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영축총림 삼보종찰 통도사를 가다.

천부인권 2009. 7. 31. 00:12

 영축총림 삼보종찰 통도사를 가다.

오늘의 목적지 통도사 영축산문 꽃집이 화려한 모습을 드러냅니다. 한자로 영취산문(靈鷲山門)이라 쓰면서 한글로 읽고, 쓰기는 영축산문이라고 한답니다. 통도사를 품고 있는 산 이름이 취서산에서 영취산이 되었다가 관행으로 영축산으로 써오던 것을 2003년 양산시의 건의가 있어 국립지리원에서도 현지의 관습에 따라 고처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꽃집의 화려한 내부도 구경하고 통도사 8경중 제1경 무풍한송(無風寒松)이라 불리는 무풍교(無風橋)위에서 아름다운 소나무군의 그림을 담아 봅니다.

 <영축산문 꽃집>

 <영축산문 꽃집 내부의 화려한 모습>

 <무풍교>

 

 <무풍한송의 절경>

무풍교 위로는 자동차가 지나가고 우측으로는 걸어서 들어가는 아름다운 길이 있어 다시 한 번 사진으로 남겨 봅니다. 이 두 갈래의 길이 다시 청류교(淸流橋) 위에서 만나는데 청류교 아래에 젊은 처자들이 물놀이를 하고 있어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습니다.

 

 <무풍교 우측의 사람만 다니는 길>

  <청류교 아래에서 물놀이 하는 처자들>

총림은 선원(禪院)과 강원(講院), 율원(律院)을 갖춘 사찰을 말하며, 그 수장은 방장(方丈)이라 하는데, 우리나라 5대총림에는 삼보종찰이 모두 포함돼 통도사가 영축총림(靈鷲叢林), 해인사가 해인총림(海印叢林), 송광사가 조계총림(曹溪叢林)으로 불리고, 그 밖에 수덕사(修德寺)가 덕숭총림(德崇叢林), 백양사(白羊寺)가 고불총림(古佛叢林)으로 불린다. 무풍교 옆 안내표지에는 이렇게 통도사를 설명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330년 전 신라 선덕여왕 15년(646)에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 국내 삼보사찰 중 불보사찰(佛寶寺刹)인 통도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봉안한 사리탑을 중심으로 많은 건물이 배치되어 있는 대찰이다. 사격(寺格)을 대표하는 대웅전 금강계단은 계율을 전수하여 불법을 설교하는 설법전으로 많은 불자들이 이곳을 통하여 입문하는 곳이며 건물의 구조는 지형과 원융하게 조화를 이룬 특이한 양식이다. 유구한 역사속에 불교의 수도전통을 충실하게 계승하여 온 이 절은 구도자의 요람이요 중생의 정신적 귀의처이다. 통도의 뜻은 불법을 통달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이다.』

  <영축총림 석표가 보이고 저 뒤편 작은 비석은 하마비이다.>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하고 맞은편 석당간과 부도군이 있는 곳을 보면서  선자교(扇子橋) 앞에 가니 연꽃으로 장식한 음수대가 있어 사진으로 남겨 보았다. 선자교를 넘어 통도사 석당간이 있는 곳으로 가니 안내표지에는 이렇게 적고 있다.

 <주차장에서 맞주 본 풍경>

  <선자교 옆에 있는 음수대의 연꽃봉우리>

통도사 석당간(通度寺 石幢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3호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당간은 사찰입구에 세우는 깃대의 일종으로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에 큰 깃발을 달아 외부에 알려주는 시설이다. 장간(長竿), 찰간(刹竿), 기간(旗竿), 번간(幡竿) 등 여러 가지 명칭을 가지고 있으며 동(銅), 철(鐵), 목(木), 석제(石製) 등으로 구별된다.
통도사 당간은 기단부의 전체가 후대에 와서 중수되었지만 지주는 원래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지하에 매설된 2m가량은 원석 그대로이며 지상 노출부분은 간공(竿孔)을 뚫는 등 용도에 맞도록 가공한 상태로서 전체 높이는 7.54m이다. 
탑의 기단부와 같이 장대석을 놓아 사방의 하대 윤곽을 잡은 다음 다시 간격을 좁혀 조금 짧은 장대석으로 기단을 만들고, 기단의 남북 양쪽에 지주가 맞물릴 수 있도록 유구(有溝)를 두었다. 그리고 지주 상하에는 타원형으로 두 개의 간공을 만들고 동서 방향으로 장대석을 보완한 다음 다시 그 중앙에 간대(竿臺)를 놓고 단간을 세웠다. 당간 중앙에는 음각으로 성호(南無阿彌陀佛)를 새겼다.
석당간이 남아 있는 곳은 우리나라에 몇 군데에 불과하며 이 당간은 여말선초(麗末鮮初)의 것으로 추정된다.

  <통도사 석당간>

영축총림 일주문 우측에는 부도탑과 공덕비가 서 있는데, 1993년 월하 방장스님의 교시로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여 봉안하였다. 상단 부도 가운데는 임진왜란 이후 통도사를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한 우운당 부도와 조선 후기의 선지식 설송당 부도를 비롯하여 통도사를 대표하는 역대 스님의 부도 60여기와 각종 비석 50기가 안치되어 있다.

  <앞쪽의 공덕비 군>

  <부도탑과 각종 비>

그 맞은편에는 각종 석물들이 짝을 잃고 모여 있는데 거꾸로 물구나무를 선 쌍사자 석물이 눈에 들어온다.

  <눈길을 잡는 쌍사자 석물>

발길을 돌려 더디어 영축총림(靈鷲叢林) 일주문으로 들어간다. 일주문의 현판은 종정월하(宗正月下)스님이 쓴 것이라고 되어 있다.

  <영축총림 일주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