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표충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

천부인권 2009. 4. 18. 09:38

 

 <표충비각>

 

표충비(表忠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호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394


이 비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僧兵)을 조직하여 왜군을 무찌르고, 전쟁이 끝난 후에는 일본으로 건너가 왜군에게 끌려간 3천5백여명의 조선 포로를 귀환시키는데 큰 공헌을 세운 사명당(四溟堂) 유정(惟政, 1544~1610)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742년(영조 18) 에 남붕선사(南鵬禪師)에 의해 건립되었다.


높이 4m, 너비 1m, 두께 54.5cm인 이 비석은 일반 비석과 달리 비석의 몸체(碑身)를 검은색 대리석으로, 받침돌(座臺石)과 머릿돌(螭首)을 화강암으로 만들었다. 비석의 옆면과 뒷면에는 표충사(表忠寺)의 내력과 함께 사명당을 비롯하여, 서산대사(西山大師) 휴정(休靜, 1520~1604)과 기허대사(騎虛大師) 영규(靈圭, ?~1592)의 업적을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표충사의 연혁과 임진왜란 당시 승병들의 활약을 전해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사명대사에 대한 비문의 문장은 이의현(李宜顯)이 짓고, 김진상(金鎭商)이 글자를 썼으며, 맨 위 전서체(篆書體)의 머리 글씨는 유척기(兪拓基)가 썼다. 서산대사에 대한 비문의 문장은 이우신(李雨臣)이 짓고, 윤득화(尹得和)가 글자를 썼으며, 전서체의 글씨는 조명교(曺命敎)가 썼다. 또 비석의 양면에는 표충사 사적비와 함께 비석 설립에 관계된 사람들의 명단이 실려있다. 표충사 사적비는 이덕수(李德壽)가 짓고, 서명균(徐命均)이 글자를 썼으며, 조명교가 맨 위의 전서를 썼다.

 

이 비석은 국가에 환란이 있을 때마다 땀을 흘려 그 조짐을 미리 알려 준다는 이야기로도 유명하다. 민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사명대사의 우국충정이 지금까지 전해지기 때문이라고 믿으며 이 비를 신성시하고 있다. 더욱이 땀방울이 글자의 획 안이나 머릿돌과 받침돌에는 맺히지 않는다 하여, 그 신비함을 더해주고 있다.

 

 

<표충비 앞에는 향을 사르고 있다.>

 

 

<환란이 있을 때 땀을 흘린다는 신비한 표충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