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 상림 입구에 도착하니 함양군을 상징하는 ‘물레동자’와 ‘신비’가 손을 잡고 길손을 맞이한다. 넓은 주차공간과 시원스런 잔디공간을 확보하여 어떤 행사를 한다면 상림과 더불어 활용도가 높겠다고 생각했다. 안내판으로 가보니 상세하게 표시를 해두어 어떤 코스로 둘러볼지를 알게 한다.
으름덩굴 터널을 지나 상림으로 들어가니 주차장을 투수성 재질로 만들어 좋은 인상을 주었던 것이 말끔히 사라지게 만드는「우레탄 산책길」이 깔려있다.
<물레동자와 신비>
<빗물이 스며드는 주차장>
<전체 안내판>
“그럼 그렇지!” 대한민국 공무원이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이 여기 까지가 한계인데 함양이라고 다를 손가?
요즘 대한민국 어떤 곳이나 우레탄으로 포장한 산책길이 만들어져 있는데, 여름에 지열과 복사열로 인하여 이 우레탄에서 나오는 환경호르몬의 악영향에 대한 기초적 자료도 만들어 두지 않고 있다. 환경호르몬이 겁나는 것은 특히 남성들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환경호르몬에 많이 노출되면 될수록 무정자증(無精子症)에 걸릴 위험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래엔 10%의 남성들만이 왕성한 정자를 생성하여 유전자를 남길 수 있다는 예측이 나와 있다. 다시 말하면 90%의 남자는 씨 없는 껍데기란 뜻이다.
굳이 맨땅이 싫다면 나무를 으깨어 5cm 두께로 뿌린다면 우레탄처럼 푹신한 느낌도 있고 먼지도 나지 않을뿐더러 빗물도 잘 스며들며 이것이 썩어 땅속으로 영양분도 공급하는 등 다양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우레탄만 아니라면 정말 좋은 곳이다.>
우레탄으로 인해 기분은 상했지만 상림의 시원한 그늘 덕분에 초선정(樵仙亭)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초선정은 조선시대 영남학파의 맥을 이어온 함양지역 선현들의 정신을 기리며 학문을 논하고 유흥을 즐기기 위하여 19인의 유림이 만든 것이라 합니다. 초선정 옆에는 작은 돌무덤이 있는데 조산으로 보기에는 너무 작아 어떤 용도로 만든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초선정 또는 십구인정>
<어떤 의미가 담겼는가?>
위천과 만나는 곳에 천연기념물 제154호 ‘상림 최치원공원’이라는 글씨가 커다란 자연석에 새겨져 있습니다. 안내표지에는
함양 상림(咸陽 上林)
천연기념물 제154호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 246
『약 1,100여년 전 신라 진성여왕 때 천령군(天嶺郡, 현재 함양군) 태수였던 고운 최치원 선생이 재인 중에 강둑을 보호하기 위해 조성했던 인공림이라 전해지고 있다. 당시에는 위천수가 함양읍의 중앙으로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잦은 홍수 피해가 있었다. 이러한 피해를 막기 위해 현재와 같이 강물을 돌려 둑을 쌓고 나무를 심어 가꾸게 되었다 한다.
처음에는 대관림(大館林)이라 이름 지어 잘 보호하였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홍수로 중간 부분이 유실되어 상림과 하림으로 갈라지게 되었다. 이후 하림은 많이 훼손되었지만 상림은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현재 숲의 면적은 21ha로 120여 종류와 2만여 그루의 나무가 자라고 있다. 전형적인 남부의 온대낙엽활엽수림이 잘 보존되고 있어 학술적 가치도 매우 높은 숲이다. 이 숲의 나무들은 합천의 가야산에서 옮겨 심어진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고 적어 두었습니다.
<상림공원 표지석>
여기서 조금만 더 가면 함양 척화비(咸陽 斥和碑) 가 서 있습니다. 척화비 옆 안내 표지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함양 척화비(咸陽 斥和碑)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64호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49-1
『고종3년(1866)에 일어난 병인양요(丙寅洋擾)에서 프랑스군을 고종8년(1871) 신미양요(辛未洋擾) 때 미군을 물리친 조선이 외국과의 화친을 경고하기 위하여 1871년 4월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 중 하나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친하게 되니 화친을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일이다.”』 라는 내용이 전면에 큰 글씨로 쓰여 있고, 『戒吾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만년에 걸친 자손들에게 경고하노니 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운다.”』라는 내용이 좌측에 작은 글씨로 새겨져 있다. 비신의 높이는 110cm, 이수(螭首)의 높이는 40cm, 폭 55cm, 두께 19cm로 다른 척화비들이 일제강점기에 훼철되었던 것에 비해 이 비석은 원형으로 보존되어 온 것을 바로 세워 단장하였다.』
<함양 척화비>
위천을 따라가지 않고 안쪽으로 들어가면 나무장승들이 줄지어 서있고 상림 가운데 광장이 나옵니다. 광장의 저편에는 ‘다볕당’이라는 건물이 서 있는데, 이 건물이 행사장으로 사용하는 곳인가 봅니다.
