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향교와 뿌리

합천 강양향교 江陽鄕校

천부인권 2024. 3. 30. 07:02

2024.3.15.합천 강양향교

 

합천 강양향교江陽鄕校는 1965년 합천읍 합천리 690-2(충효로1길 5-12)인 이 장소에 새로 지었는데 현재 문화재자료 제210호로 지금까지는 문화재로 등록된 향교 중에서 가장 늦게 지정된 향교이다.
합천의 중심지인 합천읍에 합천향교가 있었는데 1881년(고종 18년) 큰 수해가 나서 군청을 야로면으로 옮기자 향교도 야로면으로 옮기고 합천향교라 이름했다. 그 후 다시 군청을 옮겨오면서 향교를 그냥 두었다가 야로면의 “합천향교”를 옮기려 하자 야로면의 반대로 이전하지 못하고 지내다가 합천·용주·율곡·대양면의 유림들을 위해 현재의 위치에 향교를 지었는데 야로면의 합천향교와 구별하기 위하여 “강양향교”라 했다. 
이곳은 언덕의 정상부에 평삭平削한 좁은 땅이라 일반적인 향교처럼 ‘전학휴묘前學後廟’의 형태가 아니라 명륜당이 작고 대성전과 나란히 배치한 ‘좌학우묘左學右廟’로 되어 있지만 별도의 담장을 둘러 제례 공간을 분리했다. 건물은 외삼문·명륜당·내삼문·대성전·화장실로 구성되어 있다.

 

2024.3.15.합천 강양향교 외삼문
2024.3.15.합천 강양향교 명륜당과 대성전
2024.3.15.합천 강양향교 명륜당
2024.3.15.합천 강양향교 대성전

 

江陽鄕校明倫堂重建記
盖聞天以陰陽五行化生萬物 而惟人也最貴 故賦以五倫也 夫所謂五倫者何也 曰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此人之所不可一日 而無之者也 故人倫明 則家國治 人民得所 而能相養 人倫不明 則家國亂 人民失所 而不能相養 將歸於滅亡 然則家國之所 以治亂興亡 皆係於人倫之明 不明如何矣 可不重歟是 故古昔聖王之治 其家國也 自王宮國都 以及閭巷 莫不建學立師 以敎人倫家國大治 今之鄉校 卽其遺制也 我東自麗末鮮初設立 一郡一校 各置一人招英才 教詩書使知 父慈子孝 君義臣忠 夫和婦順 長愛幼敬 兄友弟恭 朋信友諒 故人倫明而家國治矣 一自受倭軍 兩政 以來半百年之間校宮 雖存訓導廢而讀書撤 不復明倫 故物質重而人道輕政敎衰 而家國亂 父子相殺 人民相奪幾至於滅亡之境何 幸近年自國家援助各鄉校 設立教室講師 利用冬夏放學時期 招集中高敎男女學生 啟講忠孝禮節教育 忠孝乃明倫之本 禮節行忠孝之路也 是人道重 而物質輕政敎興 而家國治 古昔聖王明倫之學庶自 此而可復矣 豈非幸歟雖 然我江陽鄉校明倫堂制度狹隘不能容重衆有礙 於教育故常欲再建 而力綿不就 今番典校金英洙極費心力 遠得道聽金知事之援金 近得郡守之助力 撤去明倫學院重建四架五楹之堂 於其址東西二間作煖房 中二間作凉廳 以便起居 材木膚碩制度廣闊 可以容衆用作明倫奉祭之所 將選日 告成請記於不佞不妄 亦喜聖學之復興 而人倫之復明 亦貪掛名之榮遂不辭 而記之如右 後之居斯者 顧名思 義不廢先儒之德業 後學之養成吾入地 而祈祝焉
孔紀 二千五百五十年 龍集己卯 九月上浣
後學成均館典儀 陜川后人 李保鉉 謹記

