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여행 이야기

아이들과 함께한 우리 동네 역사 이야기

천부인권 2009. 8. 8. 18:58

 아이들과 함께한 우리 동네 역사 이야기

8월8일(토요일) 여름방학을 맞이하여 봉림동여성회와 창원문화유산해설사들이 “우리동네 역사탐방”이란 주제를 가지고 봉림동에 있는 역사문화를 찾아 보았다.

 

아침 9시 ‘창원의집’에 모인 후 이집에서 태어나 사시던 “안희상”씨가 ‘창원의집’에 대한 남들이 모르는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아이들과 함께 따라온 어른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옥호는 성퇴헌이며, 현판은 누가 썼는지 집을 지은 재료는 어디에 있던 것인지, 일제를 거치면서 집의 모양이 어떻게 변화 했으며, 누가 지었는지 등 창원의집에 관한 유래를 들었다. 
 

 

우물은 바다가 가까운 곳이라 짠 맛이 있지만 배앓이를 하지 않는 물이 나온다는 것과 안채는 할머니가 사시는 곳이며 며느리가 함께하면서 산실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는 이야기는 옛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 이었다. 이쯤 되자 아이들 보다 따라온 어른들의 눈망울이 빛나기 시작한다.

 

수령이 600년 된 회화나무 아래로 자리를 이동하여 신성한 나무였으며, 옛날에는 나무가 울었다는 이야기와 나무와 뒤엉켜 지금도 자리를 잡고 있는 고인돌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고인돌에 새겨진 성혈(性穴)과 고인돌의 한 면을 다듬어 “퇴촌 괴헌정 광무구년삼월”이라 새겨둔 글씨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를 더했다. 이런 곳에 고인돌이 있었음에 놀라고 우리 마을의 오랜 역사에 대한 자부심도 가지면서 “불목하니”의 전설을 간직한 느티나무로 이동을 하였다. 
 

 

수령이 400년 된 이 나무는 마을의 당산목으로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재를 지내고 있으며, “불목하니” 전설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퇴산서당’에 당도하여 현판에 대한 이야기와 일반 건물과 달리 원형의 기둥을 사용한 이유를 알게 되고, 이 건물이 어떤 경유를 거쳐 지금의 자리에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재미있다.

 

「안두철 보사 불망비」가 생겨난 이유와 ‘사창’을 설치한 이유와 학교를 설립한 것 등의 잘 몰랐던 이야기도 관심을 끈다.
봉림천 옆 ‘심탄각석’에서「김사백」이 쓴 시조를 한 수를 읽으면서 옛 선인들의 여유와 풍류를 엿듣게 되었다.
 

 

이곳에서부터 자동차를 타고 상북초등학교에 있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6호 ‘봉림사지 삼층석탑’ 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석탑이 부산까지 팔려갖다가 주민들에 의해 되돌아 온 이야기며, 현재의 자리에 있게 된 이유도 알게 되었다. 


다음 도착지인 창원컨트리클럽 내에 있는 “부처고개 마애석불”을 찾아 갔으나 사유지 이고 영업을 하기 때문에 위험성이 있어 안내를 해 줄 수 없다는 창원컨트리클럽 측의 입장으로 찾아보지 못하고 대신 “봉림사지”를 찾았다.


심희대사의 생애와 진례산성과의 관계며, 일본이 임나일본부의 증거라고 주장 했던 비문의 이야기를 통해서 역사가 왜 필요하고 잘 못된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서 알아야 함은 물론이고 실천해야 함을 가슴 깊이 새기는 하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