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순결을 목숨과 바꾼 자매와 북산정

천부인권 2010. 1. 30. 17:02

 

 

삼가 외토리의 마지막 문화재자료 제374호인 북산정(北山亭)을 찾아가니 네비는 계속 도로를 향해 가라고 한다. 그런데 외토리 마지막 마을을 지나 ‘유씨이녀정려각(柳氏二女旌閭閣)’이 있는 산굽이를 지나니 네비가 더 이상 안내를 하지 못한다. 이곳에 있는 ‘유씨이녀정려기(柳氏二女旌閭記)’는 촬영이 가능하였다. 문화류씨 자매가 임진왜란 당시 외적에게 위협을 당하여 순결을 잃을 입장에 놓이게 되자 스스로 목숨을 끊어서 순결을 지켰다고 하여 나라에서 이를 기려 정려각을 세웠다고 한다. 인간의 목숨과 바꾼 순결의 의미를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옳을까?


 

 

네비의 방향이 산으로 지시는 하고 있어 북산정(北山亭)은 산위에 있는 것일까 하고 생각했다. 작은 야산이라 무작정 산위를 올랐으나 아무것도 없다. 다만 반대편 마을로 향하는 오솔길이 희미하게 남아 있어 마을까지 가보기로 하였다. 대나무 숲을 지나 마을에 도착하니 그곳에 북산정이다.


한번만 지도를 확인하고 왔다면 산을 넘는 수고는 하지 않았을 것인데 그런 계획성 없이 무작정 찾아 나선 것을 후회했다. 북산정은 문화재자료로 등록은 되어 있지만 안내표지가 없었다. 문화재청 자료를 보니 이렇게 적고 있다.


 

 

 

합천 외토리 북산정(外兎里 北山亭)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74호
합천군 삼가면 외토리 866

 

『북산정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전면 반 칸에 퇴를 둔 전퇴집이며 실의 배열은 가운데 둔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 우에 각 1칸씩의 방을 들인 구성으로 전면의 반칸은 모두 툇마루로 구성하였다. 양측방의 뒤쪽에는 벽장을 시설하였고 마루는 모두 우물마루로 구성하였다.

 

시멘트로 덮어버려 볼 수는 없으나 대략 자연석을 3~4단 정도 쌓아 조성한 기단위에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는데 초석은 자연석을 이용하였고 기둥은 전면에만 원기둥을 사용하였다.

 

방의 정면에는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고 대청쪽 출입문은 세짝의 굽널세살문을 달았다. 방의 정면 문틀 아래에는 머름을 두었다.

가구는 3량구조로 툇간에서 보낸 퇴보와 연결한 대들보 위에 긴 각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게한 간단한 구조인데 방의 상부에는 각대공을 세웠으나 대청부분에는 원형의 판대공을 보방향이 아닌 도리방향으로 세운 것이 특이하다.

 

좌, 우측면의 하인방과 중인방 사이, 그리고 중인방과 들보 사이에 세운 벽선들은 긴 각대공과 어울려 고풍스럽다. 홑처마에 박공지붕 형식이며 건물의 보존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북산정은 문화류씨 북산정 종중의 소유이고 북산정 뒤에는 북암사(北巖祠)가 있어 제를 올리고 있는 곳이다. 이 마을 지명은 안동(安洞)으로 외토리에서 안쪽에 있다고 하여 붙어졌고, 이곳은 외토리에서 제일 북쪽에 위치하고 있어 북산정(北山亭)이라 하지 않았을까하고 추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