강양향교명륜당중건기
대개 듣건대 하늘이 음양오행陰陽五行으로 만물을 생육生育하고 그 중 오직 사람이가장 귀貴하기 때문에 오륜五倫을 부여賦與하였다. 대저 이른바 오륜이란 어떤 것인가?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는 친親함이 있고 임금과 신하 사이는 의義가 있고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구별區別이 있고, 어른과 아이 사이에는 차례가 있고, 벗과 벗 사이에는 믿음이 있다. 이는 사람에게 하루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인륜이 밝으면 가정家庭과 나라는 잘 다스려지고 사람은 마땅한 곳에 있게 되고 능히 화합하고 인륜을 밝히지 않으면 나라는 어지러워지고 사람은 마땅한 곳을 잃고 서로가 화합하지 못하고 장차 멸망滅亡하기에 이를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나라가 잘 다스려지기도 하고 어지러워지기도 하고 일어나기도 하고 망하기도 하는 것은 모두 인륜을 밝히고 밝히지 않는 것에 있으니 어찌 중요하다고 하지 않을 것인가? 이러하기 때문에 옛 성왕聖王의 다스림은 가정과 나라에 있었다. 왕궁王宮과 한 나라의 도읍에서부터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학교를 세워 스승을 두고 인륜人倫을 가르치지 않음이 없어 나라는 잘 다스려졌다.
지금의 향교鄕校는 그 남긴 제도로서 우리나라는 고려 말末에서 조선 초初에 한 고을에 한 학교를 설립하여 각각 한 사람을 두고 영재英才를 모아 시경詩經과 서경書經을 가르쳐 아버지는 사랑하고 아들은 효도하고 임금은 의義를 행하고 신하는 충성忠誠하고 남편은 화목和睦하고 아내는 순종順從하고, 어른은 사랑하고 아이는 공경恭敬하고 형은 우애友愛하고 아우는 공손恭遜하고 벗과 벗은 서로 믿음으로 할 것을 알게 하였기 때문에 인륜은 밝고 나라는 잘 다스려 졌던 것이다.
그러나 한번 왜군의 侵掠을 받은 이후로 반백년 동안 향교鄕校의 건물建物은 있으나 가르침과 독서는 철폐撤廢되고 인륜을 밝히지 않아 물질物質은 중하고 인륜은 가벼워 정치政治와 교육敎育은 쇠퇴衰頹하여 가정과 나라는 어지러워져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죽이고, 백성은 서로가 빼앗고, 거의 멸망의 지경에 이르렀으나, 다행히 근년近年에 국가國家에서 각 향교에 원조援助를 하여 교실을 설립하고 강사講師를 두어 겨울과 여름에 방학 시기를 이용하여 남녀 중고등생中高等生을 모아 충효예절교육忠孝禮節敎育을 강의講義하게 되었으니 충효忠孝는 곧 인륜을 밝히는 근본根本이며 예절禮節은 충효를 행하는 길인 것이다.
이로부터 인륜을 중히 여기고 물질은 가볍게 여기니 정치와 교육은 일어나고 가정과 나라는 다스려져 옛 성왕의 인륜을 밝히는 학문이 이로부터 회복回復을 보게 되었으니 어찌 다행이라 아니할 것인가? 그러나 우리 강양향교江陽鄕校 명륜당明倫堂은 규모規模가 협소狹小하여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가 없어 교육에 애로가 있어 늘 재건하고자 노력을 계속하였으나 힘이 약해 이루지 못하던 중 이번에 김영수전교金英洙典校의 힘으로 멀리는 김지사金知事의 후원금과 가까이는 균슈郡守의 조력助力을 얻어 명륜학원을 헐고 4칸의 집을 그 자리에 중건하여 동쪽과 서쪽 2칸은 난방으로 하고 가운데 2칸은 시원한 마루로 하여 기거에 편하게 하였다.
재목은 크고 구조는 광활廣闊하여 가히 만은 사람을 수용收用하여 인륜을 밝히고 제향祭享을 봉행奉行하는 곳으로 할 만하여 장차 좋은 날을 가려 완공完工을 고告하고자 하면서 부족한 나에게 기문記文을 청하고 나 또한 성인聖人의 학문學問이 회복되고 인륜人倫을 다시 밝히게 된 것을기뻐하고 또 내 이름을 걸게 되는 영예를 탐내어 마침내 사양하지 않고 이와 같이 기록記錄하니 훗날 여기에 거하게 되는 사람은 이름을 돌아보고 뜻을 생각하고 선유先儒의 덕업德業이 폐廢하지 않고 후학後學을 양성養成할 것을 땅 밑에 들어간 뒤에까지도 빌면서 경하慶賀한다.
공기 2550년(1999) 용집기묘 구월상완
후학 성균관 전의 합천후인 이보현 삼가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