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척화비(昌寧斥和碑)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8호
경상남도 창녕군 창녕읍 교상리 28-1
1866년[고종3] 일어난 병인양요(丙寅洋擾)에서 프랑스군을 1871년[고종8] 신미양요(辛未洋擾)에서 미군을 물리친 정부가 외국과의 화친을 경고하기 위하여 1871년 4월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 중의 하나이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친하게 되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일이다.(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라는 내용이 전면에 큰 글씨로, “만년에 걸친 자손들에게 경계하노니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戒吾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라는 내용이 좌측에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높이 123cm, 폭 34cm, 두께 20cm이다. 원래 창녕읍 교하리(橋下里)에 있던 것이 광복 후 만옥정 (萬玉亭)공원으로 옮겨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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