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아름다운 함양 상림(咸陽上林)에서 만난 역사 이야기

천부인권 2009. 9. 29. 11:49

 아름다운 함양 상림(咸陽上林)에서 만난 역사 이야기

상림 약수터에서 또 한잔의 약수를 먹고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선생의 신도비를 찾았다. 신도비 앞에 있는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아름다운 상림>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文昌侯 崔先生 神道碑)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5호
함양군 함양읍 대덕리 354-1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 887~897 재위) 때 천령군 태수로 있던 고운 최치원(孤雲 崔致遠 857~?)이 홍수를 막기 위해 제방을 쌓고 숲을 조성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당에 유학하여 빈공과(賓貢科)에 급제하고 중국에서 문명(文名)을 떨쳤다. 신라로 돌아 온 뒤 당시 국정의 문란함에 실망하여 대산(大山), 천령(天嶺), 부산(富山) 등의 태수를 지내다가 마지막에는 가야산 해인사에 은거하여 신선이 되었다고 전한다. 그의 시호(諡號)가 문창(文昌)으로 1923년에 최씨 문중에서 이 비를 세웠다.』


 

<문창후 최선생 신도비>

 

<비희의 모습이 익살 스럽다>

 

신도비 옆에는 고운선생을 기리기 위한 사운정(思雲亭)이라는 누각이 있는데, 이곳에는 많은 사람들이 쉬고 있었다.


 

<고운선생을 기리는 사운정>

 

안쪽으로 더 걸어가니 마당바위라는 넓적한 바위가 놓여 있었는데 이곳에 사시는 분에게 물어보니 예부터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상림에는 꽃무릇이 지천에 있지만 지금은 꽃들의 거의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도 몇 개가 아직도 아름다움을 자랑하고 있어 사진으로 담았다.


 

<마당바위>

 

<꽃무릇(석산)>

 

<역사인물공원 가는 길>

 

역사인물공원으로 들어가니 입구에 문화재자료 제240호로 지정된 열녀비가 있어 비석에 새겨둔 내용을 옮겨 적는다.

 

열녀학술임술증처유인밀양박씨지려(烈女學生林述曾妻孺人密陽朴氏之閭)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40호

 

『아전(衙前) 임술증(林述曾)의 아내 밀양 박씨의 열(烈)을 기려 세운 정려비(旌閭碑)이다. 밀양박씨는 안의 사람으로 19세에 병든 신랑 임술증과 혼인 약속을 지켜 결혼하였으나, 남편이 사망하자 3년상을 치른 다음 같은 날 같은 시에 자결한 열녀로서 1793년(정조17) 안의현감으로 있던 연암 박지원이 쓴 유명한 열녀함양박씨전(烈女咸陽朴氏傳)의 실제 인물이시다. 밀양박씨의 열은 단시 인근 고을까지 두루 알려져 함양군수 윤광석, 산청현감 이면제, 거창의 신도향, 사인 이학전, 벽송사의 승려 응윤 등도 각각 기록을 남기 바 있다. 비문은 일두 정여창의 7대손인 청하현간() 정덕제()가 짓고 썼다. 1797년(정조 21)에 처음 세웠고, 2009년 2월 19일에 이곳으로 옮겼다.』


 

<열녀비>

 

이곳에는 많은 공덕비와 선정비들이 줄을 지어 서있고 함양을 대표할 만한 11명의 흉상을 세워 그들의 뜻을 기리고 새로운 천년을 열어갈 선비정신을 이어 받고자 인물공원을 만들어 두었다.
또한 의병장 권석도(義兵將 權錫燾) 장군의 동상이 세워져 있어 충절의 고장 함양의 위상을 자랑하고 있다.


 

<비석군>

 

<11인의 흉상>

 

<권석도 장군 동상>

 

상림의 끝 지점에 이르면 물레방아을 복구해 놓았는데, 이곳에 사시는 분의 이야기로는 100년 넘게 물레방아가 있었는데 너무 오래되어 요 근래에 다시 수리를 하였다고 하신다.

물레방아는 1780년 중국 청나라 사신으로 다녀 온 연암 박지원(燕巖 朴趾源 1737~1805) 선생이 중국의 문물을 보고 듣고 쓴 열하일기를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 된 것으로 1792년 연암선생이 함양군 안의현감으로 부임하여 용추계곡 입구인 안심마을에 최초의 물레방아를 만들면서 실용화 되었다고 합니다. 물레방아에는 연암선생의 이용후생(利用厚生)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사상과 정신이 깃든 조선 농경문화 변혁의 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 이후 “곶감 깎기”라는 민요가 불려 졌는데 이것을 소개 한다.


 

<우리집 서방은 나를 안고 돌아간다>

 

 

곶감 깎기 노래

 

함양산천 물레방아는 물을 안고 돌고
우리집 서방님은 나를 안고 돌아간다.
등구 마천 큰애기는 곶감 깎기로 다나가고
효리 가성 큰애기는 산수깎기로 다 나간다.
말을 타고 꽃속에 들어 채를 치고 돌아보니
연꽃 안에 반달이네 말입에는 풀내 나고
님의 입에 향내 나네
오래비 올케야 이 곶감 팔아
비취금 장만해서 날 외어 주소
칠월달이 어서가면 엄마 집에 가련만은
엄마집에 가거들랑 석달 장마 지와주소
잠아잠아 오지마라 이삼 삼아 옷 해입고
산천초목 구경가자.
배가 고파 받은 밥상 된장단지 옆에 놓고
너 떠먹고 나 떠먹고
저 건너 갈미봉에 비 묻어온다.
어화세상 농부들아 장기지고 논에 가세

 

 

<물레방아는 잘만 돈다.>

 

물레방앗간을 지나 되돌아오는 길은 좌측은 연밭이다. 연꽃도 사라지고 연밥도 없지만 연밭을 끼고 돌아 나오는 길은 무척 운치가 있다. 이곳에서 창원에서 친구분들과 상림 구경을 오셨다는 4명의 여성분을 만났다. “상림은 참 여유로운 느낌이 드는 곳”이라고 하신다.
상림으로 흘러 들어오는 물에서 개구리밥이 녹색융단을 펼쳐 놓은 것처럼 예뻐서 사진으로 남겨둔다. 가을 코스모스와 누렇게 변한 연잎이 묘한 조화를 이루어 함양의 파란하늘과 어울려 수채화를 연상케 한다.
또 다른 연리목 나무 앞에는 열쇠를 채워 걸어둔 곳이 있다. 연인들이 영원한 사랑을 꿈꾸며 약속을 했으리라.


 

<연과 수련>

 

<개구리밥의 향연>

 

<분수대>

 

<코스모스와 연>

 

<열쇠로 채워진 곳>

 

<연리목>

 

<연리목 옆에 세워둔 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