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고법리 박익 벽화 묘(사적지 제459호)

천부인권 2009. 4. 18. 13:09

 

 

 

<멀리서 본 모습>

  

또다시 누군가는 이곳을 다시 찾겠지만 저 멀리서 구경만하고 지나는 것이 어쩌면 나을지도 모르겠다. 벽화는 이곳에서는 볼 수 없고 보수된 무덤만이 방문객을 맞을 뿐이다.

 

 

<박익 벽화 묘의 풍경>

고법리 박익 벽화 묘(古法里 朴翊 壁畵 墓)

사적지 제459호

경상남도 밀양시 청도면 고법리 산 134


이 벽화묘는 고려말 두문동 72현으로 유명한 송은 박익 선생의 묘이다.

선생은 1332년 밀양 삽포리에서 출생, 자는 태시(太始), 호는 송은(松隱) 시호는 충숙(忠肅), 본관은 밀성이다.

선생은 공민왕조에 등과하여 벼슬이 정경에 올랐고 여러번 왜구와 여진을 토벌하여 전공을 세웠으며, 고려말 포은, 목은, 야은 등과 함께 8은으로 일컬어지는 충절신이다. 이태조 등극 후 1395년 공조, 예저, 형조, 이조, 좌의정 등 다섯 차례나 불렀으나 끝내 나아가지 않았다.

이 벽화묘는 1420년(세종2년)에 축조된 것으로써, 1999년 9월 태풍으로 침하된 봉분을 보수하는 과정에서 지석(誌石), 유물과 함께 조선시대 벽화묘로는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굴된 채색 벽화묘(壁畵墓)이다.

봉분의 규모는 가로 605cm, 세로 482cm, 높이 230cm의 고려식 방형묘이다.

석실은 봉분 정상부에서 410cm 깊이에 풍화암반층을 굴착하여 남북으로 장방형 토갱(土坑)을 설치 그 속에 토깽 따라 화강암 판석을 길이 234cm, 높이 80cm, 폭 90cm의 장방형 석실을 조립한 뒤 먼저 판석 내면을 석회로 도장하고 그 위에 채색 벽화를 그렸다.

이 벽화묘의 특징은 그 시대에 흔히 그려진 일반적인 벽화와는 달리 인물, 도구, 말 등의 생활풍속도와 장벽 양쪽 가장자리에 매죽 그림을 배치한 것이 주목된다. 또한 벽화내용 가운데 양쪽 장벽 그림 속 인물들이 4인 1조를 이루면서 피장자의 두향 쪽으로 이동하고 있고, 남서 단벽의 그림은 모두 상호 대칭관계의 구도로 그려져 있다.

이 벽화묘에 그려진 매죽은 고려 태조 왕건릉의 사신도와 함께 인물풍속도에서 세한삼우가 교대해서 그려진 것은 국내에서는 유일한 벽화로서 고려말 조선초 벽화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뒤편에서 본 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