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청빈공 노변소의 묘와 소곡서당

천부인권 2010. 2. 28. 09:21

 

 

 

찾아가는 길은 창녕 박물관에서 20번 도로를 타고 고암면으로 가다가 우천교 앞에서 우측으로 접어들어 시멘트 길을 따라 계속 가면 산기슭 삼거리에서 우측으로 가면 소곡서당이고, 청민공(淸敏公)의 묘로 가는 길은 좌측 길로 계속 올라가다 길이 끝나는 곳에는 차량을 회전시킬 만한 주차장을 만들어 두었다. 산으로 난 계단을 오르면 ‘청민공 노변소의 묘’가 나온다. 이곳으로 가는 길은 시멘트로 포장이 되어 있지만 농로처럼 자동차 한대가 지나는 폭의 좁은 길이라 조심해서 올라가야한다.

 

조선전기의 묘는 직사각형 모양을 한 것이 많은데, 이 묘도 직사각형의 모양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좌우에 있는 문인석의 모습이었다. 좌측은 건장한 남자의 모습이고, 우측은 동그란 얼굴에 머리카락을 부풀려 둔 모습이 흔히 우리 주위에서 만나는 아주머니의 모습처럼 보인다.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청민공 노변소의 묘 및 문인석(淸敏公 盧抃素의 墓 및 文人石)
경상남도 기념물 제153호
창녕군 고암면 우천리 산86-1

 

청민공 노변소(淸敏公 盧抃素)의 묘는 돌로 쌓은 직사각형의 묘(墓) 1기(基)를 중심으로 묘비(墓碑), 상석(床石)이 있고, 그 좌우에 한 쌍의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장방형 석축묘는 봉분(封墳)의 파손을 막기 위해 긴 받침돌로 2단의 석축을 쌓아올리고 그 위에 봉분(封墳)을 올렸다. 이것은 고려시대 장방형석축묘의 전형적인 형태이다. 문인석 2점은 얼굴에 그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데 전체적으로 해학적인 느낌을 주고 있다. 이 묘와 문인석은 고려시대 묘제(墓制)와 조각을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선생은 청도(淸道)에서 태어났다. 자는 회문(繪文)이며 본관은 장연(長淵)이다. 고려 우왕(禑王) 때 한림원 학사(翰林阮 學士)와 승지(承旨)를 지냈다.
1392년에 조선이 개국되자 선생은 고려왕조에 대한 절개와 충성심을 굳게 지키면서 조선의 관직에 나아가지 않고 창녕에 은둔하여 살았다.』

 

 

 

산길을 따라 청민공 노변소(淸敏公 盧抃素)의 묘를 가다보면 ‘소곡서당’이 보인다. 나오는 길에 ‘소곡서당’을 들러보았다. 이런 글을 쓸 때가 조심스럽다. 요즘 문화재가 될만한 것들은 도둑이 들어 훔쳐가는 사례가 많고 심지어는 현판이나 문짝 등 가져가지 않는 것이 없을 정도라 하니 모든 국민이 문화재를 보호하는 감시자가 되어 수상한 일를 하는 사람은 신고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


도난당한 문화재를 다시 그곳으로 복귀 시키려면 그 비용이 엄청나게 들기도 하지만 다시는 볼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자료가 더 모아지면 다음에 도둑맞은 문화재만을 모아서 글을 한편 써야겠다.

 

 

 

 

 

 

소곡서당 앞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소곡서당(蘇谷書堂)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76호
창녕군 고암면 우천리 775번지

 

소곡서당은 1856년에 창건한 서당으로, 사우에 청민공(淸敏公) 노변소(盧抃素), 만취공(晩翠公) 노 침(盧沈), 절효공(節孝公) 노홍언(盧弘彦) 3인 합향(合享)하다가 서원 훼철 시 피해를 입었다. 건물의 배치형태는 ‘튼ㅁ자형’ 으로, 주축선 상에 대문채와 강당을 건축하고, 정면 좌우에 관리사와 영사정을 배치했다.
서당의 주건물인 가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규모이다.


평면은 중앙에 마루를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이며, 좌우 온돌방에는 각각 청아헌(淸雅軒), 양진당(養眞堂)이라는 현판을 달아놓았다. 평면구성과 창호형식은 19세기말의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강당의 구조는 간략한 3량가의 소로수장집으로, 자연스럽게 휜 대들보로 사용하여 마루대공을 생략하였다. 기둥 상부에 보아지를 끼워 넣고, 보머리를 파고 주두(柱頭)를 올려놓는 기법, 처마에 굴도리를 사용한 것, 알추녀기법, 기둥의 민흘림 기법, 산석(山石) 초석, 대들보 등에 육송 대신 활엽수를 사용한 점에 특색이 있다. 조선후기 창녕지방 서당건축의 평면형식과 구조를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