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청주양씨의 광산서당과 경모당

천부인권 2010. 2. 16. 21:41

 

 

 

창녕 유어면(遊漁面)은 지명에서 보듯이 “물고기가 논다는 뜻”이다. 물고기가 놀 정도로 유어면(遊漁面)은 물과 많은 관계가 있는 지역으로 유어면 전역을 낙동강이 휘돌아 가고 안쪽으로는 팔락늪과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 늪인 우포늪이 자리하고 있다. 이번 낙동강 사업이 계속되면 이곳 유어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모르기에 무엇보다 유어면 일대의 문화재들을 하나씩 찾아가 보았다.


유어면의 대표적 문화재는 청주양씨 문중의 ‘광산서당(光山書堂)’과 ‘청주양씨 세고목판(淸州楊氏 世稿木板)’ 그리고 ‘경모당(敬慕堂)’이 경상남도 유형문화재와 문화재자료로 등록 되어있다. 먼저 도착한 ‘광산서당’은 79번 도로 옆에 붙어 주차장을 갖추고 있어 쉽게 찾을 수 있다. 들어가는 입구엔 솟을삼문이 우뚝 솟아있다.


 

 <광산서당>

 

 <서제와 동제>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광산서당(光山書堂)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69호
창녕군 유어면 광산리 852

 

병장호란(1636년) 때 창녕 일대의 의병을 모아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활약했던 양훤(楊晅)의 애국심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서당이다.
인조가 청에게 항복하자 은거하여 세상에 나가지 않고 후학을 가르쳤던 이곳은 서고(書庫)까지 갖추고 있다. 대들보에는 먹으로 1899년에 세워졌다고 쓰여져 있다.』


 

 <광산서당 마루에서 바라본 외삼문>

 

 

 <우측으로 가면 비석과 제단이 마련 되어 있다.>

 

 

그리고 창녕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청주양씨 세고목판’에 대해서 이렇게  적어두었다.
『청주양씨 세고목판(淸州楊氏 世稿木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54호
창녕군 유어면 광산리 852

 

이곳에는 고려 말에 중국에서 귀화한 양기(楊起)와 그의 12세 손인 졸헌(拙軒) 양허국(楊許國, 1576~1660), 그이 아들 어촌(漁村) 양훤(楊晅, 1597~1650), 그리고 양훤의 아들 무금당(無禁堂) 양도남(楊道南), 1624~1701의 글을 모아 만든 ‘청주세록(淸州世祿)’을 간행하기 위해 만든 책판 135매가 보관되어 있다.
‘청주세록’은 모두 7권 4책으로 되어 있다. 1책은 양기의 사적을 기록한 ‘충헌공암곡사실(忠憲公岩谷事實)’,2책은 양허국의 문집인 ‘졸헌유고(拙軒遺稿)’,3책은 양훤의 글을 모은 ‘어촌유고(漁村遺稿)’,4책은 양도남의 글을 모은 ‘무금당유고(無禁堂遺稿)’ 순으로 되어 있다. ‘어촌유고’ 만 3권에서 6권까지 4권으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모두 1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은 각기 흩어져 있던 것을 한말(韓末)에 모아서 간행하였다. 양기는 공민왕의 왕비가 된 노국공주(魯國公主, ?~1365)를 따라 고려에 온 후 귀화한 사람이다.』


 

 <창녕박물관에 있는 목판의 모습>

 

‘광산서당’과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경모당’은 79번 도로에서 좌측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입구에 수령 300년 된 팽나무가 서있고 경모당 안쪽으로 멋진 소나무가 서있다. 들어가면 우측에 계단이 있는 곳이 청백문(淸白門)으로 문이 잠겨있어 들어갈 수는 없다. 여기 있는 건물의 4동이 문화재로 등록이 되어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곳은 청주 양씨((淸州 楊氏) 시조인 충헌공암곡양기(忠憲公岩谷楊起)선생의 영정을 모시는 재실과 사당이 있는 곳이다.


 

 <경모당 입구의 모습>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경모당(敬慕堂)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70호
창녕군 유어면 진창리 235

 

이 곳은 청주 양씨((淸州 楊氏) 시조인 충헌공 암곡 양기(忠憲公岩谷楊起) 선생의 영정을 모시는 재실과 사당이 있는 곳이다. 암곡선생은 여말의 인물로 공민왕비였던 노국대장공주를 수행하는데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경내의 건물 배치는 재실(齋室)인 경모당이 안쪽에 배치되고 사당(祠堂)인 영각(影閣)인은 담장을 구획으로 하여 그 옆 바깥쪽으로 나란히 놓여 있다. 이러한 배치는 일반적으로 사당이 재실보다 출입구에서 멀고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것과 비교했을 때 특이한 것이다. 경모당은 정면5칸, 측면 2칸, 들보 3량(樑)으로 구성되어 있고 서쪽 측면을 반박공 지붕으로 처리한 건물이다. 종도리는 대들보 위에 둥글게 마무리한 판대공과 행공첨차로 지지된 소로 위에 결구되어 있다.
외진주(外陣柱)는 원형(圓形)이며 내진주(內陣柱)는 외진주와 같은 길이의 평주(平柱)로 방형(方形)이다.영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이익공(二翼工) 건물로 앞 툇간은 없고 3짝의 판문에는 불발기창이 있다. 일반적으로 수설형(垂舌形)으로 처리되는 초익공(初翼工)을 앙설형(仰舌形)으로 처리하여 이익공의 수설형과 어우러져 마치 하나의 원형처럼 배치한 것이 특이하다.』


 

 <경모당>

 

 <경모당의 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