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잘못 간 길에서 만난 보물 제74호(통도사 국장생석표)

천부인권 2009. 7. 26. 21:41

잘못 간 길에서 만난 보물 제74호(통도사 국장생석표)

 

영축총림 통도사를 찾아서 창원터널을 지나 고속도로를 따라가다 통도사IC가 있는 줄 모르고 양산IC에서 나왔다. 네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국도35호 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니 길가에 문화유적이라는 간판하나가 보였다. 가볼까 말까 망설이다 조금 더 달린 후, “여기까지 왔는데 무엇인지 보고가야지”라고 마음먹고 차를 돌려 그곳으로 다시 갔다.
길가에 선돌 하나가 있었지만 이것이 보물일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갑자기 길을 잘못 선택하여 국도를 따라 온 것이 즐거워지면서 왠지 횡재를 한 기분이었다. 방치되고 있는 것 같은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고 있었다.
 

<통도사 국장생석표>

 

통도사 국장생석표(通度寺 國長生石慓)
보물 제74호
경남 양산시 하북면 백록리 718-1

 

절의 경계를 표시하던 고려시대의 장승이다.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 通度寺舍利袈裟事蹟略錄>의 기록에 따르면 사방 산천의 기를 보충하기 위해 12곳에 이러한 장승(장생표)를 세웠다고 전한다. 절의 경계표시인 동시에 땅의 기운을 보충하여 절에 들어오는 액을 막으려 했던 고려시대 풍수사상의 단면을 보이고 있다.
화강암의 돌기둥에 6~9cm 크기의 해서체 글자를 네 줄로 새겼는데, 문장에는 이두문의 표기가 썩여있다. 높이는 167cm, 넓이는 60cm 정도이다. 지금의 장생표는 고려시대 선종 2년(1085)에 세워진 것이지만, 다시 세운다는 문장으로 보아 원래는 이보다 앞선 시대에 세워져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국도35호 길가에 이런 표시를 해 두었다.>

 

통도사 국장생석표는 국도를 넓히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진 듯하였고, 글이 있는 방향이 양산시 방향이 아니라, 앞쪽 산을 향해 있는 것을 보니 옮길 때 방향을 잘못 놓지 않았나 싶었다. 뒷면에는 총탄의 흔적이 있어 민족의 비극이 이곳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그리고 바닥에 있는 돌에는 성혈(性穴)의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볼 때 민간 신앙이 행해 졌음을 알 수 있다. 통도사는 일반적인 사찰과 다른 도참사상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음을 알리는 서막으로 생각하면서 통도사로 향했다.
통도사 소개에 의하면「총림이라 함은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禪院)과 경전교육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을 갖춘 사찰을 지칭하는 말이다.」고 하고 있다.

 <총탄의 흔적을 간직한 통도사 국장생석표>

 

통도사 국장생석표를 인터넷에 찾아보니 “통도사국장생석표(通度寺國長生石慓)에는『通度寺孫仍川國長生一坐段寺所報尙書戶部乙丑五月日牒前 判兒如改立令是於爲了等以立 太安元年乙丑十二月日記』라 적혀 있다.”
이 글을 <원시예술사이트>는 “통도사 손내천 국장생 일좌(一座)는 절에서 문의(問議)한 바, 상서호부(尙書戶部)에서 을축년(乙丑年) 5월의 통첩(通牒)에 있는 이전의 판결(判決)과 같이 다시 세우게 하므로 이를 세운다.”라고 해석해 두었다.

 <장승의 역활을 한다는 통도사 국장생석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