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양산 호계리 마애불은 원효대사를 닮았다.

천부인권 2010. 2. 15. 20:49

 

 

 

호계리 마애불 가는 길은 한창 공장 부지를 만드는 공사 중이라 다음에 가는 사람들은 어떤 길이 되어 있을지는 모르겠다. 산으로 나있는 길은 자동차 한대가 겨우 가는 임도 같은 느낌의 도로이다.


네비가 안내하는 곳에 당도한 산 중턱에는 절집은 없고, 휑하니 누각 같은 건물만 하나가 있어 저곳이 마애불이 있는 곳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커다란 화강암에 새긴 마애불은 오른쪽에도 불상이 있었던 흔적이 있지만 남아있는 것은 잘 보존 되어있었다.


 

 

 

효계리 마애불을 자세히 보고 있자니 김해 초선대 마애불이 남방불교를 직접전한 장유화상의 얼굴과 흡사한 것처럼 머리 모양만 빼고 나면 원효대사(元曉大師) 본인의 얼굴을 새긴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글을 보시는 분들도 생각해 보시라고 원효대사의 영정 그림 하나를 비교삼아 올려놓는다.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양산 호계리 마애불(梁山 虎溪里 磨崖佛)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96호
양산시 호계동 산55

 

돋을새김으로 조성된 이 불상은, 왼쪽 부분은 양호한 상태이나 오른쪽 부분은 훼손이 심하다. 불상의 머리에는 머리카락이 굵게 말려 있으며, 상투모양(肉髻)이 아주 약하게 형식적으로 표현 되었다. 얼굴 각 부분의 윤곽은 크고 뚜렷한데, 지그시 감은 눈과 직선으로 표현된 입 모양이 인상적이며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왔다. 옷자락(法衣)은 두 어깨를 타고 내려왔으며, 가슴은 승각기(승려들이 입은 붉은 빛의 큰 예복)로 가렸으나, 투박스럽게 표현되었다. 왼손은 오른쪽 발을 잡고 있는데, 다섯발가락의 표현이 아주 사실적이다. 그런데 손가락은 역시 너무 길어 짜임새가 없다. 활짝 핀 연꽃무늬 받침대는 아주 크고 특이한데, 다른 곳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다. 광배는 타원에 가까운 거신광(擧身光)을 표현한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을 뿐이다.
얼굴의 장엄한 모습 등에서 볼 때 신라시대의 불상으로 추정할 수 있겠다.
불상이 조성된 바위 밑에는 10명 정도의 사람이 기거할 수 있는 동굴이 있고 그 속에 온돌을 만든 흔적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이 동굴을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수행을 닦았던 반고굴(磻高窟)이라 부른다. 이 지역은 원효산(元曉山)의 한 줄기로서, 인근에 원효암(元曉庵), 미타암(彌陀庵) 등 신라시대의 불교 유적이 많다.』


 

 

 

 

 

이 효계리 마애불 아래에는 동굴법당이 있어 안으로 들어 가보니 바위틈에서 나오는 석간수가 있어 한잔 마셔보니 물이 달다는 느낌이 있다. 물 앞에는 바위로 양각한 용왕상이 있어 용왕당(龍王堂)이 동굴 안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동굴 안은 꽤 넓어 정면에는 삼존불을 모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