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미수 허목선생의 창원에서의 흔적

천부인권 2010. 4. 13. 08:44

 

 

 

천주산 정상에서 달천계곡을 끼고 축제를 여는 장소로 내려오는 임도 옆 활짝핀 벚꽃나무 아래에 세워진 미수 허목 선생의 흔적이 있는 비석을 만났다. 예전에 왔을 때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1매석만 있었지만 지금은 비희가 지고 있는 비석1매가 더 세워졌고 밖은 화강암으로 경계를 만들어 두었다.


화강암으로 만든 비석의 정면에는 「문정공미수허선생유지(文政公眉叟許先生遺址)」라 새겼고 뒷면에는 「무인 시월 일달천계(戊寅 十月 日 達川契)」라 새긴 것으로 보아 1938년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크기는 앞면의 폭이 50cm, 옆면의 폭은 19cm이며, 높이는 168cm이다.


 

 

 

계곡을 유심히 보면서 내려왔지만 미수선생이 직접 썼다는 ‘달천동(達川洞)’각석을 보지 못했다.
축제를 여는 곳에 당도하니 거의 모든 행사는 끝이 났고 마지막 남은 음식을 운 좋게 얻어먹었다. 지나는 등산객이 “무료로 음식을 주느냐?”고 물었지만 모든 음식이 떨어졌다고 하자 아쉬움을 남기며 지나간다. 괜히 음식을 먹고 있는 내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돼지고기로 허기를 달랬기에 축제를 주관하고 계신 분들에게 달천동 각석에 대해 물으니 한분이 “옛날에 소풍을 여기에 왔는데 그 때의 기억으로는 계곡 위로 오르다보면 있을 것”이라 한다.

 

 

 

아예 계곡을 따라 올라가니 비석이 있는 곳까지 왔다. 그러면 비석을 여기에 세운 것이 달천동 각석 때문일 것이라 생각하고 계곡을 오르니 비석에서 불과 10m여 거리의 계곡 바닥 돌에 새겨두었다. ‘達川洞’이란 3자의 전체 길이는 174cm이고, 達 54cm, 川 54cm, 洞 44cm의 힘이 넘치는 해서체가 새겨져 있다. 옛 사진에는 洞자가 완벽했지만 지금은 훼손된 흔적이 있다.
오른쪽에는 먹을 갈았다고 전하는 장방형의 벼루 홈이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