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마산 법성사는 벼농사를 위해 지은 절집

천부인권 2010. 1. 5. 08:19

 

 

마산의 중심 이산(鯉山) 기슭에 자리한 법성사(法成寺)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72호와 문화재자료 445호가 있는 곳이다. 마산시 회원동의 골목길을 지나 이산 입구에 다다르면 법성사가 일반 집과는 약간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법성사가 서쪽방향으로 앉은 것은 ‘서방정토’를 의미한다고 주지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법성사의 창건 사유를 이곳 주지스님은 “이곳이 잉어의 배 부분으로 물은 풍부하나 이곳의 물이 너무 차가워 벼농사를 짓지 못하는 곳이라 우담선사(雨潭禪師)께서 이곳에 법당을 세우면 물길이 끊겨 농사를 지을 수 있는 풍수로 파악하고 법성사를 창건하니 차가운 물길이 끊겨 이후부터 벼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한다.


지금은 이 일대가 마을이 되어 있지만 예전에는 산기슭에 법성사와 옆에 초가 한 채가 전부였고, 법성사 앞쪽은 전부 논이었다고 한다.


 

 

이곳 법성사 목조보살좌상의 안내표지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법성사 목조보살좌상(法成寺 木造菩薩坐像)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72호
마산시 회원동

 

『이 목조보살좌상은 원래 마산 자산동 소재 보광사에 보관 했던 것이나 보광사는 도시계획으로 인하여 회철이 불가피하게 되어 당시 그곳에 주석했던 경파선사(慶坡禪師)에 의하여 1983년 5월 법성사로 이봉한 이래 지금에 이르기까지 안전하게 보존 관리되고 있다.
변형 통견의에 결가부좌한 좌상으로 별조 된 두 손에는 연꽃가지를 들고 잇는 표현기법이 돋보이며, 의습처리는 물론 화관의 아름다움과 상하전반의 신체 비례감이 예술적 조화를 느끼게 하는 수작이며, 이러한 양식적 특징으로 미루어 보아 17세기 후반~18세기 초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높이 74.8cm, 조선 후기 보살상 연구 자료로서 그 가치성이 높은 작품이다.』

 

 

 

 

또한 법성사 신중탱에 관해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법성사 신중탱(法成寺 神衆幀)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445호
마산시 회원동

 

『법성사 신중탱은 김해 장유암에서 1950년 6.25 직전 마산 내서읍 소재 신불사를 거쳐, 1953년 해인대학(경남대학 전신) 내의 전당인 대원각에 옮겨졌다가 명해선사(溟海禪師)에 의하여 1960년 지금의 법성사로 이봉되어 안전하게 보존되고 있다.
조익관을 쓰고 합장한 모습의 동진보살을 주존으로 좌우에 신장권속을 묘사한 비교적 단조로운 신중도이다.
화기에서 1785년에 조성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으나, 도상구성과 표현기법을 보면 보다 제작연대가 돋보이는 느낌을 주고 있는 단아한 작품이다. 1970년 퇴색된 화기란을 개채하여 화기를 재 기록하였으나 화면의 도상은 원래상태를 잘 유지하고 있다.
법성사 신중탱은 조선 후기 신중도 연구에 좋은 자료이며 가로 122.8cm, 세로 95.2cm이다.』


 

 

 

 

 법성사 입구 좌측에는 묘하게 생긴 탑이 하나 서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일본식 탑처럼 보인다. 기단부와 상륜부는 탑신부와 다른 재질의 화강암으로 만들어져 있고, 탑신부는 흙을 구운 것인지 특이한 재질의 돌인지 구분은 가지 않는다. 그리고 둥근 공처럼 만든 후에 초승달 모양을 뚫어새긴 것은 처음 보는 탑신부이다.


주지스님에 따르면 이 탑신부는 100년은 넘은 것으로 가끔 일본인들이 오면 탐을 내어 달라는 이야기를 한다고 하시며, “우리 것이 아니라 일본 탑이라 할지라도 우리 땅의 역사와 함께하는 것이라면 우리가 재해석하여 우리 것으로 받아들이고 만들어야 역사와 문화가 진화하는 것.”이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