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들/여행 이야기

김주완 기자와 최치원 선생의 삶이 너무 닮았다.

천부인권 2010. 2. 25. 20:02

 

미래를 예견하고 개혁하지 못하면 신라(新羅)가 망한다는 것을 깨달은 최치원(崔致遠) 선생은 시무십조[時務十條]의 개혁안을 올리지만 나라가 망해 가는지도 모르면서 자신들의 이익만 쫓아가는 기득권을 가진 잡배들로 인해 결국 신라는 역사에서 사라지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당나라는 최치원 선생의 그릇의 크기를 보고 영원히 당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있어 줄 것을 권하지만 자신의 지식(知識)을 베풀 곳은 못난 신라임을 알았기에 지체 없이 국운이 기울어가는 신라로 와서 개혁안을 진성여왕 8년에 올리지만 수용되지 않자 유랑의 길을 선택합니다.

 

선생이 해인사로 들어가기 전까지 이곳 창원 땅에 기거하며 마산의 월영대(月影臺), 진해의 청룡대(靑龍臺)각석 등 선생의 흔적들을 남기며 이곳의 선비들에게 가르침을 베풀기도 하였습니다.

 

김주완 기자는 경남도민일보 편집국장 동의투표 결과 찬성 28표, 반대 30표로 과반수를 얻지 못하여 창간추체였던 자신이 신문사를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는창간주체였던 내가 신문사를 떠나는 까닭” 이란 글에서 [아마도 그건 애초부터 제가 편집국장 자리를 원한 것도 아니었고, 이후 마음을 바꿔 사장의 지명을 받을 때부터 이미 결심한 바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장은 "당신 스스로 책에서도 썼듯이, 하는 데까지 해보고 안 되면 중간에라도 그만두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지만, 저는 그 때 이미 부결되는 상황도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부결되면 깨끗하게 떠난다.']는 생각을 했다고 합니다.

 

 

왜 그가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그가 생각하고 걸어온 길을 보면 쉽게 수긍할지도 모를 일입니다. 내가 만난 김주완 기자는 항상 깨어있지 않으면 퇴보하는 것이고 퇴보란 곧 소멸로 직결되기에 공부하고 배우지 않으면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마 많은 기득권을 가진 기자 분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 그의 말은 듣는 사람들의 환경에 따라 그가 편집장이 되면 자신들이 힘들지 않을까하는 우려도 하였을 것으로 보입니다.

 

경남도민일보의 미래가 탄탄대로가 아니라 언제 사라질지도 모르는 풍전등화와 같은 위치에 있는데, 이를 깨닫고 변화를 요구하는 김주완 기자와 망해가는 신라에 개혁을 요구한 최치원 선생의 선경지명이 자신들의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는 깨어있는 사람들은 개혁을 요구하고 망해가는 사람들은 변화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문명은 필연코 개혁되고 전진하지 않으면 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최치원 선생이 본 신라의 세상도 그러했고, 김주완 기자가 본 경남도민일보도 그러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가치를 가진 사람을 몰라보고 배척한 그런 조직은 앞날이 험난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두 사람의 삶을 비교해 보면서 경남도민일보의 슬픔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