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합천 회계서당은 일제에 아부하여 건립하였을까?

천부인권 2010. 5. 1. 18:00

 

 

 

사람의 이치는 자연의 이치와 달라 옳고 그름에 대한 명확함이 없는 것 같다. 추담(秋潭) 윤선(尹銑)선생은 임진왜란이 나자 창의(倡義)하여 왜구와 싸우기도 하였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을 기리고자 건립하는 ‘회계서당(晦溪書堂)’이 1918년 일제강점기 때에 만들어졌다는 것이 궁금하다. 일제강점기에 이만한 건축물을 새롭게 건설하려면 일제의 힘을 빌리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오늘 날에는 일제침략의 흔적도 문화재로 등록을 하는 시대이니 그 당시 건축물의 기법을 알 수 있는 ‘회계서당’은 당연히 중요한 문화재인 것은 사실이지만 인근에 있는 ‘윤씨 신도비’의 위용이나 ‘구음재’의 정신이 이 ‘회계서당’에서는 희석되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민족의 역사에서 일제강점기의 기록은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이지만 그래도 먼 미래에 뼈아픈 흔적을 돌아보고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 항상 곁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회계서당(晦溪書堂)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321호
합천군 가회면 함방리 257

 

회계서당(晦溪書堂)은 추담(秋潭) 윤선(尹銑)선생의 공적과 학덕을 기리고 그의 충효정신을 선양하기 위하여 1918년에 건립하였다.
윤선은 1588년(선조 21)에 과거에 급제한 후 대사간, 대사성, 도승지, 예조와 이조판서, 의정부 우참찬 등 주요관직을 역임하였으며 임진왜란 때는 창의(倡義)하여 전쟁에 참전하기도 하였다.
서당은 강당(講堂), 동재(東齋), 서재(西齋), 대문채 등 4동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대문채와 강당을 일직선상에 배치하고 강당의 좌우에 동재와 서재를 앉힌 “ㅁ"자형 배치양식을 이루고 있다. 강당은 정면 6칸, 측면 2칸, 동.서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전 후 툇간을 갖춘 건물로 조선 후기 건축양식과 기법을 알 수 있는 학술적으로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