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김해 양동리 고분군(사적 제454호)

천부인권 2009. 5. 18. 19:22

 

 <양동리 입구에 서있는 보호수>

 

문인석을 뒤로하고 주촌면의 이팝나무를 보러 가는데, 어느 마을 앞에 큰 팽나무가 있어 주차를 하고 사진으로 남겼다. 그런데 이곳이 ‘양동리’이다. ‘양동리’에는 고분군과 산성이 있는 것이 생각이나 보호수 아래에서 일을 하고 계신 분께 물어보니 위치를 가르쳐 주신다. “보호수”의 안내판에는 주촌면 양동리 828번지, 수종은 팽나무이며, 높이는 17m, 수령은 400년, 나무둘레는 4.4m로 2007년 3월에 지정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산성(山城)은 등산을 해야 하기에 포기를 하고 마을 안쪽에 있는 ‘양동리고분군’을 찾았다. 골목 안 어떤 공장 입구에 간판이 붙어 있었다. 간판에는 발굴 당시의 사진이 있어 사진으로 기록하였다. 옆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가면 관리하지 않는 감나무들이 있고 산으로 가는 입구에 안내판이 서있다. 안내판에 쓰여 있는 내용은 이렇다.  

 

김해 양동리 고분군(金海 良洞里 古墳群)

사적 제454호

경상남도 김해시 주촌면 양동리 산3


양동리 가곡부락 뒷산(해발 90m)에 위치한 이 고분군은 삼한~삼국시대의 무덤유적으로 유적의 전체면적은 약 3만여 평 정도이다. 이 유적은 1969년에 이곳에서 우연히 출토된 유물로 인해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정식 발굴조사는 문화재연구소(1984)와 동의대학교 박물관(1990~1996)에 의해 이루어 졌다. 여러 차례의 조사결과 이곳에서는 550여기의 무덤이 발견되었고, 5,000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곳의 무덤들은 좁은 범위 안에 매우 조밀하게 배치되어 있었는데, 오랜 기간 동안 무덤이 만들어지면서 서로 겹치는 것들도 많았다. 조사된 무덤의 종류는 나무널무덤(木棺墓), 나무곽무덤(木槨墓), 구덩식 돌무덤(竪穴式石槨墓), 독무덤(甕棺墓), 유사 돌무지 너들무덤(積石木槨墓) 등으로 이들 무덤은 기원전 2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까지 순차적으로 만들어 졌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이 유적에서는 각종 토기와 다양한 철제무기, 갑옷과 마구(馬具), 철제농기구와 공구, 청동제 단검과 거울, 청동제 솥(銅鼎), 통형동기(筒形銅器), 유리, 수정, 마노, 호박 등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 등 많은 유물이 출토되었다. 이들 유물 중에는 중국이나 낙랑(樂浪), 일본 등 외국과의 교류나 교역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들도 많다. 고분군은 낙동강 하류의 여러 가야 중에서도 특히 가야의 묘제(墓制)나 유물의 변천상을 잘 나타내어 주고 있다. 따라서 가야문화의 진수를 잘 보여줄 뿐 아니라, 가야사회의 성장 과정이나 국가적 성격까지도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산으로 올라가니 곳곳에 도굴의 흔적이 남아있고 도자기 파편 등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근래에 판 흔적들이 존재하는 것을 보니 문화재에 대한 인식의 정도가 낮은 우리사회가 고민하면서 앉고 가야할 숙제로 보였다.

 <곳곳에 도굴의 흔적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