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가덕도 척화비(부산 지정 기념물 제35호)

천부인권 2010. 8. 1. 10:07

 

 

 

가덕도에 당도하여 선창마을에서 좌측방향으로 가면 지금은 성북동이라 불리는 천가면 주민센터와 파출소 천가초등학교가 있는 조그만 공터가 나온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은 자동차한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곳이라 일방통행을 하게 되어 있다.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천가초등학교 교정에 들어서면 커다란 은행나무 아래 가덕도 척화비가 서있다.


 

 

 

비의 크기는 1.28m×1.45m×0.16m인데 비문에 새겨진 글은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我戒萬年子孫’(‘서양 오랑케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이라 적혀있어 당시의 급박한 세상사를 엿보게 한다.
척화비 옆에는 3개의 비석이 세워져 있고 은행나무의 수령을 볼 때 이곳이 가덕도를 통제하던 가덕진 터였을 것으로 생각이 된다. 이곳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가덕도 척화비(加德島斥和碑)
부산 지정 기념물 제35호
부산 강서구 성북동 344(천가초등학교)

 

척화비는 조선말 고종 때 섭정(攝政)의 자리에 있던 흥선 대원군(興宣 大院君)이 병인양요(丙寅洋擾)와 신미양요(辛未洋擾)를 겪은 뒤에 새운 비석이다.
대원군이 제국주의의 침략을 배격하고 쇄국을 강화하기 위한 굳은 결의를 나타내고 백성들에게 서양열강의 침략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신미양요 직후인 1871년(공종8) 4월에 서울과 전국의 중요한 곳에 새운 비석이다.
비문은 한자로 12자가 새겨져 있으며 재질은 화강암이다. 비문을 해석하면 ‘서양 오랑케가 침범하였는데 싸우지 않으면 곧 화의하는 것이요,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라는 것이다. 그 옆에 ‘우리들의 자손만대에 경고하노라 병인년(丙寅年)에 짓고 신미년(辛未年)에 세우다.’ 라고 작은 글씨다 적혀 있다.
이 비석은 강서구 성북동에서 건축공사 중 출토되어 1995년 12월 천가초등학교 교정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척화비는 1882년(고종19) 임오군란 때 대원군이 청나라에 납치되고 우리나라가 여러 나라와 통교하게 되자 일본 공사의 요구로 철거되었다고 한다. 이 비석은 개항 당시의 절박한 사정을 보여주는 소중한 자료이다.

 

 

 <비석군>

 

 

<천가초등학교의 모습>

 

천가초등학교는 학생수가 얼마 되지 않겠지만 교정 곳곳에 조그만 함을 만들어 그 곳에서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책을 넣어 둔 것이 이색적으로 보였다. 만약 저런 도서관을 우리동네에 설치 한다면 잘 운영이 될 수 있을까? 시민의 수준이 작은 함에 넣어 둔 책을 보고 그 곳에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제자리에 둘 것인지 생각을 해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