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보물 제 147호)

천부인권 2009. 4. 9. 16:16

 

영남루 맞은 편 하천주차장에 차량을 주차하고 강을 배경에 넣어 촬영을 한 후 다리를 걸어서 건너 영남루와 무봉사를 보고 촬영하는 것이 순서 일듯 싶다. 

  <바람이 불어 반영을 잡을 수 없었다.>

 

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

보물 제 147호

경상남도 밀양시 내일동


영남루가 최초로 창건된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1365년(고려 공민왕 14년)에 그 전부터 있었던 작은 누각을 철거하고 규모를 크게 하여 개창하였다고 하며, 현재의 건물은 1834년(순조 34년)에 실화로 불타버린 것을 1844년(현종 10년)에 재건한 것으로 평양의 부벽루(浮碧樓)와 진주의 촉석루(矗石樓)와 함께 3대명루(名樓)로 일컬어지고 있다. 촉석루를 설명하시는 “문화해설사”분에 의하면 영남루는 촉석루를 보고 영감을 얻어 지어진 것이라고 했다.


영남루는 응천강(凝川江)에 임한 절벽 위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정면이 5칸이요, 측면이 4칸으로서 간격을 넓게 잡은 높다란 기둥을 사용하였으므로 누마루가 매우 높으며 그 규모가 웅장하다. 좌우에 날개처럼 부속건물이 있어서 층계로 연결된 침류당(枕流堂)이 서편에 있고, 능파당(陵波堂)이 동편에 이어져 있다. 누마루 주위에는 난간을 돌리고 기둥사이는 모두 개방하여 사방을 바라보며 좋은 경치를 감상할 수 있게 하였으며  공포(栱包)는 기둥 위에만 있고 그 사이사이에는 귀면(鬼面)을 나타낸 화반(花盤)을 하나씩 배치하였다.


안 둘레의 높은 기둥위에 이중의 들보(樑)를 가설하고 주위의 외 둘레 기둥들과는 퇴량(退樑)과 충량(衝樑)으로 연결하였는데, 그 가운데서 충량은 용의몸(龍身)을 조각하고 천장은 지붕밑이 그대로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등천강변에서 바라본 영남루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