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용화사석조여래좌상을 보러 갔다가 소설“수라도”를 만났습니다.

천부인권 2010. 2. 14. 21:36

 

 

낙동강에 인접한 우리의 문화재들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찾아보다 양산 물금 용화사에 보물 제491호인 용화사석조여래좌상이 있다고 하여 무작정 차를 몰고 용화사를 찾았습니다.


네비가 인도하는 대로 물금IC를 나와 원동역이 있는 방향으로 가다가 산 중턱에서 낙동강으로 내려가는 작은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얼마지 않아 가람사라는 절집을 만났지만 목적지인 용화사를 가기 위해 더 아래로 향했습니다. 조금 더 내려오는데 아주머니 한분이 산길을 헤치고 아래로 내려 가시 길래 “용화사 가십니까?”하고 물었더니 물금으로 목욕을 가신다고 하여 먼저 내려갔습니다. 산에 인공적으로 뚫은 굴이 하나 보입니다. 아마도 일제 때 우리나라의 자원을 약탈 했던 광산인 듯한 느낌이 드는 굴이었습니다.


오늘의 목적지 용화사는 건물이 세 동만 있는 작은 절집입니다. 사무를 보시는 여성분에게 문화재를 구경하러 왔다고 하니, 스님께 인사나 하고 가라고 하십니다. 스님께서는 먼저 부처님을 친견하시라며 말씀을 하셨습니다. 대웅전으로 들어가 잽싸게 석조여래좌상을 사진으로 몇 장을 남겼습니다.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습니다.
『용화사석조여래좌상(龍華寺石造如來坐像)
보물 제491호
양산시 물금읍 물금리 596

 

전형적인 통일신라 항마촉지인여래상으로 양산에서는 유일한 예에 속한다. 원래의 광배는 파손되어 있었고 불상 전체에는 호분이 두텁게 덥혀있어 원형을 알 수 없었으나, 광배와 대좌를 완전하게 갖춘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 수리되었다. 얼굴은 표정이 없지만 얼굴과 신체와의 비례가 적당하며, 상체가 듬직한 편인데 볼륨감과 입체감을 더하기 위하여 아래로 내린 오른팔과 신체를 분리하는 기법을 쓰고 있다. 불상의 뒷면을 감싸고 있는 거신광배(擧身光背)는 이 불상에서 가장 화려하면서 조각적으로도 우수하다. 불존상의 윤관을 따라 돋을새김의 윤곽선을 새기고 정상의 화불을 정점으로 좌우에는 하늘을 날고 있는 천인상(天人像)과 구름을 새겨놓아 마치 본존상이 구름에 떠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이러한 양식은 합천 청량사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65호)의 광배에도 나타나고 있어 지역적으로 조각의 유사성을 찾아 볼 수 있다.
광배의 뒷면에는 하늘에서 하강하는 천인상 2구가 음각되어 있는데, 통일신라의 불상 가운데 광배의 뒷면에 공양천인상이 조각된 것은 이 불상이 유일한 예이다. 광배와 대좌의 장식성이 증가하고 있으며, 본존불은 옷주름이 단순화되면서 얼굴에는 무표정한 모습을 뛰고 있으나 상체의 볼륨감을 강조하려는 경향 등은 사실주의 양식이 사라지기 시작하는 9세기에 시작되는 것이다.
구전에 의하면, 이 불상은 원래 김해시 상동면 감로사지에 있었다가 용화사 근방 낙동강변에 있던 것을 1947년 2월에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고 하나 확실치는 않다.』


 

 

 

그리고 대웅전에서 나와서 절집 구경을 하는데 갑자기 우당쿵탕 기차가 지나는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절 마당 앞에 기차가 달리는 형상입니다. 마당 한 곳에 “수라도(修羅道) 문학현장”이라는 안내판과 표지석이 있어 뭔지 모르지만 사진으로 남겨두어야겠다는 느낌이 들어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아까 만났던 아주머니가 지나간 기찻길 밑으로 사람 한명 지날 수 있는 굴속을 들어 가보니 때마침 기차가 두두두퉁 지나갑니다. 반대편 입구에 다다르니 파도소리가 들립니다. 바로 낙동강입니다. 이곳이 낙동강 물금취수장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1905년 경부선을 만들 당시에 등록문화재 제204호로 지정한 철도관련 대한민국 근대문화유산인 밀양상동터널과 동일한 공법으로 만든 사람을 위한 터널을 보았습니다. 원래는 기찻길이 복선이 아니라서 용화사 방향의 모습도 낙동강변에서 보는 모양과 같았을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네모반듯한 화강암으로 양면과 위쪽에 쌓았고 터널 안쪽 윗부분은 붉은 벽돌로 아치형태로 만들어 두었습니다. 아래 바닥은 사람이 지나는 부분은 높게 하고 더 낮은 부분은 물길로 만들어 두어 비가 오면 용화사 쪽에서 내려오는 물을 낙동강으로 빠지도록 만들어 두었습니다.


 

 

 

집에 와서 요산 김정한의 소설 “수라도”을 찾아보니 이곳 용화사가 소설에 언급된 미륵당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직 소설을 읽어보지 않아 무어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화제리에서 물금으로 오는 길목이 용화사이고 용화사 마당에서 낙동강으로 나있는 이 터널이 소설 속에서 사람들이 오갔던 그 길임은 알게 됩니다. 일제치하에서 우리 선조들이 느꼈던 삶의 애환을 이 작은 터널은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소설속의 길을 따라 걸어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