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 자원봉사/봉사단과 마을 이야기

의령 화정 장박부락

천부인권 2006. 6. 13. 19:27
 

의령 화정 長朴里

마.창 기술봉사단 06년6월11일이야기


  장박부락은 앞으로는 낙동강이 흐르고 그 앞에는 방어산이 보인다. 방어산은 마을의 동남 방향이며 세 개 군(함안군, 진양군, 의령군)의 경계지역으로 홑 산이다. 진양군 지수면과는 배를 타고 다녔는데 염창나루(만해염창)라 불렀다. 중국의 지명 중 염창이란 곳과 너무나 닮았다고 하여 염창이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의 뒤로는 낮은 산이 있고 그 뒤의 주산은 벽화산이다. 벽화산에서 이 마을을 보면 박이 세 개 있는 모양이라 삼박골이라고 불렀다. 특히 장박부락(길고 둥근마을)은 옛 지명이 만해장박이라 불리웠는데 길쭉한 모양의 박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쳐진 이름이라 한다.

 

  이웃 마을의 지명들은 일제시대 때 바꾸어 졌는데, 자연부락 네 곳은 뒷골→후곡리, 가마실→부곡리, 재작골→백곡리, 만해장박→장박리가 옛 지명들이다. 재작골은 지금의 번개시장처럼 잠시 생겼다 사라지는 장이 섰다고 한다. 일제 때 장박리는 인근의 곡물이나 물자들을 이곳에 집결하여 수탈한 것들을 배로 이동하였기에 백곡(저작골)에 섰든 장이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장박교는 5년전(2001년)에 완공되었고 그전에는 배로 건너 다녔다고 한다.

 

  이 마을의 유래는 전남 나주에 살던 영산 신씨가 합천 야로면을 거쳐 이 마을에 이주한 것이 약350년 전 임진왜란 때였다고 한다. 지금 현재 40호 가량이 살며 빈집은 없고 노인들이 집을 지키고 있으며, 5~6 성씨가 살고 있다. 마을엔 재벌가는 탄생한 바가 없으나 100년 전에는 한학자 두 분이 살았고 근래에 진주산업대학교 학장을 지낸 신유환씨가 있으며, 전에는 한 집에 한명씩 공무원이 있을 정도로 공무원이 많이 살았다고 한다. 

 

  옛날에는 마을 일대가 대나무 밭이었어나 새마을 운동으로 대나무는 사라졌고, 김해 김씨들이 배나무 과수원을 많이 가지고 있었으나 현재는 주 생산물이 10월에서 2월말까지 나오는 호박(쥬키니 호박)이고, 하우스로 수박을 많이 재배하고 있으며 토마토, 고추 등이 생산된다. 벼농사는 먹을 식량 정도만 짓고 있다. 여기가 인근에서 가장 지대가 높은 지역이고 백곡리 쪽으로 가는 곳이(하우스가 많은 곳) 지대는 낮으나 농사가 잘되는 지역으로 한해 보리농사만 잘 지어도 3년은 먹고 살았다고 한다.

 

  동신제는 따로 없고 정월 대보름날 달집태우기는 해마다 하며, 동짓달 16일은 5성씨가 모여서 하는 동안계(이수계)를 지금도 하고 있다. 동안계란 5성씨(청송 심씨, 부곡의 인동 장씨, 후곡의 경주 최씨, 삼정의 동래 정씨, 장박의 영산 신씨)가 옛날에 인근의 상권을 장악했음은 물론이고 질서유지의 기능을 했으며 이들 성씨가 모여 인근의 대소사를 결정했다는 근거가 있다. 2003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415호로 지정된 장안계 기록집인데 옛날에는  5성씨 중 제일 장수하는 집안에서 보관하는 관습에 따라 청송 심씨의 집에서 보관하던 중 족보와 함께 도둑을 맞았으나 경북청도에서 도둑이 잡히는 바람에 돌아왔는데 지금은 불이 나도 보존되는 금고에 넣어 열쇠는 의령 부군수가 가지고 있으며 장박리 영산 신씨의 재실에 보관하고 있다.

<신씨 재실 모습>

  마을 입구에 하마비가 원래는 여섯 개가 있었다고 하나 신동우(의령군 화정면 화양리 장박부락 696번지, T : 055)574-1692)씨가 어려서부터 본 기억으로는 세 개가 있었는데 도로를 확장하면서 마을입구 근처에 묻어버려 지금은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아름다운 자태의 백합이 향기를 진동시키고 있다.>

방어산의 기록

웅산이라고도 불렀으며, 높이는 530m이다. 방어산은 쾌방산(451m)과 능선으로 연결되어 있어 두 산을 함께 오르는 등산로가 개발되어 있다. 이 산을 중심으로 1993년 12월 16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남동쪽에는 여항산(770m)이, 정상에 서면 지리산이 아득하게 보인다.

정상에는 옛날 성의 자취가 남아 있다. 전설에 따르면 양쪽 겨드랑이에 날개가 달려 날아다니며 300근짜리 활을 쏘는 묵신우(墨神祐)라는 장군이 있었다. 병자호란 때 성을 쌓고 성문을 닫은 채 한 달을 버티다가 비로소 적을 물리쳤다고 한다.

<봉사단원들의 모습>
  그때 장군이 타던 말의 발굽 핏자국이 아직도 바위에 선연하다고 한다. 산의 7부 능선에는 보물 제159호로 지정된 높이 353m의 거대한 방어산 마애석불이 있다. 산은 높지 않으나, 군데군데 암반이 많고 능선이 제법 굴곡되어 있어 산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산행은 방어산만 오르는 코스와 계방산과 함께 오르는 코스가 있다. 방어산만 오르려면 하림리 낙동마을 뒤쪽에서 시작하여 마애사,방어산 마애불을 거쳐 정상에 오른 후 군북면 박곡리 남강휴게소로 하산하며 2시간 정도 소요된다.

<마창기술봉사단원들의 모습> 

  다른 코스는 하림마을에서 마당바위를 거쳐 방어산고개에 오른 뒤 정상에 닿는 등산로가 있다. 정상에 오른 뒤 계방산까지 산행하려면 정상에서 방어산고개와 전망대를 거쳐 괘방산 정상에 도착하여 어식재로 하산하며,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정상은 큰 바위로 되어 있어 장군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곳에서 50m 아래와 200m 아래 지점에는 마당바위와 흔들바위가 각각 있다. 높이8m, 폭 6.5m의 흔들바위는 끄덕바위라고도 부르며, 기울어진 쪽으로 부자가 난다는 전설이 있다.

<마을주민과 단원들>

벽화산성

종목 : 시도기념물 64호

분류 : 성지(성곽)

수량 : 일원

소재지 : 경남 의령군 의령읍 하리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하리 벽화산(521m) 줄기의 최고봉과 가운데 봉우리에 쌓은 2개의 산성으로, 상벽화성과 하벽화성으로 불리운다. 가야 때 쌓은 성으로 추정되며, 선조 22년(1589) 임진왜란 직전 의령읍성을 쌓으면서 전란을 대비하여 부분적으로 고쳐 쌓은 것으로 보인다. 선조 25년(1592) 임진왜란 때 홍의장군 곽재우가 고쳐 쌓은 산성으로, 의병을 거느리고 수천명의 왜적을 무찔렀던 전승지로 유명하다. 그 뒤 고종 13년(1876)에 크게 고쳐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원래 이 산성은 벽화산 아래까지 연장되어 있었던 듯하나 지금은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주변 마을에서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과 유물, 삼국시대의 무덤들이 발견되었다.

<삼백초도 자라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