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김해 능동 석인상 및 상석(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1호)

천부인권 2009. 5. 18. 18:09

 


<문인석을 가까이에서 찍었다.>

 

오전에 잠시 짬을 내어 가까운 김해지역 문화유산 답사를 나섰다. 삼문리에 있는 석인상 및 상석에 대한 사전지식도 없이 무작정 찾았는데, 네비게이션이 가까운 곳까지 아내를 하여 앞을 보니 “관계자외출입금지”라는 표지가 있고 감나무 농장이 있었다. 한 눈에도 소나무가 있는 저곳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1호’가 있을 것 같아 올라가니 안내문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감나무 과수원이라 출입금지 안내가이 있다.>

 


능동 석인상 및 상석(陵洞 石人像 및 床石)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1호

경남 김해시 장유면 삼문리 산49-2


능동마을 뒤편에 있는 한 무덤 앞에는 문인석과 상석이 배치되어 있는데 이것을 능동 석인상 및 상석이라 한다. 문인석은 능묘를 지키는 수호자의 역할을 하며 상석은 묘소에 제사를 지낼 때 제물(祭物) 등을 차리는데 쓰인다.

능묘주위에 석조물을 배치하는 풍습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중엽에 당(唐)나라의 영향을 받아 조성되기 시작 되었다. 능묘 조각은 비록 통일신라시대에 중국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지만,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중국과는 다른 우리 나름 독창적인 능묘제도(陵墓制度)로 발전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능묘 조각은 우리나라 조각물의 변천과정과 능묘제도의 변화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 무덤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일설에는 가락국(駕洛國)의 왕릉이라고도 하고, 혹은 조선전기 사대부의 묘라고도 한다. 그러나 머리에 쓰고 있는 관모(官帽)와 차려입은 관복(官服), 손에 쥐고 있는 홀의 모습으로 볼 때 문인석은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문인석은 목과 허리의 표현이 생략된 데다가, 볼록한 턱과 큰 귀, 옅게 지은 미소와 더불어 한층 친밀감을 주고 있다.




<정면에서 전체 풍경을 잡았다.>  



주인도 없는 묘치고는 잘 관리가 되어 있었고 주변 축대는 다시 싼 것 같았다.



  <올라가면서 오른쪽 문인상>


 

<왼쪽의 문인상은 정감이 간다.>  


 

<상석 모습>

 

<전체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