잠시 위천이 바라보이는 곳으로 이동하여 위천과 상림을 사진으로 남겨 봅니다.
<목장승 군락지>
<다볕당>
<위천과 상림>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8호 함화루(咸化樓)가 있다고 표시된 곳에는 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어 돌아볼 엄두가 나질 않습니다. 그 옆에는 약수터가 있는데 사자의 머리를 조각하여 그 입에서 물이 뿜어져 나옵니다. 목이 마르든 참에 먹어보니 꽤 괜찮은 물맛입니다. 그리고 뒤편에는 곰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어떤 의미가 숨겨져 있는 것 같은데 알 길이 없어 지나쳤습니다.
<함화루 옆 약수터>
상수리나무, 졸참나무 등에서는 연속적으로 도토리가 떨어져 뚝뚝 소리가 납니다. 이 도토리을 먹기 위해 다람쥐가 분주히 움직이며 여간해서 도망도 가지 않고 도토리를 입에 가득물고 달려갑니다.
상림을 가로지르는 작은 샛또랑에 아름다운 다리가 놓여 있고 흐르는 물소리가 아주 상쾌한 생동감을 주어 사진으로 담아봅니다.
<숲사이로 흐르는 물>
파평윤씨들이 1972년에 건립했다는 화수정(花樹亭)이 상림을 찾는 사람들의 휴식장소로 활용되고 있어 건립 이유는 모르겠지만 좋은 일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화수정>
조금 더 지나자 상림의 또 다른 유형문화재 함양 이은리석불(咸陽 吏隱里石佛)이 나타납니다. 안내표지에는 아래처럼 적어 두었습니다.
함양 이은리석불(咸陽 吏隱里石佛)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2호
함양군 함양읍 운림리 354-1
『이 석불은 1950년 무렵 함양읍 이은리 냇가에서 출토되어 현재 위치로 옮겨 놓은 것이다. 아마 홍수 때 사찰이 유실되면서 물에 쓸려 내려온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출토지점으로부터 약 300m 지점에 망가사(望迦寺)라는 절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이 절의 유물로 추증된다. 머리는 민머리(素髮)이며, 상투(肉髻) 모양은 단정한 편이다. 얼굴표정은 소박하며, 두 귀는 길고, 목에는 세 개의 주름(三道)이 선명하다. 양쪽 어깨에 걸친 옷 주름은 V자 형으로 두텁게 묘사되어 있다. 타원형의 광배는 이중의 원형선을 두른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으로 이루어졌고 머리 부분에는 연꽃무늬를 돋을새김으로 장식하였다. 조각 기법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불상으로 추정된다.』
<함양 이은리 석불>
상림은 참 다양하고 볼 것도 많은 곳으로 사람의 생각을 만드는 장소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곳에는 인간의 고뇌 중 떨칠 수 없는 사랑이야기를 전하는 나무가 있어 이야기를 만들어 두었습니다.
『사랑나무 연리목(連理木)
두 나무의 몸통이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연리목이라 하고 가지가 합쳐져 하나가 된 것을 연리지라 한다. 문헌상으로 삼국사기의 신라 내물왕 7년 시조묘의 나무와 고구려 양원왕 2년 서울의 배나무가 연리지가 된 기록과 고려사의 광종 24년, 성종 6년에 연리지의 출현을 기록했을 정도로 상서로운 나무라 전해진다. 연리목과 연리지는 부부간의 금슬이나 남녀간의 애증이 깊음을 비유한다. 특히 이 연리목은 수종이 서로 다른 느티나무와 개서어나무의 몸통전체가 결합되어 있어 더욱 상서로운 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 나무 앞에서 서로 손을 꼭 잡고 기도하면 부부간의 애정이 두터워지고 남녀간에는 사랑이 이루어지며 소원 성취한다고 전해지는 희귀목이다.』고 기록하고 있어 나무에 기도하는 연약한 인간의 심성을 드러나게 합니다.
<연리목>
함양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 둔 의사 기념비석군도 자리를 잡고 있고 두 번째의 상림 약수터가 이곳에 있어 상림의 중간쯤인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함양 만세운동 기념비석군>
<두 번째 상림약수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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