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기록/문화재 여행

사천 향촌동 매향암각에는 미륵세계 바라는 소망이 있다.

천부인권 2010. 8. 16. 12:00

 

 

 

사천시 향촌동 하향마을 하향천(下香川) 건너에 자리한 사천 향촌동 매향암각은 해발 70∼80m의 향포산(香浦山)에 자리하고 있다. 이 산의 중턱 숲 사이에 6.5×4.5m의 암석이 수직 암면을이루고 있는데 이 암면의 하단 1.4×0.8m 범위내에 23행 174자의 음각으로 된 명문(銘文)이 새겨져 있다.
이 바위는 이 지역에서 ‘처녀바위’라고 일컫는 것으로, 주위의 나무를 베어 그 바위가 드러나면 동네가 망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930년대 항만 조성과 철도 부설로 인해 이 일대가 매립되면서 주변의 지형이 많이 바뀌기는 하였으나 하향천(下香川)은 그대로 흐르고 있는데, 보통 매향비(埋香碑)가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다는 통설과 잘 부합되고 있다. 현재 바위면은 자연 마모로 일부 글자는 판독이 곤란하기도 하다. [출처 : 사천시사 정동면지]

 

매향(埋香)은 <미륵하생경(彌勒下生經)>에 근거한 일종의 신앙의식으로, 향을 묻는 것을 매개로 하여 발원자가 미륵불과 연결되기를 기원하는 것이다. 즉, 미륵불이 용화세계(龍華世界)에서 성불하여 수많은 중생을 제도할 때 그 나라에 태어나서 미륵불의 교화(敎化)를 받아 미륵의 정토(淨土)에서 살겠다는 소원을 담고 있으며, 이와 같은 염원을 기록한 것이 이른바 매향비(埋香碑)이다.
매향이라고 하는 것은 향목(香木)을 오랫동안 개펄에 묻어 침향(沈香)을 만드는 것으로, 그렇게 하면 향이 보다 진해지고 나무는 단단해지며 굳어져서 물에 넣으면 가라앉기 때문에 침향(沈香)이라고도 하는데 이 향을 불가(佛家)에서는 으뜸으로 여기는 것이다.[출처 : 사천시사 정동면지]

 

 

 이곳에 새워둔 안내판에는 이렇게 적어 두었다.

 

사천 향촌동 매향암각(香村洞 埋香岩刻)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8호(1993. 1. 8 지정), 면적 : 300㎡
사천시 향촌동 산 46-1번지, 수량 : 1기

 

이 바위는 1418년(태종 18)에 승려와 신도들이 향을 묻었다는 매향(埋香)의 사연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향 중에서 가장 귀한 것은 침향(沈香)이다. 이것은 향나무를 개펄에 묻어둔 다음,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물위에 떠오르는 것을 말한다. 이 향은 태워도 그을음이 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쇠처럼 단단해 쇳소리가 난다. 또 이것은 약효보다는 향의 신성함 때문에 약제로도 쓰였다. 그리하여 침향을 만들기 위한 과정인 매향은 그자체로서 신성한 의식이었던 셈이다.
이런 매향의식은 이후 민중의 고통을 해결해 주는 미륵신앙과 결부되어 바닷가의 여러 지역에서 유행하였다. 개펄에 묻어둔 향나무가 물위로 떠오르는 현상은 민중들에게 구세주가 나타났나는 것처럼 여겨졌다고 보여 진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나타난 매향유적은 대부분 고려말 조선초에 만들어진 것인데, 이 시기에는 왜구들의 잦은 침범으로 해안지방 민중들의 고통이 극심하였다. 이 때문에 이런 지역의 민중들은 향을 묻으며 미륵구세주의 출현을 염원하였던 것이다. 이곳의 매향기록도 조선초기의 것으로 해안지방을 침범하는 왜구를 미륵부처의 힘으로 막으려는 민중의 염원을 담고 있다. 그리고 이 기록은 매향의식이 승려들이 아니라 민중이 함께 행한 종교의식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따라서 이 기록은 당시의 민간신앙을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이다.

 

 

판독 가능한 비문을 풀이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영락 무술 2월(1418년, 태종 18년 2월)에 비를 세운다. 우리 시방(十方)시주 들은 각기 다른 몸과 마음을 닦아 구라량(仇良梁) 등지와 용두초지(와룡사의 초입지)에서 정유년(1417) 2월 15일과 무술년(1418) 2월 15일에 수륙무차대회(불가에서 바다와 육지에 있는 고혼과 아귀를 위하여 올리는 재)를 베풀고 이 침향포(沈香浦)에서 각기 향목(香木)을 취하여 침향(沈香)한 연후에 여러 비구(比丘)와 시방(十方) 시주의 이름을 다음과 같이 적는다. (이하 여러 시방의 시주 및 승려의 이름)”

 

(岩刻碑文)
(永樂戊戌二月 日碑 夫我十方施州各自懃 修仇良梁等處 龍頭初地丁酉二月十五日 戊 戌二月十五日 當陳水陸无遮大會 至此沈香浦洛聚香木沈香 然後與諸比丘十方施主具列于後 大施主前判事金壽山 同慈鳳晋江君夫人姜氏 仇良梁万戶尹瞻 前司直金存尙 大禪師良旭 前司議鄭吉祥 前副司正任慶金元 前司正鄭芝金茂 姜洛東李貴朴逢信仙覺玆朴万 信成 信淡 海心惠根陳允 志宣海志奄金惠洪信桓 臣( )大化主信寬志成)[출처 : 사천시사 정동면지]