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민가와 함께 있는 통도사 창녕포교당 목조석가여래좌상

천부인권 2010. 2. 19. 21:30

 

 

 

창녕에 통도사 포교당이 있다는 것에 조금은 의아해 했습니다. 포교당은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절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창녕을 많이 방문했지만 포교당이 있는지는 정말 몰랐습니다. 경남 유형문화재 제374호 목조석가여래좌상이 없었다면 영원히 몰랐을 수도 있는 그런 곳이었습니다. 포교당이다 보니 일반민가의 마을에 함께 있어 관심을 두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고 마는 그런 절집이 되었을 것입니다.


골목길을 접어들자마자 일반집의 대문과는 약간 다르지만 특별히 독특하다는 인상은 없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니 완전한 절집 분위기가 납니다. 요사체에 계신 보살님께서 공양을 하고 가시라 했지만 문화재구경 왔다고 말씀을 드리고 이곳의 중심 건물을 보니 “적멸보궁”이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적멸보궁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시는 절에만 붙이는 현판인데 특이하다 싶었습니다.


요즘은 진신사리를 모시는 절집이 흔해서 동남아나 인도 어디서 모시고 왔다는 진신사리를 저는 개인적으로 신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곳 중의 한곳이라고 생각하며 ‘목조석가여래좌상’을 보고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적멸보궁 안에는 목조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협시불이 양쪽에 있고 뒤쪽은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사리탑이 보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측에 와불이 있습니다.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통도사 창녕포교당 목조석가여래좌상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74호
창녕군 창녕읍 말흘리 123-2

 

포교당 법당에 모셔져 있는 목불좌상(木佛坐像)으로 원래 관룡사에 모셔져 있던 것을 6.25후 현재의 위치로 모셔왔다.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곧추세운 허리에 머리를 살짝 숙여 내려보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불상으로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지은 석가모니불이다. 나발이 촘촘하고 육계(肉髻)가 불명확한 머리에는 중간 계주와 정상 계주를 갖추고 있으며, 두 귀는 어깨에 닿을 정도로 덩그러니 길다랗다. 양견(兩肩)을 덮고 있는 통견(通絹)형식의 법의는 드러난 오른쪽 어깨로부터 팔꿈치를 감아 내린 대의자락이 특징적이다.
복장기로 보아 1730년 수화사 화원, 부화사 득찰, 성찬, 종혜 등에 의해 만들어진 삼존(三尊)상의 석가모니불이며 창녕 관룡사에 봉안했던 것임을 알 수 있다. 전체적인 형태가 단순화 되었으면서도 사실성이 돋보이는 상으로 18세기 불상양식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사리탑을 보니 양산 통도사의 진신 사리탑의 일부형식을 빌려 만들었다는 느낌이 있습니다. 탑돌이를 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조금 기다리다 사진을 남겼습니다. 돌아서 나오는데 스님께서 차한잔 마시고 가라 하여 스님께서 직접 제조한 특별한 보이차를 얻어먹으면서 이곳에 적멸보궁이 선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에 의하면 창녕 관룡사에 봉안되어있던 불상이었는데, 6.25사변으로 이곳으로 옮겨지게 되었으며 그때 ‘목조석가여래좌상’의 복장유물을 개봉해 보니 그 안에서 석가모니 진신 사리가 나와 이곳에 적멸보궁을 세우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