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창원향토민속자료 제4호 천선동 석제단

천부인권 2010. 3. 22. 22:20

 

 

 

 

창원향토민속자료 제1, 2, 3호는 언제 누가 만든 것인지 모르는 오래된 향토민속자료이나 창원향토민속자료 제4호로 명명하는 ‘천선동 수문당 석제단(遷善洞 樹門堂 石際壇)'은 1990년에 “천선동유적비”를 세울 때 함께 만든 것이다. 석제단이 있는 곳은 창원시 천선동 454번지 일대이다.

 

이 석제단의 형태는 내부의 너비가 140cm, 내부의 높이 141cm, 제단 안의 깊이는 170cm이다. 제단 안에는 상석이 놓여 있는데, 상석의 가로 길이는 110cm이고, 세로 길이는 60cm이며, 두께는 6cm이다. 상석 앞의 향대는 가로 50cm, 세로 21cm, 두께 23cm이다. 제단 위의 덮개돌 3개는 가로 260cm,  세로 45cm, 두께 20cm로 되어 있다.

석제단은 동쪽을 향해 있는데, 이 방향에 성주사가 있고, 인근에서 가장 높은 불모산을 바라보고 다. 
 

 

 

 

이곳 천선동 수문당(樹門堂)은 ‘숨은땅’으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를 뒤받침 하는 것이 ‘진묵대사’의 일화에 잘나와 있다.

「진묵대사(眞墨大師, 1592~1633)는 전북 김제군 만경면 화포리에서 마흔이 넘도록 아들이 없는 불심 깊은 부부 사이에서 출생했다. 그 부부는 아이를 갖기 위해 전주 서방산 봉서사에서 생남기도를 올리던 어느 날 부인의 꿈에 영롱한 구슬이 떨어지더니 차차 변하여 부처의 모습이 되었다. 부인은 그 부처에게 절을 하다가 잠이 깼는데, 그때부터 태기가 있었고 이렇게 해서 태어난 아이가 진묵대사로 아명은 일옥(一玉)이라 전한다. 대사가 사미(沙彌)의 신분으로 공부를 하러 성주사(곰절)로 가고 있었다. 마침 칠원을 지나 창원 마산포를 지날 때 아름다운 처녀가 대사에게 반하여 대사의 뒤를 따라 성주사 입구에까지 왔다. 대사와 처녀는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일옥사미(一玉沙彌)는 불계를 파할 수도 없었고, 인간의 고귀한 사랑도 저버릴 수없어 고민하던 중 그녀가 갑자기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그녀는 일옥과의 사랑을 인연으로 하여 다시 사내아이로 환생하였다. 그 환생한 아이는 점차 자라 여남은 살이 되자 전주에 있는 대원사로 출가하여 중이 되었고, 거기서 대사를 만나 시봉이 되었다. 이름은 기춘이라 했다. 대사는 늘 기춘과 더불어 이락삼매에 들곤 했는데 이락삼매란 색계의 제4선천에서나 즐기는 삼매였다. 즉, 모든 욕락을 여의고 열반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그런 삼매였다.

 

그렇게 해서 대사와 시봉 기춘은 항상 함께 다녔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우나 즐거우나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두 사람은 떨어질 줄 몰랐다.」고 전한다.

 

 

 

 

일화에서 알 수 있듯이 대사를 사랑한 여인이 ‘성주사(곰절)’로 오가는 대사의 모습을 나무 뒤에 숨어서 보았다는 곳이 여기 ‘숨은땅’이라는 것이다. 이곳 당산나무에 제를 지내기 위해 만들어 둔 제단은 ‘당산할머니’에게 제를 지내기 위해 만들었다고 “천선동유적비”에 적어 두었다.

 

이 마을의 지명을 다시 읽어보면 “천선(遷善)” 즉 옮길 천, 선할 선 인데, 선한 사람이 옮겨와 살았다하여 붙어진 이름이다. 선한사람이란 당산할머니를 지칭하는 것이고 당산할머니는 곳 진묵대사와 사랑을 나눈 여인임을 짐작할 수 있다.

 

천선동을 최초로 만든 사람이 당산할머니 일 것이라 추측할 수 있고, 천선동 사람들이 이 마을을 있게 해준 할머니에게 석제단을 만들어 제를 올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