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여행 이야기

선운사

천부인권 2026. 3. 11. 20:39

2009.4.19.선운산가비

 

이비의 뒤편에는  거정주의 시가 새겨져 있다.

 

나라위한 싸움에 나간 지아비
돌아올 때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매
그님 그린 지어미 이산에 올라
가슴에 서린 시름 동백꽃같이 피어
노래하여 구름에 맞닿고 있었나니
그대 누구신지 너무나 은근하여
성도 이름도 알려지진 안했지만
넋이여 먼 백제 그때 그러시던 그대로
영원히 여기 숨어 그 노래 불러
이 겨레의 맑은 사랑에 늘 보테옵소서
미당 서정주 지음

 

고려사악지(高麗史樂志)에 있는 선운산가(禪雲山歌)는 정역(征役)에서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기다리는 망부(望夫)의 애절(哀切)한 사연(事緣)이 백제가요(百濟歌謠)로서 그 유지(遺址)가 남아있으면서도 가사(歌詞)가 전해지지 않아 아쉬움이 여간 아니었는데, 주봉관(朱奉官)씨의 뜨거운 애향심으로 천오백년(千五百年)의 한(恨)을 풀게 되었기에 여기에 그 사적(事績)을 적는다.
1981년 5월 10일  고창문화원(高敞文化阮)

 

2009.4.19. 미당 서정주 시비

 

선운사 골 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리 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
그것도 목이쉬어 남았습니다.
단군기원 사천삼백칠년
미당 서정주 지어씀

이시의 탄생 배경은 서정주가 27세 되던 해 선운사에 놀러 왔다가 막걸리 집 주모와 거나하게 술을 한잔 나누고 하룻밤 풋사랑을 하였답니다. 아침에 주막을 나서면서 주모와 동백꽃이 피거든 다시 놀러 올 것을 약속을 하였는데, 6.25사변 등 세상이 어지러워 이 약속을 잊고 지냈다가 세월이 한참 지난 후 어쩌다 선운사에 들러 보니 그 약속이 생각이나 주막을 찾으니 주막은 사라지고 그 여인의 행방도 묘연했다고 합니다.
서정주의 생각은 그 여인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지 않았을까 하고 생각하면서 싯구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았습니다."라는 표현을 했습니다. 
이 뜻은 아직 동백꽃이 필 시기는 아니지만  작년에 핀 동백꽃이 아직까지 가지 끝에 매달려 시든 체 붙어서 떨어지지 않은 모습이 그 옛날 추억이 있는 주막집 여인이 자신이 오기를 기다리는 애틋한 모습이 아닐까 라는 심정을 표현한 것이라 합니다.
거것도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니다.”라고 표현하는 이런 미적 감각이 詩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2009.4.19.도솔산선운사 일주문

 

2009.4.19.선운사 동백꽃

 

선운사 동백꽃에는
선운사를 방문할 때에는 싯구 한 소절 새겨보고 간다면 아름다운 경관과 시공을 뛰어 넘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향기가 어우러져 애틋한 추억을 두고 올 것이다.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쪽 해안이나 섬에서 자란다. 꽃은 이른 봄에 피는데 매우 아름다우며 꽃이 피는 시기에 따라 춘백(春栢), 추백(秋栢), 동백(冬栢)으로 부른다.
고창 삼인리의 동백나무숲은 백제 위덕왕 24년(577) 선운사가 세워진 후에 만들어 진 것으로 나무의 평균적인 높이는 약 6m이고, 둘레는 30㎝이다. 절 뒷쪽 비스듬한 산아래에 30m 넓이로 가느다란 띠모양을 하고 있다.
고창 삼인리의 동백나무숲은 아름다운 사찰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사찰림으로서의 문화적 가치 및 오래된 동백나무숲으로서의 생물학적 보존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출처 : 문화재청>

 

2009.4.19.선운사 영산전 목조삼존불

 

영산이란 영산회상으리 준말로써 부처가 영추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했던 법회의 모임을 뜻한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여 좌우에 갈라보살(竭羅菩薩)과 미륵보살을 협시로 순조 21(1821)년 삼존불을 봉안하였다. 또한 16나한이 함께 모셔져 있는데 부처의 제자 중에 아라한과를 얻은 자들로서 응공, 응진의 자격을 갖춘 자들이다. 진리에 당하여 공양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자들이란 뜻이다.

 

2009.4.19.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

 

천인암(千仞岩)이라는 기암 절벽과 맑은 물이 흐르는 깊은 계곡 사이에 자리한 내원궁은 고통 받는 중생을 구원한다는 지장보살을 모신 곳으로 상도솔암이라고도 부른다. 거대한 바위위애 초석만을 세우고 만든 이 건불은 작은 규모 이지만 매우 안종된 느낌을 준다. 이 내원궁은 신라 때부터 있었다는 말도 전하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초기에 짓고 순조 17(1817)년까지 몇차례 보수한 것이다. 서쪽 암벽 밑에는 석불이 새겨져 있다.

 

2009.4.19. 선운사 도솔암 내원궁 내부
2009.4.19. 선운사 진흥굴

 

이 굴은 숭불왕(崇佛王)으로 유명한 산러 24대 진흥왕이 부처의 계시를 받아 당시 백제 땅인 이곳에 의운국사를 시켜 선운사를 찬건케하고 왕위를 퇴위한후 선운사를 찾아 수도 했다는 암굴이다. 진흥왕은 그의 중애공주와 도솔왕비의 영생을 위해 이 굴 윗 산에 중애암을 그리고 만월대 밑에 도솔암을 각각 세웠다고 한다. 

선운사 본당에서 서쪽으로 2km지점에 위치한 이 굴은 길이 10m, 높이 4m의 동굴이다.

 

2009.4.19.선운사 약사여래불상

 

조선 시대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이 불상은 중생을 고난에서 구제하고 재난과 질병을 없애 준다는 약사여래불이다. 이마에 두른 태나 머리에 쓴 두건자락이 양어깨를 덮고 앞가슴에 목걸이 장식을 표현한 점은 선운사 금동여래좌상과 흡사하다. 그러나 옷과 손의 모양을 매우 간략하게 처리한 점에서는 차이가 있다. 불상의 전체적인 모습을 볼 때 지장보살로 보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