게 되어 출발도 늦었다.
우리 일행을 태운 차량은 전라도 섬진강 휴게소를 들러 구례를 거쳐 지리산 노고단로를 따라 구불구불한 산길을 거슬러 올랐다. 목적지 바로 아래에 위치한 시암재휴게소 주차장에 잠시 들렀는데 운전하신 분이 성삼재주차장으로 착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곧장 성삼재주차장으로 진입해 주차하고 일행들은 산행 준비 했다.
하늘은 전형적인 가을의 모습으로 맑고 온화한 날씨였으며 걷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날이다. 우리 일행은 총 6명이다. 그중 한 분이 건강에 이롭다며 맨발로 등산을 즐기는 분이라 체력에 자신이 없었지만 따라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노고단 정상까지 안내표지에는 2.4km를 적었으나 직선거리를 말한 것이고 사실 걸어가는 길은 약 3.5km는 넘는 듯 보였다. 차량으로 노고단 정상 바로 아래까지 갈 수 있으나 일반인들은 이용할 수 없고 국립공원 관계자나 KBS송신소 관련 차량과 서울대학 자연생태복원팀 등의 차량이 사용하고 있다.
은근히 오르막을 형성하고 있는 노고단 가는 길은 그렇게 구불구불 이어져 노고단대피소를 향하고, 대피소부터 이제 정상을 향한 박석(薄石) 계단 길은 조금 급한 경사로 300m 오르면 노고단분기점 능선에 도착한다.
노고단은 고산지역으로 정상부가 급경사 없이 너른 형국이라 예부터 화랑들의 수련장이나 휴식지로 활용되었는데 1920년대에는 선교사들의 풍토병 치료를 위한 별장지였고 1970년대에는 군부대가 주둔했었다.
노고단의 출입 인원 수를 통제하기 위해 검문소 겸 사람의 숫자를 기록하는 건물을 지나면 나무판으로 만든 길을 오르게 되는데 급경사는 아니지만 경관이 뛰어난 쉼터까지 450m정도는 은근히 오르막길이다. 쉼터에서 정상의 노고단 표지석이 있는 곳까지 약 100m이며, 노고단표지석에서 인증 사진을 찍기 위해 줄이 서 있다. 이곳은 사방이 훤히 보이는 길상봉의 정상이며 뒤쪽에 노고단 탑이 우뚝 서서 사람들을 맞이한다.
사람 키보다 큰 자연 암괴의 표지석 정면은 남쪽을 향하고 앞면에 ‘老姑壇’이라 새기고 좌측에 작은 글씨로 구례군번영회(求禮郡繁榮會)라 적었으며 뒷면에는 서기 1991년 10월과 ‘학정 이돈흥(1947~2020) 쓰다.’라 기록을 했다.
구분 | 原文 | 한글 |
표지석 글 | 老姑壇 | 노고단 |
주체 | 求禮郡繁榮會 | 구례군번영회 |
일시 | 西紀壹九九壹年 拾月 | 서기 1991년 10월 |
글쓴이 | 鶴亭 李敦興 書 | 학정 이돈흥(1947~2020) 쓰다. |
정상을 향한 힘들었던 기억은 사라지고 광활하게 펼쳐진 산들의 봉우리는 하늘의 구름에 맞닿았고 잠시의 휴식은 희열이었다. 그렇게 일행들은 정상에 마련된 전망대의 나무계단에 앉아 물과 과자 등 간식을 챙겨 먹고 노고단(老姑壇)의 유래에 대해 살펴본다.
『노고단 돌탑의 유래
노고단(老姑壇)은 신라 화랑들이 이곳에서 수련을 하면서 탑(塔)과 단(壇)을 설치하고 천지신명과 노고할머니께 나라의 번영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한데서 유래 되었다한다. 당시 쌓았던 탑과 단은 1,000년의 새월이 흐르며 초석으로 짐작되는 몇 개의 큰 돌만이 남아 있었으나 지난 1961년에 다시 축조하여 지금의 모습으로 보존되고 있다. 따라서 탑의 원형보존을 위하여 주변 돌들을 옮기는 행위 등을 유의하여 주시기 바란다,』
노고단돌탑 앞의 안내표지판의 사진과 지금 모습의 탑을 비교하니 탑 정상부의 인면석 모양이 다르다. 아마도 1961년에 쌓았던 탑이 무너지고 1991년 노고단 비갈을 세울 때 다시 돌탑을 쌓았던 모양이다.
동쪽 방향에는 반야봉, 삼도봉, 천왕봉, 촛대봉 등이 가깝고 멀게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남쪽 아래에는 구례와 화엄사, 섬진강이 아스라이 펼쳐진다.
힘을 비축하고 돌탑을 돌아본 후 북쪽의 계단으로 하산을 시작했다. 계속 내리막길이겠지만 인원을 세는 건물까지는 큰 나무가 없어 경관이 뛰어나다. 하산하는 길은 차량이 통행할 수 있는 임도를 따라 내려왔는데 한결 수월한 산행이 되었다. 운동량이 없다 보니 일행들과 보조를 맞추기가 쉽지않았지만 일행들의 배려로 쉬엄쉬엄 걸으며 성삼재주차장으로 돌아와 산행을 마감했다.
돌아오는 길은 뱀사골을 따라왔는데 오는 도중 점심으로 산채비빔밤을 먹었는데 꽤 맛이 좋았다. 지리산의 가을 단풍은 1,400백 고지 이하에서 절정을 이루었고 뱀사골의 단풍은 절경이었다. 모두들 피곤했는지 내려서 구경하고 가자는 일행이 없어 오늘의 노고단 나들이는 끝이났다.
몇 번 성삼재를 넘었지만 노고단을 등산할 준비가 없어 가지 않았는데 이제 노고단의 풍광을 가슴에 담을 수 있었던 하루였다. 결국 경험하지 않은 것은 상념에 불과하고 개념의 완성은 경험에 의하여 완성됨을 느꼈던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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