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창원에 보물급 문화재가 숨어 있다.

천부인권 2009. 4. 25. 13:00

 

  <법청사 전경>

 

창원 당도산 법청사 석가여래좌상(昌原 堂道山 法靑寺 釋迦如來坐像)

미 지정 문화재(보물급)

창원시 외동 601


문화재탐사 때 스치듯 안내한 이야기만 듣고 무작정 석굴암 같은 곳이 있다는 외동으로 가서 주민에게 물어보니 의외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창원병원 뒤편과 외동마을이 끝나는 지점에서 산으로 오르는 비포장도로가 나있고 법청사라는 간판이 있다. 법청사 마당에 주차를 하니 바로 석가여래좌상(釋迦如來坐像)이 건물 입구에 서 있다.

   < 석가여래좌상이 모셔져 있는 모습>

 

안내판에는 『전해 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이 곳에 큰 당(堂)이 있었다하고 지금도 뒷산을 당도산(堂道山)이라 부른다. 바위 아래 감로가 흘렀다 하고 지금도 주변에는 기와파편과 그릇 파편들이 출토되고 있으며, 일찍이 현각스님께서 길지(吉地)로 여기고 토굴을 지어 수도증진 하던 중 현몽에 의하여 우물을 개수 했더니 부처님을 발견하고 모시게 되었으며, 언제 누가 어떤 연유로 조성하여 모신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추측으로는 통일신라시대 말기 혹은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것으로 여겨지며, 좌대에 좌복(座服)이 조각된 점이 특이하고 유사한 석조여래좌상과 차이가 있어 학술적인 가치가 있다. 자연석 좌대는 이곳이 밭일 때 소를 몰아 쟁기질을 할 때마다 이 좌대에 걸려 쟁기를 못쓰게 되어 파보니 좌대가 있어 여기에 부처님을 모시고 기도를 드리고 있다.』라는 내용이 있다.

  <석굴이 있던 자리를 삼신각으로 사용 함>

  <삼신각 내부>

  <여래좌상의 모습>


그 곳에서 만난 김동조(59)씨는 78년 즈음에 불상을 현각스님이 발견 했으나 토굴에서 공부만하다가 떠나셨고 그 토굴을 지금은 산신각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이곳을 찾아와 많은 스님들이 공부를 하다가 갔는데, 이상하게도 불사를 일으켜 절을 지으려는 분들마다 다리가 부러지던지 몸에 이상이 생겨 그만 두었다고 하신다. 석가여래좌상이 발견된 우물터를 지금은 매워버렸는데 창원공단이 들어서면서 수맥들이 다 끊어져 물이 나오지 않는다고 하신다.

  <다른 사진>

석불좌상은 불당 앞에 있는 자연암반의 상면을 크기 130~120cm 정도 수평으로 깎고 고른 후 그 위 좌대(座臺)에 불상을 올려놓은 형식이다. 좋 높이는 190cm 정도 이다. 머리 부는 42~23cm 크기이며, 나발이 크고 뚜렷하다. 귀는 12cm 정도크기로 표현되었는데, 자세히 보면 양쪽 귀 부분은 따로 붙여 놓은 것임을 알 수 있다. 불신(佛身)은 어깨 폭이 55cm 정도 이며, 법의()는 왼쪽 어깨만 노출된 우편편단(右扁偏袒)이다.

좌대는 83cm정도의 높이고, 최하단부는 복련(伏蓮)이 12개 돌아가며, 상단부는 높이 32cm이고 복련이 12개 새겨져 있다. 전체적인 수법으로 보아 석불은 대략 고려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불의 원래 위치는 알 수 없다.

[창원대학교박물관 1995년, 창원시 문화유적 정밀지표조사보고서]

   <또 다른 모습>

 

자신의 증조할머니(정축생, 120세)가 이 곳에 터를 잡고 살아 오셨는데 그 때만해도 남천에서 바다고기 낚시를 하셨다고 들었다 한다. 일본이 들어와 남천에 제방을 쌓고 땅을 만들면서 바다가 점점 내려가 지금은 두대교에   바닷물이 올 뿐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이런 곳에 불상이 있었으리라고 생각도 못했고 아직도 보물급에 속하는 유물이 미 지정 문화재로 남아있는 것도 이상하다. 그리고 외동 뒷산이 『당도산(堂道山)』이라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측면에서 본 모습>

  <얼굴만 크게 찍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