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미륵세상 꿈꾸는 사천 매향비(보물 제614호)

천부인권 2010. 8. 17. 07:11

 

 

 

사천에는 천년을 기다리며 또 하나의 미륵세상을 꿈꾸는 곤양면 흥사리 산 48번지, 보물 제614호로 지정된 매향비가 있다. 이곳은 축동IC에서 나와 축동면 가산리 석장승과 오광대 전수관을 둘러보고 1002호 지방도를 따라가다가 보면 1001호 지방도와 만난다. 그러면 1001호 지방도를 따라 곤양면 흥사리 방향으로 가다가 멀구리 마을이 나오면 10m여에서 좌회전하여 농로로 통하는 흥사교를 지나면 150m여 앞 산 입구에 보물 제614호인 사천 매향비각이 보인다.

 

이곳의 분위기는 바다와 상관없는 내륙으로 보이나 매향비가 있고 흥사천이 흘러가는 것으로 볼 때 고려 우왕 때에는 바다와 민물이 만나는 기수지역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사람이 한 가지 소원을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데, 이곳 매향비는 4100명이 미륵세상이 도래하여 민중들이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간절히 바라여 비문을 쓰고 바위에 새기며 향을 묻어 의식을 행하였으니 어찌 그 마음이 간절하다 말하지 않을 것인가.

그 간절한 기도가 이성계로 하여금 위화도 회군을 하게하고 세상을 바꾸는 천지개벽을 하게 했지만 결국 민중은 또 다른 지배층의 지배에 놓여 고통의 세상을 살아야 했다. 그 고통이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는 없겠는가? 깨어있지 못한 자에게는 항상 고통이 따르지만 아직도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생각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곳에 세워둔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사천 매향비(泗川 埋香碑)
보물 제614호
사천시 곤양면 흥사리 산 48

 

복을 빌기 위해 바다에 향목(香木)을 묻고 그 내력을 기록한 비석이다. 물에 넣으면 가라앉는 나무를 강이나 바닷가에 묻으면서 복을 비는 풍속이 있었는데 이를 매향(埋香) 또는 침향(沈香)이라 부른다. 이 비석은 1387년에 세워진 것으로 자연석 위에 15줄 202자를 새기고 있다. 비문의 일부가 마멸되어 읽을 수 없는 부분도 있다. 정치가 혼란하던 고려시대 말에 승려를 중심으로 4100명이 계(契)를 조직하여 임금의 만수무강과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빌기 위해 매향의식을 행했다는 내용이다. 승려 달공(達空)이 문장을 짓고 수안(守安)이 글을 썼으며, 김용(金用)이 새겼다.
매향의식과 관련된 비석으로 1335년에 세워진 침향석각(沈香石刻)이 평안북도 정주(定州)에 남아있으나 내용이 전혀 없다. 따라서 매향비의 건립목적과 건립연대가 확실한 이 비석의 가치는 아주 높다.

 

 

 

비문에 새겨진 글자의 배열과 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1행. 千人結契埋香願王文
  2행. 夫欲求无上妙果必須行願相扶有行无願其行必/
  3행. 孤有願无行其願虛設行孤則果喪願虛則福劣二業/
  4행. 双運方得助○妙果貧道與諸千人同發大願埋/
  5행. 沉香木以待 慈氏下生龍華三㞧持此香達/
  6행. 奉獻供養弥勒如來聞淸淨法悟无生忍/
  7행. 成不退地願同發人盡生內院訂不退地慈氏如/
  8행. 來見爲我訂預生此國預在礿㞧聞怯悟/
  9행. 道一切具足成其正覺/
  10행. 主上殿下萬萬歲國泰民安/達空/
  11행. 洪武廿年丁卯八月廿八日埋/刻 金用/
  12행. 優婆塞優婆夷此丘此尼/ 書 守安/
  13행. 大化主覺禪/
  14행. 都計四千一百人 個中/
  15행. 宝上
[출처 : 사천시사 곤양향토사 문화와 풍속]

 

 

천인결계 매향 원왕문


  무릇 더할 나위 없는 좋은 결과(无上妙果)를 바란다(欲)고 한다면, 간절하게 원하는 것(願)과 행동하는 것(行)이 반드시 서로 일치되어야(相扶) 비로소 가능하게 됩니다. 만약 간절하게 바라는 바도 없이 행동만 하게 된다면 그 행동은 아무런 호응도 없는 외로운 행동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아무런 행동도 없이 간절히 바라기만 한다면 그러한 소원과 바램 역시 허망하게 끝나버리고 말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호응하여 주지 않는 고독한 행동은 죽은 결과로 나타날 수밖에 없고, 허망하게 비는 소원은 결과적으로 그 복이 빈껍데기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첫째 간절하게 원하는 것과 더불어, 둘째 많은 이들이 호응하는 행동의 움직임, 이 두 개의 기운이 함께 해야 (双運方得助) 드디어 원하는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과(妙果)를 가져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소승은 이러한 까닭에 수많은 사람들(千人)과 더불어 침향목(沉香木)을 묻으면서 먼저 커다란 소원(大願)을 발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미륵여래님이 이 세상 낮은 곳으로 내려와(慈氏下生) 아름다운 이상세계를 이루신다는 용화법회를 세 번이나 개최하였고, 지금 그러한 세계를 간절하게 기다리면서 이 향을 묻어 미륵여래님에게 봉헌하여 공양하고자 합니다. 미륵여래님의 청정한 진리의 말씀(法)을 듣고, 우리는 살아가면서 겪는 이 인생의 인고(忍苦)가 아무 것도 아닌 것임을 깨달아, 아무리 괴롭고 고통스럽더라도 아무도 이 땅에서 물러서지 않고, 이 땅을 지켜 나갈 것임을 모든 사람들이 뜻을 합하여 대동발원(大同發源)합니다. 모든 이들이 저마다의 목숨(生)을 다하여 도솔천 내원궁에 왕생할 것을 발원하며, 이 땅에서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당신께서 보시고, 우리들을 위하여 이 땅에 나시어서, 이 약회(禴會)위에 계시면서 당신의 진리를 듣고 깨닫게 하고 계십니다. 모든 사람들이 바르게 깨닫도록 하고 계십니다.


  무궁하도록 임금님의 만세와 나라의 태평성대, 그리고 백성의 편안함을 비옵니다.

  고려 우왕 13년(1387) 정묘 8월 28일에 묻다.

 

  글 지은이 달공1) , 글 쓴이 수안, 글 판이 김용
  기혼 미혼 남녀 불자 도합 4,100인 대표 대화주 각선
  천지신명(寶-불,법,승)전에 올림

[출처 : 사천시사 곤양향토사 문화와 풍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