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의림사 호국의 가람

천부인권 2009. 8. 17. 22:52

부도탑
종탑형식의 부도탑에는 팔정도를 행하라 한다

 진동 인곡마을에서 다시 차를 돌려 진북면 인곡리 439번지의 의림사를 향해 달려갔다. 의림사 300m 전방의 좌측 길가에 부도가 있어 사진에 담았다. 첫 번째의 것은 요즘 만들어진 느낌이 들고, 두 번째의 것이 눈에 들어온다. 종 모양을 한 부도는 맨 아래에 연화좌대를 했고 그 위에 팔각의 돌이 놓여 있어 팔정도를 의미하는 듯 했으며, 그 위에 종 모양의 부도를 얻어 놓아 팔정도를 이행하라는 뜻을 부도에 담아 놓은 것 같았다. 조금 더 올라가니 우측에 당간지주의 밑 부분이 길가에 자리하고 있어 이곳이 옛날에 의림사 절터 였음을 말해 주고 있다.

 

당간지주의 흔적
의림사로가는 길에는 벗꽃터널도 있다.

 

 

도피안교를 지나면 의림사이다.

의림사 입구 도피안교(到被岸橋) 밑에는 하천공사가 한창진행 되고 있었다. 요즘 어떤 절을 가보아도 공사를 하느라 온통 파헤쳐져 있고 하루가 멀다 하고 공사판이 벌어지는데, 종교가 너무 과하게 세속화를 진행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의림사는 삼국통일 직후인 신라31대 신문왕(688) 당시 의상대사(義湘大師)께서 사찰명을 봉국사(奉國寺)로하여 창건하였고, 봉국사로 정한 것은 나라 힘으로 사찰을 창건하여 부처님의 가피로 태평성국을 이루고 의상대사가 당나라 지엄선사에게 화엄경을 배우고 돌아와 고통 받는 중생들을 화엄사상으로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고자 원력을 세웠던 절로서 32동의 건물로 이루어진 대사찰 이었다.
봉국사가 의림사로 사찰명이 바뀌는 것은 사명대사께서 직접 호국정신을 바탕으로 승병을 모집하여 왜구를 물리치면서 “의림사”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 후 수십 차례 왜구의 침략으로 소실되었고,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많은 부분이 사라졌으며, 6.25동란의 폭격으로 거의 모든 유물들이 소실되어 현존하는 것은 삼층석탑과 석등의 받침돌, 쾌불대가 남아있을 뿐이다.

 

대웅전 방향의 전경
석등의 받침돌

 

의림사 삼층석탑(義林寺 三層石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2호
마산시 진북면 인곡리 439

 

3층 석탑

이 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3층 석탑으로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 앞에 있던 것을 1974년에 이 절의 주지인 도각(道覺)스님이 지금의 자리로 옮겨 세웠다. 이때 탑의 일부를 보수 하였으며, 현재의 높이는 3m이다.
탑은 2중의 받침대 위에 3층의 몸체(塔身)를 올렸는데, 상하 받침대의 면석에는 두 개의 모서리 기둥과 중앙을 받쳐주는 한 개의 받침기둥을 새겨 넣어 목조건축 양식의 느낌을 준다. 탑신도 각 층마다 모서리기둥을 새겨 넣었다. 지붕돌(屋蓋石)의 처마 밑받침은 5개의 층을 이루어 전형적인 신라석탑의 처마 받침 형태를 계승하고 있다. 탑의 맨 꼭대기 부분(上輪部)에는 탑 위쪽의 장식을 떠받치는 받침대만 남아있고 다른 부분은 유실 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둥근 구슬 모양의 보주는 뒤에 만들어 끼워 넣은 것이다. 이런 양식의 탑은 신라시대 후기에 많이 만들어졌다. 탑의 지붕돌과 받침대가 약간 파손되기는 하였지만, 전체적으로 조형미를 갖춘 우수한 탑이다. 이탑 주변에 석등 받침돌과 당간지주(幢竿支柱)의 재료가 남아 있다.

  

당간지주와 염불전

의림사 대웅전 주련
佛身普滿十方中 부처님의 몸은 온 세상에 두루 계시니 
三世如來一切同 삼세의 여래가 모두 같은 한 몸이라네
廣大願雲恒不盡 크나큰 원력은 구름같이 항상 다함이 없어
汪洋覺海渺難窮 넓고넓은 깨달음의 바다 아득하여 끝이 없네 
廣大淸淨妙莊嚴 크나큰 맑고 깨끗한 오묘한 모습이 장엄하니 
衆會圍繞諸如來 모든 중생 모여 여러 부처님 에워싸 구나

 

염불전 내부
500나한전
채색이 없이 하얀색인 모습이 이채롭다.
나한전의 불상들은 모두가 흰색이다
대웅전이 웅장하다
대웅전 내부

 

진북면 인곡리 모과나무
경상남도 기념물 제77호
마산시 진북면 인곡리 439

 

모과나무

모과나무는 장미과에 속하는 낙엽활엽수로써 큰키나무(喬木)로 대략 10m내외로 자란다. 껍질은 해마다 벗겨지며, 녹갈색의 구름무늬가 있다. 잎은 어긋나며 가장자리에 뾰족한 톱니가 있다. 연한 붉은색의 다섯 잎 꽃이 5월에 1송이씩 핀다. 열매인 모과는 9월에 노랗게 익는데 둥그런 공 또는 길쭉한 고구마처럼 생겼으며 8~15㎝ 정도로 단단하다. 우퉁불퉁한 모습 때문에 못생긴 것을 “모과 같이 생겼다.”고 비유하기도 한다. 모과를 바구니에 담아 방이나 차 안 등의 실내에 놓아두면 은은한 향기가 배어나와 기분을 상쾌하게 해주기도 하며, 모과는 술을 빚기도 하여 특히 기침의 약제로 유용하다.
이곳 의림사 산신각 앞에 있는 모과나무는 높이 10m, 둘레 3.3m로 사방으로 넓게 뻗은 가지(樹冠)는 그 폭이 동서 15m, 남북 14m이며 수령은 250m이다. 나무의 껍질부분은 근육처럼 울퉁불퉁하게 위에서 아래로 골이져 있으며 작은 가지들이 불규칙하게 나있다. 나무껍질은 황갈색으로 얼룩무늬를 이루고 있어 절을 찾아오는 사람은 누구나 오래된 이 모과나무를 보고 감탄하지 않는 이가 없으며, 이 때문에 종종 숭배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삼성각
삼성각 내부

 

리수가 약수를 뿜어 낸다.

대웅전 앞에는 용생구자의 여섯째 ‘리수(螭首)’가 약수를 뿜어내고 있다.
螭는 교룡(蛟龍)을 말하고 首는 머리라는 의미이니 “교룡의 머리”라는 뜻이다. 물을 좋아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이는 물을 배수하는 책임을 맡았으며, 축대 또는 다리에 위치하여 배수구로도 사용된다. 또한 수도꼭지에도 사용된다.
리수의 코를 만지고 물을 마시면 물에의해 생길 수 있는 흉사를 한번은 도와준다고 한다.
여섯째를 공복(蚣蝮)이라고 하는 것도 있다.
(蚣지네공, 蝮큰뱀복)으로 물에서는 왕이고 묻에서는 개미에게도 놀림을 받는다고 한다. 다리 기둥에 새겨 놓는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