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구음재에는 파평 윤씨의 힘이 보인다.

천부인권 2010. 5. 1. 06:00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1914년 「구평」,「오전」마을을 병합하여 「함방리」라 칭하고 합천군 가회면에 편입시켰다.「함방리」는 산청군 신등면과 합천군 가회면 경계지점에 위치하며 순수 우리말로는「거북들」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구음재(龜陰齋)는 함방리에서 자동차 한대 지나는 작은 다리를 건너 산속으로 쭉 들어가면 나오는데, 마을과는 동떨어진 곳에 있다. 아마도 임진왜란을 겪은 후 장판각의 문집과 책판을 안전하게 보관할 목적으로 마을과 떨어진 산속에 건립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구음재 앞에 주차를 하면 네모의 인공연못이 만들어져 있고 옆길을 따라가면 행랑채에서 마당으로 가는 입구가 있다. 마당 가운데에는 유자나무가 한그루 심어져 있는데 이런 산중에서 유자나무를 보는 것이 새롭다.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두고 있다.

 

구음재(龜陰齋)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34호
합천군 가회면 함방리 620

 

구음재는 조선선조 때 의병장 곽재우를 도와 의병을 일으켰던 소요당(逍遙堂) 윤언례(尹彦禮, 1526~1598)선생이 학문과 후진양성을 위해 1575년(선조8)경에 건립하였으며 1810년(순조 10)에 중건하였다.
구음재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서 “ㄷ”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으며 가운데 3칸은 대청이고 전면은 개방되었으며 후면은 판장벽에 판장문을 설치하였다. 양협칸은 전면으로 2칸씩 돌출시켰으며 동측은 방 2칸, 누마루 1칸으로 육영재(育英齋), 서측은 방 2칸, 부엌 1칸으로 신추당(愼追堂)이라는 현판을 걸었다. 행랑채는 “ㅡ”자형 평면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구조이다.
“ㄷ”자형 본채와 “ㅡ”자형의 행랑채로 구성된 구음재의 건물배치는 경남지방의 일반 주거용 주택의 형식을 따르고 있어 본채는 여느 상류계층의 살림채나 다름없다. 중앙에 3칸 대청을 두고 양쪽에 온돌방을 두었으며, 그 앞에 경사지를 이용하여 자연스럽게 1칸짜리 누(樓)를 만들었다.
현재 추담선생(秋潭先生)문집책판과 구산선생(龜山先生) 문집책판을 장판각(藏板閣)에 보관하였으나 지금은 도난의 우려가 있어 다른 곳에 두고 있다.

 

 

 

여기를 가보면 보다 많은 정보를 보실수 있습니다. 가회면 함방리[구평 마을] 추담(秋潭) 윤 선(尹銑)

 

추담선생문집책판 및 구산선생문집책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